시간과 장소, 상황에 따라 옷을 입는 ‘T.P.O’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과거에는 출근하는 옷과 운동복, 여행에 맞는 복장 그리고 파티복의 구분이 비교적 명확했다. 하지만 팬데믹 이후, 출퇴근이 자유로워지면서 유연한 라이프스타일을 갖게 된 사람들은 편안하면서도 실용적인 스타일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Prada
Valentino
하루 동안 여러 역할과 일정을 오가는 라이프스타일이 일상이 되면서, 단 하나의 상황에만 어울리는 옷은 점점 비효율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대신 편안함과 실용성을 갖춘 멀티플레이적인 옷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런 사회 흐름은 2026 봄 여름 시즌 런웨이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디자이너들은 복잡한 스타일 규칙을 덜어내고 다양한 역할 사이를 자연스럽게 오가는 현실적인 옷을 제안했다. 가장 큰 변화는 스포츠웨어와 테일러링을 의도적으로 허문 룩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다는 점이다.
Celine
Chanel
정장 자체가 스포츠웨어처럼 변모했다. 어깨는 부드러워지고, 구조는 무너지며, 움직임은 편안해지고, 소재는 가벼워졌다. 스포츠웨어의 기능성이 테일러링에 녹아들어 격식과 기능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이전까지의 애슬레저 룩은 운동복을 데일리 룩처럼 입는 방식에 가까웠다면, 이번 시즌은 기능성 소재와 스포츠웨어의 디테일을 테일러링으로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Margiela
Tory Burch
운동복을 얼마나 세련되게 스타일링할지가 핵심인데 그 중심에 프라다가 있다. 스포츠 믹스를 가장 지적으로 풀어낸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와 라프 시몬스. 그들은 스포츠웨어를 젊음의 상징이나 스트리트 감성으로 접근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능성과 자유로운 레이어드 그리고 컬러 조합에 집중한 스포츠 형태의 클래식 테일러링을 결합했다. 나일론 소재의 아우터웨어와 스포티한 실루엣은 프라다 특유의 절제된 테일러링 안에서 한층 세련된 럭셔리로 재탄생했다.
Givenchy
Miu Miu
미우미우 역시 이런 흐름을 대표하는 브랜드다. 여러 시즌에 걸쳐 트랙 재킷과 스포츠 니트, 로 라이즈 팬츠, 테일러드 스커트를 결합하며 스포츠웨어와 여성적인 테일러링을 의도적으로 충돌시켰다. 역시나 기능성 소재와 클래식한 아이템 믹스는 MZ세대가 추구하는 자유로운 스타일과 맞물려 마음을 사로잡았다.
Casablanca
Dior
디올은 또 다른 방식으로 스포츠 믹스를 풀어냈다. 조너선 앤더슨은 전통적인 쿠튀르 감성에 현대적 기능성을 결합해 보다 우아한 스포츠웨어를 제안했다. 구조적인 테일러링 안에 가벼운 소재로 활동하기 편한 쿠튀르를 완성한 것. 카사블랑카는 테니스의 유니폼 코드와 스포츠 니트, 실크 세트업, 여유로운 핏의 테일러링을 결합해 럭셔리 라이프 웨어로 확장시켰다.
Balenciaga
Fendi
펜디 역시 스포츠웨어를 단순히 캐주얼화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울 소재로 제작한 스포츠웨어를 선보이며 운동복 구조를 하이패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기능성을 위한 디테일은 장식 요소로 변모했고 스포츠웨어 특유의 실루엣은 정교한 테일러링을 만나 새로운 럭셔리로 재탄생했다. 단순히 운동복을 고급스럽게 만든 것이 아니라 스포츠웨어 자체를 쿠튀르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Thom Browne
Givenchy
이처럼 2026 봄 여름 시즌의 브랜드들은 ‘정장은 포멀해야 한다 혹은 이렇게 입어야 한다, 스포츠웨어는 캐주얼하다’는 기존의 패션 공식을 무너뜨리고 있다. 기능성과 우아함, 실용성과 럭셔리의 경계는 점점 흐려지고 있다.
이제 옷은 특정 상황이 아닌, 하루의 모든 순간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스타일로 활용되고 있다. 이번 시즌의 스포츠 믹스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이는 변화한 시대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 그리고 새로운 소비가 만들어낸 가장 현실적인 라이프 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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