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로 완성한 고품격 유령···롤스로이스 스펙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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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로 완성한 고품격 유령···롤스로이스 스펙터

뉴스웨이 2026-05-24 12:01:00 신고

롤스로이스 스펙터. 사진=롤스로이스

경기도 가평의 한적한 국도. 화창한 봄 햇살과 산들바람에 창문을 열고 싶어지는 날씨지만, 굳이 스위치를 건드리지 않습니다. 바깥 공기를 들이기보다는 낯설 만큼 정제된 정숙함을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싶어서죠. 숨을 고르는 공간은 기이할 정도로 고요합니다. 엔진의 맥박도, 배기구의 거친 숨소리도, 도로 위의 시끄러운 소음도 없습니다. 시동 버튼을 눌렀지만 계기판에 불이 들어올 뿐, 차체는 미동조차 하지 않습니다. 오직 고요한 침묵만이 실내 공간을 채울 뿐이죠.

문득 120년 전 한 남자가 남긴 예언이 뇌리를 스칩니다. 1900년, 롤스로이스의 공동 창립자 찰스 스튜어트 롤스는 초기 전기차를 경험한 뒤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전기차는 완전히 조용하고 깨끗합니다. 냄새도 없고 진동도 없죠. 충전소만 제대로 마련된다면 매우 유용해질 것입니다."

그가 꿈꾸었던 한 세기 전의 미래가 120년이 지난 오늘날, '스펙터'라는 이름을 입고 눈앞에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브랜드 최초 전기차이자, 럭셔리 전동화 시대의 서막을 여는 롤스로이스의 위대한 이정표입니다.

롤스로이스 스펙터. 사진=롤스로이스

차에서 내려 외관을 찬찬히 뜯어봅니다. 첫눈에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보닛 끝에 자리한 '환희의 여신상'입니다. 롤스로이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조각상은 전기차 시대의 공기역학을 위해 미세하게 모습을 바꾸었습니다. 몸을 조금 더 낮추고 날개를 뒤로 더 젖힌 채 바람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죠. 무려 830시간에 달하는 풍동 실험을 거쳐 완성했다고 하니, 스펙터가 지닌 엔지니어링의 집념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여신상 아래로 펼쳐진 판테온 그릴은 역대 롤스로이스 중 가장 넓은 면적을 자랑합니다. 엔진 냉각이 필요 없는 전기차임에도 브랜드 정체성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당당히 자리 잡았습니다. 매끄럽게 다듬어진 그릴 창살이 공기를 부드럽게 측면으로 흘려보냅니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유려한 패스트백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지붕 선이 차량 후면부까지 끊김 없이 매끄럽게 떨어지는 모습은 흡사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나가는 최고급 요트를 연상시킵니다. 분리형 헤드램프는 스펙터의 정신적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팬텀 쿠페'의 당당함을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견고한 형태와 우아한 비율, 군더더기 없는 표면 처리가 한눈에 봐도 롤스로이스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만들죠.

롤스로이스 스펙터 실내. 사진=롤스로이스

특유의 역방향 도어를 열고 실내로 발을 들이는 순간, 후각이 먼저 반응합니다. 인위적인 화학 물질의 냄새는 전무합니다. 오직 최고급 천연 가죽에서만 풍겨 나오는 은은하고 깊은 향기가 온몸을 감쌉니다. 알프스 고산지대에서 방목해 상처 하나 없는 수소의 가죽만을 엄선해 만들었다는 시트는 가죽이라기보다 잘 가공된 비단처럼 부드럽습니다. 손끝이 닿는 모든 곳,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 심지어 발을 들이는 바닥 매트까지 장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없습니다. 최고급 하이엔드 브랜드의 VIP 프라이빗 라운지에 들어와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합니다.

고스트는 여전히 물리 버튼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습니다. 터치 패널 중심 구성이 대세가 된 요즘 기준으로 보면 오히려 시대를 거스르는 듯한 인상마저 줍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낡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흘러도 쉽게 유행을 타지 않는 고급 시계나 클래식 저택처럼, '타임리스'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릅니다. 훌륭한 디자인은 이런 디자인일까요?

롤스로이스 특유의 전통과 극한의 사치를 보여주는 디테일도 곳곳에 살아 있습니다. 대표적인 요소가 도어 안쪽에 숨은 전용 우산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부드럽게 모습을 드러내는 이 우산에는 "비 오는 날에도 탑승객에게 단 한 방울의 빗물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브랜드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크롬으로 마감한 우산 손잡이와 끝부분에 새겨진 로고, 금속 마감 하나까지도 일반적인 옵션이 아닌 최고급 액세서리를 다루는 듯한 정교함을 보여줍니다. 정품 우산 하나 가격이 400만원을 웃돈다고 하니, 롤스로이스에서는 비를 피하는 행위마저 하나의 럭셔리 경험으로 완성되는 셈입니다.

롤스로이스 스펙터. 사진=롤스로이스

스펙터를 타고 본격적으로 도로에 나섰습니다. 가속 페달을 밟았는데, 차체가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이 기묘합니다. 보통의 전기차들이 페달을 밟는 즉시 고개가 뒤로 젖혀지는 폭발적인 가속력을 자랑한다면, 스펙터는 거대한 힘이 뒤에서 우아하고 묵직하게 밀어붙이는 듯하죠. 롤스로이스 고유의 '매직 카펫 라이드' 승차감이 전기 파워트레인을 만나 한층 진화한 기분이랄까요.

노면의 자잘한 요철이나 거친 아스팔트의 질감은 이미 서스펜션과 차체 바닥을 통해 완벽하게 걸러집니다. 서스펜션 시스템은 전방의 노면 상황을 미리 읽고 댐퍼의 감쇠력을 실시간으로 조절합니다. 마지막 남은 미세한 충격은 두툼한 시트와 발끝을 감싸는 양털 카펫이 부드럽게 받아냅니다. 덕분에 운전이라기보다 고급 호텔 라운지 소파에 앉아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이동하는 감각에 더 가깝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롤스로이스는 브랜드 최초 전기차로 2도어 쿠페를 선택했을까. 단순히 전동화 시대 흐름에 올라타기 위한 전략적 모델은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일본 마가리가와 서킷에서 만난 롤스로이스 블랙배지 스펙터 개발 담당자는 "처음부터 전기차를 만들겠다는 목표로 스펙터를 개발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저 새로운 2도어 쿠페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숙성과 부드러운 주행 감각, 즉각적인 토크 특성이 전동화 파워트레인과 가장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죠. 실제로 롤스로이스는 오래전부터 '가장 조용한 자동차'를 지향해왔습니다. 내연기관의 진동과 소음을 줄이기 위해 집착에 가까운 개발을 이어왔는데, 전기차는 그런 철학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해답이었던 셈입니다.

롤스로이스 스펙터 실내 사진=롤스로이스

스펙터는 공식 출시 전 전 세계 다양한 극한의 기후 속에서 총 250만km에 달하는 광범위한 테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이는 롤스로이스를 400년 동안 운행하는 것과 맞먹는 수준입니다. 특히 전기차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장기적인 배터리 내구성 측면에서도 상징적인 성과를 입증했죠. 최근 다양한 기후와 환경에서 진행된 실제 주행 테스트 결과, 10만km 이상 누적 주행과 반복적인 충전을 거친 이후에도 배터리 성능은 무려 99%를 유지했습니다. 기술적 신뢰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시장을 흔든 기술적 기반은 고스란히 흥행 성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스펙터는 첫 판매가 시작된 2024년, 과거 브랜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2도어 쿠페 레이스와 오픈톱 모델 던의 데뷔 연도 실적을 가볍게 뛰어넘었습니다. 이어 2025년에는 전 세계에서 컬리넌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주문된 롤스로이스 모델로 기록되며 글로벌 시장에서의 인기를 입증했습니다. 이미 차고에 팬텀이나 고스트를 보유한 다수의 기존 롤스로이스 오너들 역시 스펙터를 차고지에 반드시 추가해야 할 필수적인 모델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롤스로이스 스펙터. 사진=롤스로이스

스펙터의 성공은 단순히 '첫 번째 전기 롤스로이스'라는 상징성만으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롤스로이스는 경쟁 럭셔리 브랜드들보다 빠르게 순수 전기 모델을 시장에 투입했고, 전동화 시대에도 브랜드 고유의 정체성이 충분히 통할 수 있다는 점을 입증했습니다.

내연기관 시대에 집착하듯 추구했던 '고요한 승차감'을 전동화로 완성한 셈입니다. 당장 이름만 봐도 그렇죠(롤스로이스는 모든 모델에 고요함을 상징하는 각종 '유령' 이름을 붙입니다. 스펙터도 유령이라는 뜻이죠). 스펙터는 단순히 엔진 대신 전기모터를 얹은 차가 아닙니다. 롤스로이스가 오랜 시간 쌓아온 럭셔리 감성과 장인 정신을 전동화 시대 방식으로 다시 풀어낸 모델에 가깝습니다. 조용하지만 존재감은 더 강해졌고, 화려하기보다 절제된 방식으로 미래 럭셔리의 방향성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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