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한스경제 고예인 기자 | 한때 패션업계의 최대 성수기는 겨울이었다. 수십만원대 패딩과 코트 등 고가 아우터 판매가 실적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기후 변화로 여름이 길어지고 겨울이 짧아지면서 업계 전략에도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겨울 장사로 1년 먹고 산다”는 공식이 흔들리면서 패션업계가 냉감·자외선 차단·경량 의류 중심의 장기 여름 시즌 대응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사계절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5월부터 30도 안팎 무더위가 이어지고 9~10월까지 늦더위가 지속되면서 여름 상품 판매 기간은 길어진 반면 겨울 의류 판매 시기는 짧아지는 흐름이 반복되고 있다.
▲“겨울 한철로 못 버틴다”…수익 구조 흔들리는 패션업계
패션업계가 가장 민감하게 보는 변화는 겨울 시즌 불확실성이다. 겨울 의류는 단가가 높아 브랜드 수익성을 끌어올리는 핵심 상품군이다. 패딩과 코트 다운 점퍼 등은 통상 여름 의류보다 객단가와 마진율이 높다. 그러나 이상 고온 현상이 반복되면서 재고 리스크도 커지고 있다.
실제 업계에서는 겨울 한파 시점이 늦어지거나 짧아질 경우 할인 판매와 재고 부담이 급격히 늘어난다는 우려가 나온다.
반면 여름 상품은 판매 기간 자체가 길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6~8월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4월 말부터 10월 초까지 여름 대응 제품 판매가 이어지는 분위기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겨울 외투 판매가 연간 실적을 좌우했지만 최근에는 폭염 기간이 길어지면서 여름 제품 회전율이 훨씬 중요해졌다”며 “이제는 여름 시즌을 얼마나 길게 끌고 가느냐가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냉감 넘어 ‘생존형 의류’ 경쟁
이에 따라 패션업계도 단순 냉감 마케팅을 넘어 ‘폭염 대응형’ 제품군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코리아(Patagonia)는 최근 자외선 차단 기능을 강화한 ‘캐필린 쿨 선(캐필린 쿨 선)’을 출시했다. 냉감보다 강한 햇빛과 장시간 야외 활동 대응에 초점을 맞춘 제품이다.
K2 역시 피시엠(PCM·상변환물질) 기반 냉감 기술을 적용한 ‘칠(CHILL)360’을 선보이며 냉감 지속성을 강조했다.
과거 여름 의류가 단순히 “얇고 시원한 옷”이었다면 최근에는 체온 유지와 자외선 차단 땀 배출 활동성까지 결합된 기능성 중심으로 진화하는 모습이다.
긴팔 여름 의류 수요 증가도 같은 흐름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의 델라라나(DELLA LANA)는 여름용 울과 강연 코튼 소재를 적용한 긴팔 니트와 카디건을 선보였다. 냉방이 강한 실내와 자외선이 강한 야외를 동시에 고려한 전략이다.
업계에서는 소비자들의 여름 착장 공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덥더라도 피부는 가리고 싶다”는 수요가 커지면서 얇은 긴팔과 기능성 레이어드 제품군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봄·여름 시즌이 메인 된다”…계절 경계 무너지는 패션시장
패션업계 내부에서는 봄·여름(스프링·서머·SS) 시즌 비중이 점점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기존에는 가을·겨울(폴·윈터·FW) 시즌이 실적 중심이었다면 앞으로는 여름 기능성 의류와 경량 제품군이 새로운 캐시카우 역할을 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브랜드들도 계절 전략을 빠르게 수정하고 있다. 다운 패딩 중심이던 겨울 상품 비중을 줄이고 냉감 셋업과 기능성 티셔츠 경량 바람막이 등 활용 기간이 긴 제품군 확대에 나서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기후 변화가 이제는 패션 디자인이 아니라 사업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며 “패션업계가 사실상 ‘롱 서머(Long Summer)’ 체제로 재편되는 흐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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