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되는 GLP-1 수용체 작용제(GLP-1 receptor agonist, GLP-1 RA)가 일부 비만 관련 암에서 원격 전이 위험을 유의하게 낮춘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위고비(세마글루타이드), 마운자로·젭바운드(터제파타이드) 계열 약물이 단순 체중 감량을 넘어 암 진행에도 영향을 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종양학계 관심이 커지고 있다.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토씨그 암 연구소(Taussig Cancer Institute)의 마크 데이비드 올랜드 박사 연구팀은 글로벌 의료 데이터 네트워크 트리넷엑스(TriNetX)를 활용해 비만 관련 고형암 환자에서 GLP-1 RA 사용 효과를 분석한 결과를 ‘2026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연례학술대회’에서 공개할 예정이다.
연구진은 전 세계 약 1억5000만명 규모의 의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1~3기 비만 관련 암 진단 후 GLP-1 RA를 시작한 환자와 DPP-4 억제제(시타글립틴 등) 사용 환자를 성향점수 매칭(propensity score matching) 방식으로 비교했다. 최종 분석에는 1만2000명 이상이 포함됐다. 연령, BMI, 흡연력, 동반질환, 암 치료력 등 주요 변수는 최대한 균형을 맞췄다.
분석 대상은 비소세포폐암(NSCLC), 유방 선암, 대장직장 선암, 간세포암(HCC), 전립선암, 신세포암(RCC), 췌장 선암 등 7개 암종이었다. 연구의 1차 평가변수는 4기 전이성 질환으로 진행되는 비율이었다.
5년 추적 결과 GLP-1 RA 사용군은 일부 암종에서 전이 위험이 뚜렷하게 낮았다. 비소세포폐암은 전이 위험이 50% 감소했고(HR 0.50), 유방암은 43%(HR 0.57), 간세포암은 38%(HR 0.62), 대장암은 31%(HR 0.69) 감소했다.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한 결과였다.
반면 전립선암(HR 0.79), 신세포암(HR 0.95), 췌장 선암(HR 0.69)은 수치상 감소 경향은 있었지만 통계적 유의성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다만 연구진은 7개 암종 중 대부분에서 일관된 보호 경향이 관찰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번 연구에서 관심을 끈 부분은 종양 조직 내 GLP-1 수용체(GLP-1R) 발현 분석이다. 연구팀은 암 유전체 아틀라스(TCGA) 데이터를 활용해 GLP-1R 발현과 생존율의 관계를 추가 분석했다. 그 결과 GLP-1R 고발현 환자는 저발현 환자보다 전체 사망 위험이 약 33% 낮았고, 유방암에서는 최대 45%까지 낮았다.
이는 GLP-1 계열 약물 효과가 단순한 체중 감소나 혈당 조절의 간접 효과만이 아니라, 암세포 신호 경로 자체와 연관될 가능성을 시사하는 결과로 해석된다.
암 환자에서 우려돼 왔던 췌장염이나 위장관 염증 발생 신호는 이번 분석에서 뚜렷하게 증가하지 않았다. 연구진은 “암 환자에서 GLP-1 RA 사용과 관련한 중대한 안전성 신호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즉각적인 임상 적용에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에릭 스몰 ASCO 회장은 “매우 흥미롭고 도발적인 데이터지만 모든 암종에 일반화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평가했다.
제니퍼 리지벨 다나파버 암연구소 교수 역시 “GLP-1 약물이 비만 치료 패러다임을 바꾼 것은 사실이지만, 암 환자 대상 데이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폭스체이스 암센터 마르신 크비스텍 교수는 “이번 결과는 전향적 무작위 임상시험을 진행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연구진도 이번 결과가 무작위 배정 임상시험이 아닌 후향적 관찰 연구라는 점을 한계로 인정했다. 의료 데이터 기반 연구 특성상 종양 특성이나 치료 세부 정보 일부가 누락될 가능성이 있고, 건강관리에 적극적인 환자가 GLP-1 약물을 더 많이 사용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최근에는 관련 연구도 잇따르고 있다. MD앤더슨 암센터 연구에서는 유방암 생존자에서 GLP-1 RA 사용군의 전체 생존율(OS)이 대조군보다 개선됐다는 결과가 보고됐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비만 관련 암 발생 자체가 감소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유럽종양학회(ESMO) 가이드라인 초안은 아직 신중하다. 암 치료를 마친 환자의 체중 관리 목적에서는 사용을 고려할 수 있지만, 항암화학요법이나 면역항암치료 진행 중인 환자에게는 현재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권고하지 않고 있다.
특히 일부 전임상 연구에서는 GLP-1 RA가 면역항암제 효과에 영향을 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암 환자가 GLP-1 계열 약물을 새롭게 시작하거나 중단할 경우 반드시 종양내과 전문의와 상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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