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트리뷴=양봉수 기자] 최근 대한민국 자동차 시장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시선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고금리와 고물가 여파로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브랜드의 명성이나 환상보다는 철저히 가성비와 실용성을 따지는 현실적인 소비 성향이 판매 데이터에 그대로 투영됐다.
만년 2인자였던 기아가 안방에서 현대차를 완벽히 따돌렸다. 수입차 시장에서는 테슬라와 중국 브랜드 BYD가 메르세데스-벤츠를 비롯한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를 거세게 몰아붙이며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흔들고 있다.
ㅡ
현대차를 누른 기아의 독주
ㅡ
더 이상 기아를 현대차의 아랫길로 볼 수 없는 확실한 데이터가 나왔다.
지난 4월 국산 브랜드 판매량에서 기아는 5만 5,108대를 기록하며 점유율 47%를 달성했다. 반면 현대차는 4만 7,183대에 그치며 기아에게 7,000대 이상의 큰 격차로 안방 왕좌를 내어주었다.
이 엄청난 독주의 일등공신은 단연 쏘렌토다.
쏘렌토는 한 달간 홀로 1만 2,078대가 팔려나가며 국산차 전체 1위를 차지했다. 이는 국산 모델 2위인 그랜저와 비교해도 두 배에 가까운 압도적인 수치다.
여기에 카니발과 스포티지가 각각 5,000대에 육박하는 성적으로 탄탄하게 허리를 받쳐주면서, 레저용 차량은 역시 기아라는 공식을 시장에 다시 한번 각인시켰다.
ㅡ
그랜저의 기이한 생명력
ㅡ
4월 그랜저 판매량은 5월 페이스리프트 모델 출시가 알려진 상황에서도 기이할 정도로 대단했다.
보통 신차 출시 직전에는 대기 수요나 가격 저항 탓에 판매량이 급감하는 단종 효과가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랜저는 4월 한 달 동안에만 6,622대를 판매하며 국산 모델 전체 2위 자리를 굳건히 지켜냈다.
끝물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프로모션과 그래도 그랜저라는 콘크리트 수요층의 심리가 맞물리면서, 현대차 브랜드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버팀목 역할을 해냈다.
ㅡ
테슬라의 천하통일
ㅡ
수입차 시장은 그야말로 테슬라의 천하가 됐다. 테슬라는 4월 한 달간 1만 3,190대를 등록하며 수입차 시장 점유율 38.8%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전통의 강자인 BMW와 메르세데스-벤츠의 판매량을 아득히 초월한 수치다. 특히 테슬라 모델 Y는 단일 모델로만 1만 대를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반면 독일 프리미엄 세단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벤츠 E클래스는 모델 Y 판매량의 10분의 1 수준인 1,095대에 머물렀다.
ㅡ
벤츠 턱밑까지 추격한 BYD의 질주
ㅡ
4월 판매량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비야디의 폭발적인 성장세다.
국내 시장 진출 초기만 해도 중국산 자동차에 대한 우려와 거부감이 팽배했으나, 비야디는 4월 한 달간 2,023대를 판매하며 수입 브랜드 5위에 안착했다.
3위인 벤츠와의 격차는 아직 존재하지만, 수입 모델 별 순위에서 비야디의 아토3가 1,397대로 3위, 돌핀이 800대로 5위에 이름을 올리는 등 탑텐 리스트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가 국내 대중 소비층의 심리적 장벽을 완전히 허물었다는 방증이다.
ㅡ
제네시스와 르노, KGM의 굴욕
ㅡ
반면 국산 중견 브랜드와 프리미엄 브랜드의 성적표는 처참하기 짝이 없다.
국산 프리미엄을 자처하던 제네시스는 6,868대에 그치며 수입차인 비엠더블유와 비등한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신차 효과가 부재한 르노코리아 역시 4,025대에 머물며 테슬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성적을 냈다.
ㅡ
중국차보다 안 팔리는 쉐보레
ㅡ
가장 심각한 브랜드는 한국지엠 쉐보레다.
쉐보레는 국산 브랜드 탑파이브 명단에서조차 이름을 감췄다. 또 전체 판매량이 수입 브랜드인 비야디보다도 뒤처지는 수모를 겪었다.
트랙스 크로스오버 이후 시장을 리드할 후속 타자가 전무한 상황에서, 내수 시장의 입지를 중국차 브랜드에 통째로 헌납하고 있는 모양새다.
국내 자동차 시장은 기아 중심의 실용적인 대형 RV 열풍과 테슬라 및 비야디가 주도하는 전기차 대중화라는 두 가지 축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소비자는 이제 브랜드의 이름값만 보고 지갑을 열지 않으며, 확실한 가성비나 압도적인 공간 활용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애매한 브랜드들은 수입과 국산을 막론하고 시장에서 빠르게 퇴출당하고 있다.
쉐보레와 르노코리아 등 중견 제조사들이 내수 전략을 전면 수정하지 않는다면, 조만간 도로 위에서 국산차 대신 중국 브랜드를 더 자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다.
양봉수 기자 bbongs142@autotribune.co.kr
Copyright ⓒ 오토트리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