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간 - 7] 아모레퍼시픽, 사드 이후 세계를 다시 그리다 …2부 서경배의 시간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기업의 시간 - 7] 아모레퍼시픽, 사드 이후 세계를 다시 그리다 …2부 서경배의 시간

폴리뉴스 2026-05-22 18:42:22 신고

(편집자주) '기업의 시간'은 대한민국 산업을 만들어 온 기업들의 역사와 변곡점을 기록하는 연재다. 창업과 성장, 위기와 재편을 거치며 기업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바꿔왔다. 폴리뉴스는 이 연재를 통해 식품•유통•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기업들의 발자취와 경영의 전환점을 차례로 조명한다. 

지난 5월 11일부터 13일까지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열린 'WWD Beauty CEO Summit'. 1910년 창간한 패션•뷰티 전문지 WWD가 주최하는 이 행사는 올해 28회를 맞았다. 로레알, 에스티 로더, LVMH 계열 세포라, 아마존 등 전 세계 뷰티•유통 업계 최고경영자 500여 명이 모이는 자리에서, 아모레퍼시픽 김승환 대표이사는 K-뷰티 대표 기업으로 단상에 섰다.

K-뷰티의 경쟁력이 트렌드가 아닌 구조에서 나온다고 그는 말했다. 높은 기준을 요구하는 한국 소비자, 끊임없는 제품 혁신, 개방형 제조 인프라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산업 생태계가 그 토대라는 설명이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중장기 비전 'Create New Beauty'와 2035년 매출 15조 원 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그룹 제공​​​​​]
서경배 아모레퍼시픽그룹 회장이 서울 용산구 본사에서 열린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중장기 비전 'Create New Beauty'와 2035년 매출 15조 원 목표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아모레퍼시픽그룹 제공​​​​​]

그 단상 뒤에는 서경배 회장이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 MBA를 마친 그는 1987년 태평양화학에 입사했다. 아버지 서성환이 닦은 길 위에서 출발했지만, 걸어온 길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었다.

1991년 노사분규로 회사가 뒤흔들리던 해에 기획조정실장으로 합류했고, 그해 가장 먼저 한 일이 경기 용인에 태평양종합기술연구소를 신축한 것이었다. '과학과 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해야만 세계 선두로 도약할 수 있다'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위기의 한복판에서 실행했다.

확신, 그리고 함정

서경배 회장의 경영은 처음부터 승부사의 것이었다. 1997년 34세에 대표이사 사장에 오른 그는 2006년 창립 61주년 기념식에서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Asian Beauty Creator)'를 선포했다. 30억 아시아인의 아름다움을 위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이 비전 아래 설화수•라네즈•마몽드•이니스프리•에뛰드를 '5대 글로벌 챔피언 브랜드'로 키워 중국 시장에 차례로 투입했다. 2015년 설화수는 단일 화장품 브랜드 최초로 매출 1조 원을 돌파했다. 2016년 그룹 연결 영업이익은 1조 828억 원. 한때 서경배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제치고 국내 주식 부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확신이 깊을수록 함정도 깊었다. 2016년 7월 사드 배치 결정에 중국이 한한령으로 보복하면서 매출은 급격히 꺾였다. 2017년 그룹 영업이익은 5,964억 원으로 전년 대비 30% 넘게 줄었고 2018년에도 19% 추가 감소했다.

이니스프리 매출은 2017년 6,420억 원에서 2020년 3,486억 원으로 반 토막 났다. 매장 수를 공격적으로 늘리는 동안 중국 시장의 축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글로벌 브랜드에서 C뷰티 로컬 브랜드로 이미 이동하고 있었다. 

위기 앞에서 서경배 회장은 '지금은 구조조정이 아닌 혁신을 실행해야 할 순간'이라고 선언했다. '변화를 즐기고 과감히 도전하자'는 그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이 다시 나왔다. 중국에서 진 것이 아니라 중국에 너무 기댄 구조 자체를 바꾸겠다는 선언이었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전경. 2017년 준공한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했으며, 전통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은 외관으로 용산의 랜드마크가 됐다. [사진=아모레퍼시픽]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 본사 전경. 2017년 준공한 이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데이비드 치퍼필드가 설계했으며, 전통 백자 달항아리에서 영감을 받은 외관으로 용산의 랜드마크가 됐다. [사진=아모레퍼시픽]

글로벌 리밸런싱

서경배 회장이 직접 진두지휘한 '글로벌 사업 리밸런싱'의 핵심 승부수는 2023년 10월 단행된 코스알엑스(COSRX) 완전 인수다. 코스알엑스는 화장품 연구원 출신 전상훈 대표가 2013년 창업한 저자극 스킨케어 브랜드다.

브랜드명은 Cosmetics(화장품)과 Rx(처방)의 합성어로, 피부 고민을 과학으로 해결하겠다는 철학을 담았다. 창업 초기부터 중국이 아닌 아마존•이베이 등 글로벌 이커머스를 직공략하는 전략을 택했고, 달팽이 뮤신(스네일 뮤신)을 앞세운 입소문이 북미 1020세대 사이에서 폭발적으로 퍼지며 K-뷰티 인디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아모레퍼시픽은 2021년 코스알엑스 지분 38.4%를 먼저 인수했다가 2023년 10월 잔여 지분을 7,551억 원에 추가 취득해 완전 자회사로 편입했다. 총 인수 금액은 약 9,300억 원으로 아모레퍼시픽 역대 최대 규모의 M&A다. 인수 당시 코스알엑스의 직전 3년간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60% 이상, 해외 매출 비중은 90% 이상, 진출 국가는 140여 개국. 서 회장이 손수 낙점한 베팅이라는 평가가 업계에서 나왔다.

편입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아모레퍼시픽의 미국 매출은 2023년 2,867억 원에서 2024년 5,246억 원으로 한 해 만에 두 배 가까이 뛰었다. 라네즈는 립케어에서 프리미엄 스킨케어로 카테고리를 넓혔고, 에스트라는 2025년 LVMH 산하 세계 최대 프리미엄 뷰티 편집숍 세포라 미국 매장 400여 개에 입점했다. 이니스프리도 2023년 4분기 140개였던 세포라 입점 점포가 2024년 1분기 417개로 빠르게 확산됐다.

2025년 연결 기준 영업이익 3,680억 원. 전년 대비 47.6% 증가하며 2019년 이후 6년 만의 최대치다. 해외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102% 급증했고, 미국 매출이 처음으로 중국 매출을 넘어섰다. 수년간 적자를 이어온 중국 법인도 흑자로 돌아섰다.

같은 해 9월 창립 80주년 기념식에서 서경배 회장은 'Create New Beauty'를 선포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몇 년간 비즈니스 체질을 개선하는 것에 집중한 결과, 회사는 새로운 도약을 향한 중한 변곡점을 지나는 중이다.' 오랜 기다림과 확신이 한 문장에 담겼다. 2035년 매출 15조 원, 프리미엄 스킨케어 글로벌 톱3, 해외 매출 비중 70%가 그 다음 목표다.

경기 오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R&I(Research & Innovation) 센터 '미지움(Mizium)'. 자연의 빛을 담은 열린 구조로 설계된 이 공간은 연구자들의 소통과 혁신을 이끄는 아모레퍼시픽 연구혁신의 심장부다. 1954년 서울 후암동 2평 연구실에서 시작된 기술 계보가 70년 만에 이른 곳이다. [사진=아모레퍼시픽 ]​​​​​​​​​​​​​​
경기 오산에 위치한 아모레퍼시픽 R&I(Research & Innovation) 센터 '미지움(Mizium)'. 자연의 빛을 담은 열린 구조로 설계된 이 공간은 연구자들의 소통과 혁신을 이끄는 아모레퍼시픽 연구혁신의 심장부다. 1954년 서울 후암동 2평 연구실에서 시작된 기술 계보가 70년 만에 이른 곳이다. [사진=아모레퍼시픽 ]

분자 수준의 승부

서경배 회장이 1991년 위기의 한복판에서 연구소를 먼저 지었듯, 'Create New Beauty'의 핵심 기둥도 R&D 기반 과학 혁신과 AI 기반 개인화다. '화장품은 문화를 만드는 상품'이라는 그의 철학이 기술의 언어로 구현되는 방식이다.

과학 혁신의 성과는 올해 두 편의 국제 학술지로 집약됐다. 4월 'International Microbiology'에 게재된 피부 마이크로바이옴•대사체 통합 연구는 젊은 피부의 핵심 물질 페닐락트산(PLA)을 규명했고, 5월 ACS Nano 표지에 오른 'Lipo3Ex'는 20나노미터급 초안정 나노 전달체라는 세계 최초의 기술 성취를 담았다.

두 연구의 공통 방향은 하나다. 피부를 단일 기관이 아닌 미생물•대사체•세포•나노 구조가 연동되는 통합 생태계로 보는 관점, 아모레퍼시픽이 '홀리스틱 롱제비티 솔루션(Holistic Longevity Solution)'이라 부르는 연구 철학이다.

AI 전선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지난 20일과 21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AWS 서밋 서울 2026'에서 아모레퍼시픽은 AI 기반 통합 뷰티 서비스 플랫폼 '뷰티 컨시어지(Beauty Concierge)'를 선보였다. 아마존웹서비스(AWS) 생성형 AI 플랫폼을 접목해 AI 피부진단•피부톤•두피•퍼스널 컬러 진단을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하고 R&I 센터 연구원의 1:1 상담까지 통합한 플랫폼이었다.

CES 2025에서 맞춤형 메이크업 가상 체험 솔루션 '워너-뷰티 AI'로 혁신상을 수상한 데 이어, 자사몰 AI 뷰티 카운셀러 '아모레챗'과 챗GPT 내 '아모레몰' 앱 출시까지 AI 전략은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경배 회장이 글로벌 리밸런싱으로 시장의 지도를 다시 그리는 동안, R&I 센터는 분자 수준에서, AI 조직은 데이터 수준에서 경쟁의 언어를 다시 쓰고 있다. 아버지 서성환이 2평 연구실에 심은 씨앗은 70년 만에 팜비치 무대와 코엑스 전시장, ACS Nano 표지까지 뻗었다. 위기의 한복판에서 연구소를 먼저 지었던 아들이, 다시 한번 기술로 승부를 걸고 있다.

※ 이 기사는 연재 '기업의 시간' 7편 2부다. 다음 편에서는 다이소의 시간을 살펴본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Copyright ⓒ 폴리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