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N] 조은주, 적벽의 불길을 네 시간 소리로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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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N] 조은주, 적벽의 불길을 네 시간 소리로 버틴다

뉴스컬처 2026-05-22 10:23:10 신고

'조문주의 성음 - 적벽가 완창 : 그러하다' 공연 포스터. 사진=한국문화의집 KOUS
'조문주의 성음 - 적벽가 완창 : 그러하다' 공연 포스터. 사진=한국문화의집 KOUS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저녁 한 사람이 시간이 된다. 소리꾼 조은주가 220분 동안 적벽의 전쟁과 인간 군상을 판소리 한 마당으로 밀어간다. ‘적벽가’는 판소리 다섯 바탕 가운데 가장 장대한 서사와 거친 기세를 가진 작품이다. 중국 '삼국지연의'의 적벽대전 이야기를 토대로 삼는다. 하지만 판소리 안에서는 영웅담의 질서만 남지 않는다. 유비·관우·장비의 결의, 제갈공명의 지략, 조조의 대군, 전쟁터 군사들의 비애가 장단 안에서 뒤섞인다.

전쟁을 말하지만, 중심은 사람이다. 권력자와 책략가의 이름이 크게 들리다가도 어느 순간 무명의 군사들이 앞에 선다. 전장에 끌려온 이들의 탄식, 죽은 원혼의 소리, 패주하는 조조의 불안까지 적벽가의 깊은 맛을 만든다. 조은주의 완창은 서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몸으로 밀어붙인다. 완창은 소리꾼에게 기술 과시만을 요구하지 않는다. 긴 시간 동안 성음의 탄력, 아니리의 말맛, 발림의 집중력, 장단을 타는 힘이 모두 필요하다. 도원결의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화용도의 마지막 장면까지, 소리꾼은 여러 인물의 목소리를 오가고 전장의 공기까지 혼자 만들어야 한다.

공연 1부는 ‘도원결의’에서 ‘자룡 활 쏘는 장면’까지다. 유비·관우·장비의 도원결의로 시작한다. 유비가 제갈공명을 얻기 위해 세 차례 찾아가는 삼고초려, 장판교 싸움 뒤 오나라로 향하는 공명, 조조 군사의 패배와 군사설움, 동남풍을 비는 공명, 자룡의 활쏘기까지 적벽대전의 전초와 전장의 긴장을 펼친다. 도원결의는 적벽가의 출발점이다. 세 인물의 의형제 결속은 이후 전쟁 서사의 명분을 만든다. 삼고초려 장면에서는 제갈공명을 모시려는 유비의 간절함이 드러난다. 지략가의 등장을 알리는 부분이면서도 판소리 특유의 말맛과 상황 묘사가 살아나는 부분이다.

장판교 뒤 오나라로 향하는 공명 장면은 전쟁의 판세가 바뀌는 길목이다. 공명의 책략과 오나라 진영의 움직임이 맞물려 적벽대전으로 향하는 힘을 만든다. 조조의 군사설움은 적벽가에서 유난히 강한 정서를 남긴다. 전쟁에 휩쓸린 병사의 목소리가 무대 앞으로 나온다. 공명이 동남풍을 비는 장면은 적벽대전의 결정적 전환이다. 불과 바람, 책략과 운명이 한데 엮인다. 자룡의 활쏘기 장면은 장수의 기세와 판소리의 빠른 장단이 맞붙는 순간이다. 소리꾼은 서술과 묘사, 인물의 기개를 오가며 전장감을 만든다.

2부는 ‘만강은 채봉 총출’에서 ‘대군대결’까지 이어진다. 오나라와 한나라 군사의 전투, 동남풍과 화전, 불 지르는 장면, 죽은 원혼의 소리, 새타령, 자룡과 장비의 복병에 기세를 잃은 조조, 화용도에서 관우를 만난 조조의 장면이 차례로 펼쳐진다. 화전 장면은 적벽가의 불길이 본격적으로 치솟는 부분이다. 배와 배가 부딪치고, 불길이 번지고, 군사들의 외침이 장단 속에서 몰아친다. 소리꾼은 빠른 서사 전개와 고조되는 감정을 다룬다. 적벽가의 음악적 체력이 가장 크게 요구되는 구간이다.

죽은 원혼의 소리와 새타령은 적벽가의 정서를 깊게 만든다. 앞선 장면들이 전쟁의 속도와 책략을 보여준다면, 이 부분은 전쟁 뒤 남은 비애를 드러낸다. 원혼의 소리는 인간의 허망함을 부른다. 새타령은 자연의 소리처럼 들리면서도 전장의 비극을 감싼다. 화용도 장면은 적벽가의 극적 여운을 완성한다. 패주하는 조조는 관우 앞에 선다. 과거의 은혜와 전쟁의 명분, 인간적 정과 군사적 판단이 한순간에 부딪힌다. 적벽가가 단지 전투의 승패를 말하지 않는 이유다. 인물들은 완전한 영웅도, 완전한 악인도 아니다. 각자의 두려움과 계산, 의리와 흔들림을 가진 존재로 무대에 선다.

누군가는 적벽을 전쟁 이야기라 말한다. 하지만 소리꾼 조은주에게 적벽은 삶을 견뎌 세운 시간의 기록이라는 시선이다. 완창은 소리꾼이 지나온 시간과 앞으로의 방향이 드러난다. 장단은 길게 이어지고, 성음은 전장과 인간의 마음을 오가며 관객을 붙든다. 한국문화의집 KOUS(코우스) 무대는 소리와 북, 관객의 호흡이 가까운 공간이다. 적벽가 완창은 소리꾼의 몸과 고수의 북, 관객의 집중으로 완성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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