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이 허무해졌다'는 고백이 21일 온라인 공간을 가득 채웠다. 삼성전자와 노동조합이 전날 밤 임금협상 잠정 합의안을 이끌어내면서, 반도체 부문 임직원에게 최대 6억원(세전·연봉 1억원 기준)에 달하는 성과급이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직후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업성과의 10%대를 성과급 재원으로 고정하는 파격적 보상안이 합의됐으며, 적자가 예상되는 비메모리 부문조차 최소 1억6천만원을 수령할 수 있게 됐다.
각종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에는 씁쓸함을 토로하는 글이 쏟아졌다. 블라인드에는 '삼전닉스 성과급 보니 출근할 맛이 사라졌다'는 푸념이 올라왔고, 네이버 카페에서도 '1년 내내 일해봤자 저들 성과급 수준밖에 안 되는 현실이 힘 빠지게 한다'는 글이 공감을 얻었다. 파업이 경제에 부담을 줄까 걱정했던 이용자마저 '막상 거액 성과급을 보니 배가 아프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고 자조했다.
중견기업에서 일하는 35세 김 씨는 새벽 6시에 눈을 떠 출근길에 올랐다가 관련 기사를 접한 순간 힘이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야근과 주말 근무를 반복해도 누군가는 단번에 자신의 평생 저축액을 뛰어넘는 돈을 손에 쥔다는 현실이 공허하게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는 성과에 따른 보상이라는 시장 논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같은 월급쟁이라는 범주로 묶기 어려울 만큼 격차가 벌어진 현실에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28세 서 씨 역시 부러움을 감추지 않았다. 자신의 회사도 지난해 실적 호조를 기록했지만 스타트업 특성상 별다른 성과급이 지급되지 않았다고 했다. 삼성전자에 다니는 친구들이 유독 많아 상대적 박탈감이 더 크게 느껴지며, 그들은 곧 자동차 계약을 하고 집을 장만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29세 직장인 최 씨도 비슷한 심경을 전했다. 직장만 다녀서는 집을 살 수 없다고들 하는데, 이번 성과급이면 전세금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고 외제차도 거뜬히 뽑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공기업에 재직 중인 34세 주 씨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솔직히 질투가 난다고 인정하면서, 다만 그렇게 말하면 못난 사람처럼 보일까 봐 '현타 온다', '출근이 싫다'는 표현으로 돌려 말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재벌이 수백억원을 번다는 소식보다 또래 직장인이 성과급으로 수억원을 받는다는 뉴스가 더 강하게 와닿는다며, 비슷하게 아침 출근을 하고 월급을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배 아픔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금융권에 종사하는 53세 김 씨는 다른 시각을 보탰다. 직장인으로서 부럽고 배가 아프지만, 부모 입장에서는 저 정도 보상을 해야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국내 기업에 남는 것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학부모들 사이에서 반도체학과 인기가 치솟는다는 이야기를 접하며, 자녀의 생활기록부를 그쪽으로 맞춰야 하나 고민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51세 직장인 진 씨는 온종일 한숨만 나왔지만, 이왕 이렇게 된 이상 삼성전자 주가가 100만원까지 올라주길 바란다며 자조 섞인 희망을 내비쳤다.
부러움은 한 장의 이미지로도 표출됐다. 삼성전자 캠퍼스 앞 도로에 람보르기니와 페라리 등 수억원대 슈퍼카가 줄지어 늘어선 인공지능 생성 이미지가 '삼전 출근길. 람보 페라리 미만 잡'이라는 제목으로 퍼져나갔다. 블라인드에는 '삼전 다니는 친구 2명이 벌써 포르쉐를 계약하겠다고 하더라. 성과급으로 포르쉐를 사고도 돈이 한참 남는다니 믿기지 않는다. 근로의욕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글이 올라왔다.
'하이닉스·삼전 다니는 사람들 특징'이라는 게시물도 화제가 됐다. 요플레 뚜껑을 핥지 않고 버린다, 기름을 넣을 때 싼 주유소를 찾지 않고 가까운 곳으로 간다, 배달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짜장면 대신 간짜장을 시킨다는 내용이었다. 누리꾼들은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스레드에서는 'DS 고졸 3년 차가 DX 부장급 박사 100년 치와 맞먹는다. 남편이 뉴스를 보고 사기를 잃었다', '억울하면 삼전닉스에 입사해야지 어쩌겠나', '삼전 다니는 김 부장은 조만간 서울에 자가를 마련할 것 같다' 등 반응이 이어졌다. 인스타그램에는 '심각한 사회적 위화감이 생긴다', '이래서 학창 시절에 공부를 열심히 했어야 했다', '부럽다 못해 자괴감이 든다'는 댓글이 쇄도했다.
네이버 뉴스 댓글창도 날이 섰다. '그만 좀 보도해라. 진짜 일하기 싫어진다', '기사를 볼 때마다 힘이 빠지고 짜증이 난다', '대다수 국민의 상대적 박탈감은 어쩌라는 거냐'는 목소리가 주를 이뤘다.
비슷한 분위기는 앞서 11일 KBS 2TV '다큐멘터리 3일'이 방영한 '처음 만난 세계 - 이천 SK하이닉스 72시간' 편을 둘러싸고도 감지됐다. 해당 프로그램은 반도체 개발·생산 현장 직원들의 일상을 담았는데, 방송 직후 유독 밝은 직원들의 표정이 화제로 떠올랐다. SK하이닉스는 올해 초 연봉 1억원 기준 약 1억5천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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