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에 따르면 미국 사법당국이 쿠바의 막후 실권자 라울 카스트로 전 대통령을 전격 기소하면서 중남미 정세에 다시 한번 거센 파고가 예고되고 있다. 올해 1월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전 대통령 체포로 경색됐던 역내 긴장이 또다시 증폭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워싱턴이 꺼내 든 카드는 29년 전 사건이다. 1996년 쿠바 공군은 마이애미 소재 망명 단체 '구출의 형제들' 소속 항공기 2대를 격추했고, 이 과정에서 탑승자 4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서 해당 작전에 관여한 혐의가 라울에게 적용됐으며, 법무부는 최고 형량으로 사형 또는 종신형까지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토드 블랜치 법무부 장관 대행은 마이애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법정 출석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자발적이든 다른 경로든 카스트로가 미국 법정에 서게 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번 조치를 두고 "대쿠바 관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평가했다. 다만 군사개입설에 대해서는 선을 그으며 "긴장을 고조시킬 의향도, 필요성도 없다"고 못 박았다. 그는 "쿠바는 이미 붕괴 직전이며 정권의 국정 장악력은 사실상 소멸했다"고 덧붙였다.
이번 기소는 트럼프 행정부가 쿠바 체제 전환을 밀어붙이는 흐름 속에서 나왔다. 워싱턴은 아바나에 연료를 대는 국가들을 겨냥해 고강도 제재를 가하며 섬나라를 전방위 봉쇄하고 있다. 그 여파로 쿠바 전역에서는 대규모 정전이 속출하고, 수십 년 만에 최악의 경제난이 심화하는 중이다. 대중교통은 멈춰 섰고, 수거 차량 운행 중단으로 거리에는 쓰레기가 넘쳐난다. 한여름 폭염에도 냉방기는커녕 냉장고조차 돌리지 못하는 가정이 부지기수다.
법무부 수장이 극형 가능성까지 언급했지만, 올해 94세를 앞둔 노령의 혁명가가 실제로 미국 감옥에 수감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가 칼을 빼 든 배경에는 명확한 전술적 셈법이 깔려 있다. 라울은 형 피델 카스트로, 동지 체 게바라와 함께 1959년 혁명을 이끈 뒤 반세기 가까이 국방을 총괄했다. 2008년부터 10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고, 퇴임 후에도 정·재계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미겔 디아스카넬이 명목상 국가수반이지만, 쿠바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힘은 카스트로 가문에서 나온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아바나 정부는 '혁명의 마지막 전설'에 대한 기소에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법적 근거가 전무한 정치 쇼"라며 "무모한 군사 침공을 합리화하려는 명분 쌓기에 불과하다"고 맹비난했다. 그는 1996년 격추 조치가 "쿠바 영공을 반복 침범한 악명 높은 테러범들에 맞선 정당방위"였다고 강조하면서, 당시 미국 당국도 영공 침범 경고를 받고도 이를 묵인·방조했다고 역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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