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임나래 기자] 수도권 아파트 시장이 연일 신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지만, 주택업계와 유주택자들이 체감하는 공포는 도리어 극에 달하고 있다. 글로벌 채권시장을 뒤흔든 미국의 고금리 쇼크가 국내 금융 시장을 타고 부동산 현장으로 빠르게 전염되고 있어서다. 여기에 공시가격 현실화에 따른 세금 부담까지 한꺼번에 덮치면서,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는 자산가치 상승이 오히려 독이 되는 ‘착시 효과’가 될 수도 있다.
◇美국채발 금융 쇼크…177조 부동산 PF ‘부실 시계’ 빨라진다
미국 장기채 금리의 가파른 폭등세가 국내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 핵심 변수로 부상했다. 미 뉴욕 채권시장에서 30년 만기 국채금리는 19일(현지시간) 장중 5.197%를 돌파하며 2007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글로벌 대출금리의 척도가 되는 10년물 국채금리 역시 장 초반 4.687%까지 치솟아 2025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보였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로 유가 불안이 지속되는 가운데, 인플레이션 장기화에 대한 공포가 채권 투매를 부추긴 결과다.
글로벌 금리의 고공행진은 국내 채권시장을 즉각 압박하고 있다. 국고채와 은행채 금리가 동반 상승하면서 시중은행의 조달비용이 불어났고, 이는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끌어올리는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졌다. 한국은행마저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시장의 긴장감은 더욱 팽팽해졌다.
가장 먼저 비명이 터진 곳은 자금줄이 막힌 건설·시행업계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전 단계이자 ‘약한 고리’로 꼽히는 브릿지론의 이자 부담이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말 기준 부동산 PF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는 177조90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신규 대출을 조이면서 전분기보다 8조7000억원 줄었지만, 여전히 시한폭탄급 규모다. 본PF로의 전환 문턱이 높아지면서 사업장들은 고사 위기에 처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브릿지에서 본PF로 갈아타야 하는데, 시장 침체와 금융권의 보수적 심사로 이 전환에 막힌 사업장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어 “미분양도 큰 원인이지만, 한 사업장의 부실이 연쇄적으로 다른 사업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더 부담”이라며 “부동산 시장 분위기가 좋아 보이더라도 건설업계가 체감하는 위험은 또 다른 문제”라고 경고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공사비가 이미 오른 상황에서 금융 조달비용까지 뛰면 결국 분양가 상승 압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대출이 막혀 있는 상황인데 누가 높은 분양가에 선뜻 나서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금리까지 오르면 건설업 회복 속도도 더뎌질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속 빈 강정 된 ‘신고가’…보유세 폭탄에 고령층 자산가도 ‘비명’
집값 상승의 온기가 시장 전반으로 퍼지지 못하는 배경에는 혹독한 세금과 이자 부담이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5월 수도권 주택사업경기전망지수는 72.9로, 전월 대비 5.3포인트나 주저앉았다. 대출 원리금 상환 압박이 커진 상황에서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 시점이 다가오고, 비거주 1주택자에 대한 과세 강화 움직임까지 보이자 매수 심리가 급격히 위축된 탓이다.
대출을 끼고 집을 산 유주택자들은 집값이 올라도 손에 쥐는 게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다. 특히 공시가격 급등에 따른 보유세 폭탄은 고정 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에게 치명타다.
실제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베일리’ 전용면적 84㎡의 올해 공시가격은 45억6900만원으로 지난해(34억 3600만 원)보다 33% 뛰었다. 이에 따른 올해 추정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는 2855만원으로, 지난해(1829만원)와 비교해 무려 56.1%나 급증하게 된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서울 주택가격이 계속 오르고 있지만 양도세와 보유세 등 세금 부담 이 크다”이라며 “래미안 원베일리만 봐도 보유세가 연 2800만원 수준으로 예상되는데, 월 200만원이 넘는 금액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고가 주택을 보유했더라도 소득이 충분하지 않은 고령층 입장에서는 매달 감당하기 쉽지 않다”며 “현재는 집값이 올랐다고 해서 좋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했다.
◇자산가들에겐 ‘찻잔 속 태풍’…시장 양극화 심화 우려도
반면 현 자산가들이 밀집한 초고가 주택시장의 저항력을 감안할 때, 과도한 세금부담이 아니라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래미안 원베일리의 경우, 1년 만에 공시가격이 11억 3300만원 상승한 것에 비하면 늘어난 보유세(2855만 원)는 자산가치 상승분의 약 2.5%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남권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이 일대는 추가 상승 기대감이 큰 지역”이라며 “대장급 아파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보유세가 과도하게 높다고만 보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일부 호가는 70억원선까지도 형성돼 있는데, 대부분 현금 여력이 있는 자산가들을 중심”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결국 고금리와 세제 압박이 유동성 여력이 부족한 서민·중산층과 한계 건설사들을 한계로 내모는 반면, 현금 동원력이 풍부한 초고액 자산가들은 신고가 랠리를 주도하는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가 한층 심화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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