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저녁 경기 수원종합운동장.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국에서 7년여 만에 남북한 축구 경기가 열렸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여자 챔피언스리그(AWCL) 준결승에서 한국의 수원FC 위민과 북한의 내고향 여자축구단이 격돌했다. 이날 경기는 내고향 축구단이 치열한 접전 끝에 2대 1로 수원FC 위민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전반 초반은 홈팀 수원이 막강 공세를 펼치며 경기를 주도했다. 특히 여러번의 골 찬스에서 두 번이나 골대를 맞추며 아쉽게 득점에는 실패했다.
결국 두 팀은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며 전반을 0:0으로 마쳤다. 팽팽한 균형은 후반 시작 4분만에 수원FC 위민이 선제골을 터트리며 깨졌다. 그러나 내고향 여자축구단은 6분 뒤 동점골과 22분에는 역전골까지 넣으며 결국 승리했다.
내고향 여자축구단 선수들은 승리 확정 후 그라운드에서 달려나온 코치진과 선수들이 서로 앉으며 기쁨을 나눴다. 수원 선수들과는 형식적인 손 인사를 나눴지만, 이외에 응원단에게 인사하는 등 별다른 행동 없이 경기장을 나왔다.
북한 선수단의 한국 방문은 2018년 인천에서 열린 국제탁구연맹(ITTF) 월드투어 그랜드파이널스 이후 7년 5개월 만인 만큼,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선수단의 입국부터 준비된 7000여 석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우비를 입고 경기장을 찾았고, 현수막과 깃발을 흔들며 양 팀 선수들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경기장을 채웠다.
경기장을 찾은 사람들
이번 경기는 북한의 고향을 떠나 가족과 헤어진 실향민들과 북한을 떠나온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북에서 온 선수들이) 내 손녀딸, 조카딸 같아서 보러 왔죠."
경기장을 찾은 91세 최종대 씨는 16살 때 6.25 전쟁으로 고향 황해도를 떠나 아버지와 형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네 명의 동생들과 어머니, 할머니, 그리고 할아버지는 그 이후 만나지 못했다.
"(선수 중에) 내 가족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내 동생의 손주가 됐든, 뭐가 됐든…"
탈북 방송인 이철은 씨는 BBC에 "떨리는 마음으로" 경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응원은 우리 대한민국을 하겠지만, 그래도 북한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같은 민족 아닙니까?…한국 땅에서 북한 선수들이 경기하는 이런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스포츠로 통일을 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을 수 있잖아요."
공동응원단으로 경기장을 찾은 많은 사람은 점점 거세지는 비에도 자리를 지켰다. 응원단은 양 팀을 모두 응원했지만, 내고향 여자 축구단이 골을 넣을 때 '오 필승 내고향'이라는 응원과 함께 특히 큰 함성이 터졌다.
탈북민 김연화 씨는 경기를 관람하면서 연신 눈물을 훔치며 선수들이 "기특하다"라고 했다.
"통일된 광장에서 다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기대와 불만
한국에서는 북한 선수단의 방남 소식이 경기 전부터 화제가 됐다. 이날 경기장에도 내외신 기자들의 취재 열기가 뜨거웠다.
이러한 관심의 배경에는 최근 몇 년간 크게 경색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감으로 보인다. 특히 2023년 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오랜 통일 목표를 버리고 '두 국가' 선언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이번 경기를 바라보는 사람 중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에 앞서 만난 이대길 수원FC 공식 서포터즈 '포트리스' 회장은 이번 경기에서 북한팀의 한국 방문이 큰 관심을 받으면서 정작 "(수원FC 위민) 선수들의 활약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번 경기가) 정치 국가적, 이런 이념의 문제로만 비치는 게 아쉽다는 생각을 하고 저희는 그런 선수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지 않게 그냥 항상 하던 대로 (응원)할 예정입니다."
이 회장은 이번 경기를 위해 구성된 남북 공동응원단 참여 제안도 거절했다고 했다.
남북 민간 공동응원단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남북협력민간단체협의회(북민협) 등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가 수원FC 위민과 내고향 여자축구단을 함께 응원하기 위해 구성한 응원단이다. 응원단에 따르면 약 3000명 규모로 구성됐고, 통일부는 남북협력기금으로 3억원 규모의 응원 비용을 지원했다.
북한의 여자 축구
북한 여자 축구팀은 국제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북한 여자 축구는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 랭킹 11위로, 21위인 한국보다 크게 앞서있다.
2012년 평양을 연고로 창단한 내고향 여자축구단은 2022년 북한 리그 우승을 한 이력이 있으며, 현 북한 여자대표팀 감독이 지휘를 맡고 있다.
이번 대회 예선에서도 라오스와 부탄, 대만 팀을 상대로 23득점 0실점이라는 기록으로 연승하고 본선에 진출했다. 본선에서는 일본 팀에 패했지만 미얀마 팀과 수원 FC 위민을 상대로 우승했다.
내고향 여자축구단은 17일 인천공항을 입국할 때부터 많은 취재진과 환영 인파를 만났으나, 앞만 응시한 채 공항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이후 기자회견에서도 경기와 관련된 질문 외에는 대답하지 않앗다.
그럼에도 한 경기장에서 남북 선수들이 맞붙는 모습은 긴장 국면 속에서도 스포츠가 대화의 공간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평가된다.
북한 내고향 여자축구단은 오는 23일 일본의 도쿄 베르디와 결승전을 치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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