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때 조성된 숲…입장료 무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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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 때 조성된 숲…입장료 무료,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

위키트리 2026-05-20 21:31: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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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서쪽 위천 강가에는 천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숲, 함양 상림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치수의 흔적에서 출발한 이 숲은 함양의 역사와 생태를 함께 품은 공간이다. 오늘날에는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명소로 시민들의 발길을 이끈다.

함양 상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홍수를 막기 위해 조성한 숲

함양 상림은 통일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 태수로 부임한 고운 최치원 선생과 관련이 깊은 숲으로 여겨진다. 당시 함양의 옛 지명은 천령군이었다. 최치원 선생이 주민들의 삶을 안정시키고 반복되던 홍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숲 조성을 추진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다. 하천이 범람하면 민가와 농경지가 피해를 입었고, 주민들의 생계도 흔들렸다. 함양 상림의 출발점에는 수해를 줄이려는 치수의 필요성이 놓여 있었다.

함양 상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당시 수해의 주요 원인은 함양읍 중앙을 지나던 위천수의 흐름이었다고 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시기에는 물길이 빠르게 불어났고, 마을 중심부가 홍수 피해에 노출됐다. 불어난 물은 민가와 농경지를 덮치며 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위협했다. 이에 최치원 선생은 물길을 다른 방향으로 우회시켜 마을이 직접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는 구상을 세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천을 막는 데 그치지 않고 흐름 자체를 바꾸려 했다는 점에서 함양 상림은 처음부터 치수와 밀접하게 연결된 숲이었다.

최치원 선생은 백성들과 함께 함양읍 중앙을 흐르던 위천의 물길을 차단하고, 강물이 현재의 위치로 흐르도록 돌렸다고 알려져 있다. 이어 강변에 둑을 쌓고, 둑의 흙이 물살에 쓸려 내려가지 않도록 주변에 나무를 심었다. 이렇게 조성된 제방림이 오늘날 함양 상림의 시작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물길과 둑, 나무가 함께 만들어낸 구조가 오랜 세월을 지나 지금의 숲으로 이어진 셈이다.

당시 이 숲은 대관림이라 불렸다고 한다. 관청과 주민들이 숲을 보호하면서 나무들은 둑을 단단히 붙잡는 역할을 했다. 뿌리는 흙을 지탱했고, 울창한 숲은 강변을 따라 이어지며 함양읍을 지키는 호안림이 됐다. 대관림은 경관만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었다. 물길을 다스리고 주민의 삶을 지키기 위해 조성된 실용적인 숲이었다.

함양 상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대관림은 오랜 기간 함양읍의 방파제 같은 기능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큰 홍수를 겪으며 숲의 가운데 부분이 무너졌다. 하나로 길게 이어져 있던 숲은 이때 두 구역으로 나뉘었다. 위쪽에 남은 숲은 상림, 아래쪽에 자리한 숲은 하림으로 불리게 됐다. 하나의 숲이 자연재해를 거치며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진 것이다.

이후 두 숲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다. 하류 쪽에 있던 하림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주거지가 넓어지는 과정에서 점차 훼손됐다. 마을이 들어서고 토지가 개간되면서 숲의 형태는 점점 사라졌다. 현재 하림은 몇 그루의 나무만 남아 옛 숲의 흔적을 보여준다. 반면 상림은 비교적 옛 모습을 유지했다. 지금의 함양 상림은 대관림에서 이어진 인공림의 형태를 간직한 공간으로 평가된다.

천연기념물로 남은 천년 인공림

함양 상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림의 하나로 꼽힌다. 자연적으로 생겨난 숲이 아니라, 홍수 방제라는 뚜렷한 목적 아래 사람이 설계하고 나무를 심어 만든 숲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인공 생태계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유지됐다는 사실은 산림사와 조경사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함양 상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함양 상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이 숲은 역사 유산이자 살아 있는 생태 공간이다. 최치원 선생의 치수 사업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를 품고 있으며, 함양의 지형과 물길, 주민의 생활사를 함께 보여준다. 과거의 치수 노력이 오랜 세월을 지나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으로 남은 사례다.

숲의 가치는 오래된 나무의 수령에만 머물지 않는다. 위천의 물길을 바꾸었다는 이야기와 둑을 따라 이어지는 선형 구조, 그 위에 자리 잡은 수목이 한 공간에서 맞물린다는 점이 중요하다. 상림을 걷는 일은 숲길 산책이면서 강과 마을의 관계를 읽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길을 다스리려 했던 선조들의 생각이 지금은 숲의 형태로 남아 방문객을 맞는다.

숲의 구조는 위천과 제방의 흐름을 따라 이어진다. 현재 보존·관리되는 상림의 전체 면적은 21ha 규모다. 과거 위천수의 물길을 돌리며 축조한 제방의 선형을 따라 숲이 형성됐고, 둑의 길이는 1.6km에 이른다. 긴 제방과 나무, 하천이 맞물리며 함양읍 서쪽에 넓은 녹지 축을 이룬다. 이 구조 덕분에 함양 상림은 평지에 자리하면서도 강변 숲 특유의 깊은 분위기를 갖췄다.

함양 상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이 숲은 평지에 조성된 호안림이지만, 내부로 들어서면 오랜 숲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나무들은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심어졌으나, 긴 시간 동안 스스로 자리를 잡고 세대를 이어왔다. 제방을 따라 심긴 수목은 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오늘날에는 숲길과 그늘, 생태 환경을 함께 만든다. 함양 상림이 치수의 흔적과 자연의 변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이유다.

상림의 중심 수종은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류다. 이 나무들은 오랜 시간 함양 지역의 토양과 기후에 적응하며 숲의 큰 틀을 이뤘다. 높이 자란 나무들이 하늘을 덮고, 그 아래로 다양한 식물이 이어지며 깊은 숲의 분위기를 만든다. 인공림으로 시작했지만 현재의 상림은 한 가지 나무만 줄지어 선 숲이 아니다. 여러 수종이 어우러져 안정된 숲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류가 상층부를 이루는 사이, 하층부에는 왕머루와 칡을 비롯한 덩굴식물이 자란다. 덩굴은 나무줄기를 타고 오르거나 땅 위를 덮으며 숲의 밀도를 더한다. 평지에 둑을 쌓아 만든 인공림이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며 자연림에 가까운 생태 구조를 갖춘 모습이다. 숲길을 걷다 보면 제방 위에 조성된 숲이라는 사실과 깊은 산속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가 함께 다가온다.

함양 상림에는 120여 종의 나무가 자생한다. 다양한 수종이 한 공간에 어우러져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원 역할도 한다. 숲을 찾은 아이들은 나무의 생김새와 잎, 계절에 따른 변화를 직접 관찰할 수 있다. 교과서 속 식물이 실제 숲에서 어떻게 자라고 달라지는지 살펴볼 수 있는 장소다. 역사 유산이자 생태 교육의 장으로 기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길

함양 상림은 사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봄에는 연둣빛 새잎이 돋아 숲 전체가 밝아진다. 긴 겨울을 지난 나무들이 잎을 틔우면 숲길에는 부드러운 신록이 퍼진다. 여름에는 나뭇잎이 하늘을 촘촘히 덮어 짙은 그늘을 만든다. 강한 햇볕이 숲 안으로 곧장 들어오지 않아 산책하기 좋은 환경이 된다.

가을이 되면 활엽수들이 색을 바꾸며 숲길에 단풍을 펼친다. 나무마다 물드는 시기와 색감이 조금씩 달라, 같은 길을 걸어도 구간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난다. 겨울에는 잎을 떨군 나뭇가지 위로 눈이 내려앉아 차분한 설경을 이룬다. 화려한 시설보다 나무와 길, 계절의 변화가 여행의 중심이 되는 공간이다.

함양 상림의 가을 / 함양군 김용만 제공-뉴스1

특히 여름의 상림은 무더위를 피해 걷기 좋은 숲길로 꼽힌다. 도심의 열기가 높아지는 시기에도 숲 안으로 들어서면 빽빽한 나무 그늘이 햇볕을 막아준다. 옆으로 흐르는 위천에서 불어오는 바람도 숲길을 따라 움직인다. 나무 아래에서 쉬거나 천천히 산책하기에 알맞은 환경이다. 매미 소리와 새소리가 이어지는 숲 안에서는 번잡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난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상림 내부에는 흙길 형태의 오솔길이 이어진다. 아름드리나무 사이로 난 길은 빠르게 지나치는 길이 아니라 천천히 걸으며 숲을 살피는 길에 가깝다. 가족이나 연인이 함께 걷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아스팔트 길을 벗어나 흙을 밟으며 걷는 동안 숲의 공기와 그늘, 물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함양 상림이 지역 주민과 방문객에게 생활 속 휴식처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함양 상림공원 / 한국관광공사(촬영 : 김지호)

오솔길은 위천의 흐름과 제방의 선형을 따라 걸으며 숲의 생태를 가까이에서 체감하게 하는 동선이다. 나무의 높이, 덩굴식물의 얽힘, 흙길의 감촉, 강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어우러져 상림 고유의 분위기를 만든다. 숲을 깊이 이해하려면 빠르게 지나가기보다 걸음을 늦추는 편이 좋다. 천천히 걷는 동안 오래된 제방림의 구조와 사계절의 변화가 자연스럽게 시야에 들어온다.

언제든 찾을 수 있는 열린 숲

함양 상림은 상시 개방되는 공간이다. 별도의 입장료도 없다.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원하는 시간에 숲을 찾을 수 있어 지역 주민에게는 일상의 산책로가 되고, 함양을 찾는 방문객에게는 천년 숲의 역사를 접하는 여행지가 된다. 여행 일정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다는 점도 특징이다. 정해진 관람 시간에 쫓기기보다 숲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머물 수 있다. 길의 높낮이가 크지 않아 숲의 흐름을 따라 걷기에도 부담이 적고, 짧은 일정에도 편하게 들르기 좋다.

상림공원 연꽃단지 / 함양군 김용만 제공-뉴스1

상림의 특징은 오래된 나무와 길, 물길이 만든 차분한 풍경에 있다. 본래 홍수를 막기 위한 실용적 목적으로 조성된 공간이었으나, 시간이 쌓이면서 역사와 생태, 휴식의 기능을 함께 지닌 장소가 됐다. 위천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을 걷다 보면 함양 상림이 오래도록 자연유산으로 남은 이유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물길을 바꾸고 둑을 쌓았다는 이야기, 그 둑을 지키기 위해 심었다는 나무, 홍수로 갈라진 상림과 하림의 역사, 그리고 남은 생태계가 1.6km의 한 길 위에 겹쳐 있다. 위천 강가를 따라 이어지는 이 숲길은 오래된 치수의 흔적이자, 지금도 걸을 수 있는 함양의 자연 여행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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