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시간 - 7] 아모레퍼시픽, 80년 기술 계보…1부 서성환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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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시간 - 7] 아모레퍼시픽, 80년 기술 계보…1부 서성환의 시간

폴리뉴스 2026-05-20 17:13:52 신고

(편집자주)'기업의 시간'은 대한민국 산업을 만들어 온 기업들의 역사와 변곡점을 기록하는 연재다. 창업과 성장, 위기와 재편을 거치며 기업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스스로를 바꿔왔다. 폴리뉴스는 이 연재를 통해 식품•유통•소비재 산업을 중심으로 한국 경제의 한 축을 형성해 온 기업들의 발자취와 경영의 전환점을 차례로 조명한다.

1960년 서성환 선대회장 해외 시찰-선진 화장품 기술과 대규모 자동화 공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이 시찰이 국내 최대 화장품 자동화 시설 영등포공장 준공의 계기가 됐다.​​​​​
1960년 서성환 선대회장 해외 시찰-선진 화장품 기술과 대규모 자동화 공장을 직접 눈으로 확인한  이 시찰이 국내 최대 화장품 자동화 시설 영등포공장 준공의 계기가 됐다.​​​​​

올해 5월, 아모레퍼시픽이 나노 과학 분야 국제 학술지 ACS Nano 표지를 장식했다. KAIST 최시영 교수 연구팀과 공동 개발한 20나노미터급 초안정 나노 전달체 기술 'Lipo3Ex'. 앞서 4월에는 미생물학 분야 국제 학술지 'International Microbiology'에 피부 마이크로바이옴과 피부 표면 대사체를 통합 분석한 논문을 게재했다. 두 달 사이, 두 편의 국제 학술지. 이 기업의 연구혁신 조직 R&I(Research & Innovation) 센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9년 만인 1954년, 이미 국내 최초의 화장품 연구실을 세웠다. 2평짜리 공장 한 귀퉁이에서. 분자 수준의 피부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오늘의 R&I 센터는 그 2평짜리 공간의 직계 후예다. 그 계보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이해하려면 1932년 개성 시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창업 9년 만인 1954년, 이미 국내 최초의 화장품 연구실을 세웠다. 2평짜리 공장 한 귀퉁이에서. 분자 수준의 피부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오늘의 R&I 센터는 그 2평짜리 공간의 직계 후예다. 그 계보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이해하려면 1932년 개성 시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개성상인의 유산

아모레퍼시픽의 뿌리는 화장품 회사 이전에 개성 상인의 이야기다. 창업자 서성환(1924~2003)의 어머니 윤독정(1891~1959)은 1932년 개성에서 동백 머릿기름을 한 병 한 병 손수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좋은 동백씨를 고르는 법, 손님에게는 무조건 좋은 물건만 내놓아야 신뢰가 생긴다는 원칙을 어린 아들 서성환에게 몸소 가르쳤다. 윤독정이 1937년 차린 창성상점이 아모레퍼시픽의 실질적 모태다. 상점의 이름은 바뀌었지만, 원료에 대한 집착과 품질 우선의 DNA는 그대로 대물림됐다.

서성환은 1945년 광복과 함께 개성에서 서울 남창동으로 사업장을 옮겨 태평양화학공업사를 창립했다. 기업 이름에 '태평양'을 넣은 것은 수사가 아니었다. 더 넓은 세계를 향한 방향 선언이었다. 1948년, 그는 한국 최초로 상표를 붙인 화장품 '메로디 크림'을 내놓았다.

화장품에 상표를 붙이는 문화 자체가 없던 시절, 한국 상표법 제정보다 1년 앞선 시도였다. 6.25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서성환은 멈추지 않았다. 1951년 피마자유를 원료로 한 식물성 포마드 'ABC 포마드'를 출시했고, 1959년에는 프랑스 코티사와 기술 제휴를 맺어 선진 제조 기술을 흡수했다.

1958년에는 국내 최초의 월간 미용 정보지 '화장계'를 창간했다. 피부 기초 손질부터 얼굴형에 맞는 스타일까지 폭넓게 다룬 이 간행물은 미용 정보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열었다. 독자들의 문의가 빗발치자 1961년 국내 최초 미용상담실을 공식 개설했다.

대부분의 기업이 생산량 증대에만 집중하던 시절, 고객 상담 창구를 먼저 만든 것이었다. 1962년에는 국내 최대 화장품 자동화 시설을 갖춘 영등포공장을 준공했다. 날림 제품이 판치던 시절에 원료와 공정에 집착하고,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는 방식은 개성 상인의 유산이자 이후 80년 기술 계보의 출발점이었다.

1958년 창간호- 국내 최초 기업 간행물이자 월간 미용 정보지 '화장계(化粧界)'. 피부 기초 손질부터 얼굴형별 스타일까지 폭넓게 다뤄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미용 정보를 열었다.
1958년 창간호- 국내 최초 기업 간행물이자 월간 미용 정보지 '화장계(化粧界)'. 피부 기초 손질부터 얼굴형별 스타일까지 폭넓게 다뤄 여성들에게 처음으로 미용 정보를 열었다.

 

2평 연구실의 기적

1954년, 서울 후암동 공장 한쪽 2평 남짓한 공간에 연구실 하나가 들어섰다. 국내 최초의 화장품 전용 연구실이었다. 수입 원료를 가져다 섞는 수준에 머물던 시절, 서성환은 기술을 직접 만들겠다는 방향을 택했다. 설비도 인력도 변변치 않았지만, 이 2평짜리 공간이 오늘날 아모레퍼시픽 기술연구원의 시초가 됐다.

연구의 방향은 처음부터 '한국 땅에서 자라는 것들'을 향해 있었다. 1960년대 중반, 서성환은 인삼에 주목했다. 식용 이외의 연구가 전무하던 시절이었다. 수년의 시행착오 끝에 1966년 세계 최초 한방 기술 화장품 'ABC 인삼크림'이 나왔다. 인삼밭으로 둘러싸인 유년 시절의 기억이 과학으로 구현된 결과였다.

같은 해인 1964년, 두 가지 역사적 사건이 동시에 일어났다. 하나는 국내 화장품 역사상 최초의 해외 수출이었다. '오스카' 브랜드 화장품 20여 종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로 향하는 항공 화물에 실렸다. K-뷰티의 출발점이었다.

다른 하나는 방문판매 전용 브랜드 '아모레(Amore)' 출시였다. 전통적인 도소매 유통을 탈피해 판매원이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제3의 유통 경로를 개척한 것이었다. '아모레 아줌마'는 1980년대까지 야쿠르트 아줌마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대중적인 존재가 됐고, 훗날 '아모레'는 회사 이름의 절반이 됐다.

1964년 아모레 브랜드 출시 · 방문판매 도입 - 전통적인 도소매 유통을 탈피해 판매원이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방문판매 전용 브랜드 '아모레(Amore)' 출시. 훗날 회사 이름의 절반이 된 브랜드의 출발점이다.
1964년 아모레 브랜드 출시 · 방문판매 도입 - 전통적인 도소매 유통을 탈피해 판매원이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방문판매 전용 브랜드 '아모레(Amore)' 출시. 훗날 회사 이름의 절반이 된 브랜드의 출발점이다.

기술 독립의 또 다른 전환점은 1984년이었다. 히알루론산은 당시 일본과 유럽에서 수입하던 고가 원료였다. 수입에 의존하는 한 진정한 경쟁력은 없다는 판단 아래 연구진은 1980년대 초반부터 미생물 발효 공법에 착수했다. 안산 공장에 발효 설비를 구축하고 균주 배양 조건을 거듭 실험한 끝에 국내 최초 히알루론산 자체 생산에 성공했다. 한국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고보습 스킨케어'를 경험하기 시작한 전환점이었다.

인삼 연구를 시작한 지 40여 년이 흐른 1997년, 한방 화장품의 결정판으로 불리는 설화수가 세상에 나왔다. 1987년 율무•당귀•치자•감초 등 한방 약초 성분을 추출한 '설화'가 그 전신이었다. 설화수는 한국적 미감과 첨단 원료 기술이 결합된 첫 번째 럭셔리 브랜드였다.

그리고 2008년 3월, 세계 화장품 역사를 다시 쓴 제품 하나가 나왔다. 아이오페 에어쿠션이었다. 주차도장에서 영감을 받아 개발된 이 제품은 콤팩트 케이스 안 스펀지에 액상 파운데이션을 담아 피부에 찍어 바르는 전혀 새로운 방식이었다.

처음에는 업계의 의아한 시선을 받았지만 출시 2년 만에 연간 판매량 50만 개, 2015년에는 3,300만 개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세계 최초 쿠션 화장품은 이후 로레알을 비롯한 전 세계 브랜드가 앞다퉈 모방하는 K-뷰티의 아이콘이 됐다.

이 기술 계보는 현재도 이어진다. R&I 센터는 올해 4월 미생물학 분야 국제 학술지 'International Microbiology'에 피부 마이크로바이옴과 피부 표면 대사체를 통합 분석한 연구를 게재했다. 연구진은 한국인 여성을 대상으로 젊고 건강한 피부 환경에서 공통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대사물질 페닐락트산(PLA)을 확인했다. PLA가 콜라겐 생성을 촉진하고 콜라겐 분해 효소 활성을 억제한다는 사실도 세포 실험으로 입증됐다.

피부 미생물이 단순히 존재하는 생태계가 아니라 피부 건강 상태를 결정하는 능동적 파트너라는 발견이었다. 1954년 2평 연구실이 70년 만에 분자 단위의 피부 생태계를 들여다보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서성환이 1960년대 생산 시설을 없애고 그 자리에 박물관을 세운 것은 단순한 문화 사업이 아니었다. 1979년 태평양화장사관, 1981년 태평양다예관으로 완성된 태평양박물관은 아시아 최초의 화장품•장신구 박물관이자 지금의 아모레퍼시픽미술관(APMA)의 전신이다. 아름다움의 근간을 전통문화에서 찾겠다는 창업자의 신념이 60년 넘게 이어진 셈이다.

태평양에서 아모레퍼시픽으로

1980년대 태평양화학은 화장품을 넘어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 유통•패션•음료 등 계열사가 늘어났고 외형은 커졌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수입 화장품이 국내 시장에 밀려들고 경쟁사들의 약진이 이어지면서 본업인 화장품 시장에서 오히려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92년에는 경영 이념 '인류봉사, 인간존중, 미래창조'를 선포하며 방향을 재정립했지만,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위기를 직시한 것은 아들 서경배였다. 1991년 기획조정실장으로 경영에 합류한 서경배는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화장품과 관련 없는 계열사를 차례로 정리하며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방향을 잡았다. 1997년 대표이사에 오른 그는 아버지가 쌓은 기술의 토대 위에서 브랜드와 유통을 재설계했다.

2002년 사명이 ㈜아모레퍼시픽으로 바뀌었다. 1964년 방문판매 전용으로 출시한 브랜드 '아모레'와 창업 이래 이어온 '태평양(Pacific)'을 결합한 이름이었다. 2006년에는 화장품•생활용품•건강식품 사업 부문을 분할해 아모레퍼시픽을 독립 법인으로 출범시키고, 기존 태평양은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2011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이라는 이름이 확정됐다. 1945년 태평양화학공업사로 출발한 기업이 66년의 진화 끝에 아모레퍼시픽그룹으로 완성됐다. 그 66년은 2평 연구실에서 시작된 기술 계보가 글로벌 뷰티 기업의 체계로 재편되는 과정이었다.

※ 이 기사는 연재 '기업의 시간' 7편 1부다. 다음 편에서는 2부, 서경배의 시간을 살펴본다.

[폴리뉴스 조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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