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사람 탈 쓰고 어떻게" 공분
무신사 '박종철 희화화' 이어 스타벅스는 대표 해임 파장
사회적 책임 망각한 기업들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X(옛 트위터)에서 언급한 무신사 광고 관련 게시물 / 이재명 대통령 X 갈무리
[포인트경제] 우리 사회의 뼈아픈 역사인 5·18민주화운동과 6월 민주항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거나 희화화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기업들의 ‘역사 불감증’ 마케팅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이재명 대통령까지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하면서 논란은 재계 전반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 대통령은 20일 자신의 X(옛 트위터)를 통해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과 이를 계기로 촉발된 6월 민주항쟁을 모욕하고 조롱하는 광고가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어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사실이라면 매우 심각한 문제”라며 “돈이 마귀라지만 사람의 탈을 쓰고 이럴 수가 있을까”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스타벅스 코리아의 5·18 관련 마케팅 논란이 확산되자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과거 기업들의 역사 왜곡·희화화 사례까지 잇따라 ‘파묘’되고 있다. 특히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지난 2019년 패션 플랫폼 무신사의 마케팅 논란이 대표 사례로 다시 소환되고 있다.
당시 무신사는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양말 제품을 홍보하며 “속건성 책상을 탁 쳤더니 억하고 말라서”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해당 카피는 군부독재 시절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했던 경찰 발표를 연상시킨다는 비판을 받았다.
1987년 경찰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열사의 영정을 들고 침묵시위를 벌이는 서울대 학생들. /민주화운동기념관 페이스북 갈무리
1987년 당시 치안본부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던 박종철 열사가 숨지자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물고문에 의한 질식사 사실이 드러나며 시민 사회의 분노가 폭발했고, 이는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
수조원대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으며 기업공개(IPO)를 본격화하고 있는 무신사가 역사의 비극을 마케팅 수단으로 소모했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기업의 재무적 성과뿐만 아니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수치 중 '사회적 가치(Social)' 항목을 엄격히 평가하기 때문이다. 비극적인 역사를 희화화해 매출을 올리려는 저급한 마케팅은 브랜드 이미지를 실추시킬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를 훼손하는 자폭 행위에 가깝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비극을 상품 광고 문구로 소비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무신사는 두 차례에 걸쳐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논란은 불매 움직임으로까지 번지며 큰 후폭풍을 남겼다.
5월 18일 스타벅스 프로모션 이벤트 앱 화면 캡쳐
이 같은 역사 감수성 논란은 최근 재계에서도 다시 불거졌다. 스타벅스 코리아가 제46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 진행한 마케팅 문구가 ‘5·18 폄훼 논란’으로 이어진 것이다.
논란 직후 신세계그룹 정용진 회장은 직접 사과문을 발표하고 손정현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이사를 해임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행사 기획과 운영에 참여한 담당 임원 역시 해임됐으며 관련 임직원들에 대한 징계 절차도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그룹 측은 이번 사안을 단순 실수가 아니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브랜드 신뢰를 훼손한 중대한 문제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상에서는 민주화 운동 기념일과 역사적 추모 시기마다 반복되는 기업들의 역사 감수성 논란이 더 이상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의 민주화 운동은 실존 희생자와 생존 피해자, 유가족이 존재하고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이 여전히 진행 중인 ‘현재진행형 역사’라는 점에서 사회적 민감도가 높기 때문이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자극적이고 화제성이 강한 콘텐츠를 우선시하는 ‘바이럴 중심 마케팅 문화’가 반복적인 논란의 배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극적이고 화제가 되는 콘텐츠가 곧 성과로 이어진다는 인식 속에서 역사적 비극마저 마케팅 소재처럼 소비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제 논란이 발생할 때마다 기업들은 “의미를 몰랐다”, “인터넷 밈인 줄 알았다”, “단순 레트로 콘셉트였다”는 해명을 반복해왔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서는 이를 단순 실무자의 실수라기보다 기업 내부의 검수 시스템과 역사 교육 부재 문제로 보는 반응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광고·홍보 부서를 중심으로 한 역사 교육 강화와 함께 지역별 민감 이슈, 정치·커뮤니티 용어 사용에 대한 검수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특히 극우 성향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사용되는 은어나 정치적 밈을 유행어처럼 차용했다가 기업 전체의 리스크로 번지는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 단순한 개인의 실수나 일회성 사고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 구조 다양성을 확보하고, 글로벌 기업들처럼 사전 검수 시스템과 내부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이어지고 있다.
단순 사과문 발표에 그치는 대응이 아니라 역사·문화 감수성을 점검할 수 있는 조직 차원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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