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도시 파리에서도 가장 지적이고 낭만적인 지역으로 꼽히는 리브고슈(Rive Gauche). 그 안에서도 뤼뒤바크(Rue du Bac)는 유난히 절제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화려한 관광지가 아닌, 17세기 저택과 갤러리, 장인들의 상점이 즐비한 이곳에 건축가 루이 라플라스(Luis Laplace)와 크리스토프 코모이(Christophe Comoy)가 특별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두 건축가가 새롭게 완성한 아파트는 전형적인 주거 공간과는 분명 결이 다르다. ‘사는 집’을 넘어 사람들을 초대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교 공간으로 설계했기 때문이다. “이곳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을 맞이하며, 무엇을 함께하며 시간을 보내는지를 말해주는 장소예요. 친구들과 모임을 갖고, 예술가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클라이언트와 자연스럽게 만나는 곳이죠. 일과 사적인 시간이 분리되지 않고 이어지는 점이 특징입니다. 누군가는 ‘쇼룸’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저는 그 표현을 좋아하지 않아요. 너무 상업적으로 들리거든요.” 루이의 말처럼 이곳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드나들며 어울리는 공간이다. 프라이빗하면서도 친밀하고, 무엇보다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장소로 기능한다.
오른쪽 바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루이 라플라스(왼쪽)와 크리스토프 코모이(오른쪽).
이 공간을 계획하고 완성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수많은 부동산 매물을 찾아다닌 끝에 이 아파트를 발견했지만,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매력을 지닌 것은 아니었다. 18세기에 지은 건물이지만, 내부는 1950년대에 리모델링을 거치며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사무실 형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전통적 장식이나 역사적 디테일도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공간에서 루이와 크리스토프는 오히려 가능성을 엿봤다. “우리의 관심은 늘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것에서 비롯해요. 창밖 풍경, 빛, 공기의 흐름 같은 거죠. 세 방향으로 열린 창, 높은 천장, 서로 다른 중정을 바라보며 사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 재현할 수 없는 이런 요소야말로 이 공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어요.” 크리스토프의 말이다.
이곳에 터를 잡기로 한 두 사람은 먼저 손으로 바꿀 수 있는 요소와 더할 부분을 차분히 정리했다. 내부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되, 공간의 역사를 그대로 복원하기보다는 18세기의 감각을 일부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오래된 성에서 실제 사용했던 원목 바닥재 ‘파르케 드 베르사유’를 옮겨와 설치한 것이 대표적 예다. 그 외 요소는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다. 공간에 맞춰 직접 제작한 가구와 기존에 수집해온 디자이너 피스를 함께 배치하고, 컨템퍼러리 작가들과 협업한 아트워크를 더했다. “과거를 그대로 재현하는 건 흥미롭지 않아요. 그래서 그 시대 분위기만 남기려 했죠. 건축과 재료는 최대한 담백해야 합니다. 이런 중립성이 확보되어야 그 위에 놓인 예술 작품과 오브제가 스스로 빛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서로 다른 작업도 공존할 수 있고요.”
아파트를 구석구석 둘러보면 회화, 가구, 세라믹이 조화롭게 놓인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러한 배치는 즉흥적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계산된 것도 아니다. 스타일링의 기준은 단 하나, ‘작품과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토대로 했다. 일본 현대미술가 다케사다 마쓰타니(Takesada Matsutani)와 협업한 서스펜션처럼, 그들의 컬렉팅 방식은 확고하다. 작품이 지닌 고유한 매력은 물론, 작가와의 관계 또한 중요한 축이 된다. 오랜 시간 교류해온 예술가들과의 협업은 이렇듯 공간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특히 170점에 이르는 세라믹 작품은 이곳에 유연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기능과 조형 사이를 오가는 다채로운 작품은 테이블 위에 놓이기도, 바닥에 내려앉기도 한다. 조각 작품처럼, 또는 꽃을 꽂는 실용적 오브제로 자리하기도 한다. “세라믹은 흥미로운 매체예요. 실용적이면서도 완전히 조형적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무엇보다 접근하기 쉬워요. 작품을 해석하거나 애써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루이의 세라믹에 대한 애정은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했다. 젊은 시절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몇 년간 세라믹 작업을 했던 그는 스승의 부재 이후 작업을 중단하고 뉴욕으로 이주했는데, 당시 쌓은 매체에 대한 관심이 자연스럽게 컬렉팅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개인적 수집을 넘어 클라이언트를 위해 컬렉션을 구성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사무실 근처에서 운영 중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으로 확장되고 있다. 별도로 마련한 공간에서는 젊은 세라미스트와 아티스트를 초대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고, 함께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레지던시에 참여하기 위한 특별한 조건이나 엄격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니다. 대신 서로를 이해하고 열린 자세로 대화하는 태도를 가장 중요시한다. “모든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연결’이에요. 서로 좋아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죠.”
이 아파트의 또 다른 중심은 바(bar) 공간이다. 현대적으로 설계된 이곳은 자연스럽게 사람들을 끌어당긴다. 신디 셔먼의 사진, 가에타노 페세의 의자, 1940년대 빈티지 암체어, 직접 디자인하고 제작한 커피 테이블, 미셀 보이어의 1970년대 램프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감각이 겹겹이 어우러진다. 이 흥미로운 공간은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시간이 흐르면서 오브제가 늘어나고, 배치가 바뀌었으며, 새로운 작품이 더해졌다. 두 사람은 이를 ‘레이어링’이라 표현한다. 집이 완성되기 전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수집해온 작품으로 채운 덕분에 켜켜이 축적된 시간의 깊이가 느껴진다.
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인테리어는 ‘정직한 공간’이다. 맥락에 충실하고, 과장되지 않으며, 뭔가를 애써 증명하지 않는 것. 이 아파트를 한 문장으로 정의해달라는 질문에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절충적이면서 동시대적이고, 무엇보다 정직하며, 과장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작동하는 장소.” 결국 사람을 위한 공간이라는 뜻이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곳에서 예술은 단순한 감상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은 예상치 못한 대화를 이끌고, 때로는 새로운 창작의 계기가 된다. “폴 매카시(Paul McCarthy)가 이곳에 놀러 왔을 때 갑자기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 같이 뭔가 그려볼까?’ 그 순간이 참 인상적이었어요. 아마 공간이 그의 창의성을 자극했겠죠. 이 아파트는 이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흐름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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