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간 장마기간 평년값이 올해 예보로 둔갑…기상청, 2009년부터 예보 안 해
장마라고 매일 비 오는 건 아냐…양상 변화에 '우기'로 개칭 주장도
(서울=연합뉴스) 김은경 기자 = 올해 6월 또는 7월에 '한 달 내내 비가 내릴 것'이란 내용의 게시물이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확산하고 있다.
기상청이 지난달 공식 발표가 아니라며 한 차례 진화에 나섰지만, 여전히 비슷한 내용의 허위 정보가 횡행한다.
이런 '장마 괴담'은 2023년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월간 일기 예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매년 비슷한 형태로 재생산되면서 인터넷에서 여름철마다 회자하고 있다.
기상청은 기후변화 등의 이유로 2009년 이후 공식 장마 전망을 내놓지 않고 있다며, 이 같은 '가짜 뉴스'에 주의할 것을 당부했다.
◇ 온라인 '올해 장마 기간' 게시물은 올해 예보 아닌 과거 평균
장마 관련 가짜 뉴스에서 가장 화제가 된 것은 2023년 7∼8월 MS의 MSN 날씨 예보였다. 당시 이 예보는 7∼8월에 거의 매일 비가 오는 것으로 표기됐고 해당 예보를 캡처한 사진이 인터넷에 확산하면서 그해 여름 길고 지루한 장마가 찾아오리라는 우려가 퍼졌다.
이에 기상청이 두 달에서 석 달 후까지 일자별 예고를 내는 것은 예보 기술상 불가능하다며 진화에 나섰으나, 이런 '괴담'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당시 해당 캡처 이미지의 영향으로 장화가 동나고 바람막이와 제습기 판매량이 크게 뛰었다는 언론 보도도 있었다. 통상 장마 용품은 본격적인 장마를 앞둔 6월에 구매가 집중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당시에는 5월 초부터 확산한 허위 정보로 인해 예년보다 한 달 이상 빠른 '조기 패닉 바잉' 현상이 나타나 5월 장화와 제습기 등 판매량이 전년 동기 대비 크게 늘기도 했다.
올해도 어김없이 기상청발 '장마 기간'을 안내한다는 가짜뉴스가 확산해 기상청이 "공식 발표 내용이 아니다"며 직접 반박에 나섰다.
SNS의 게시물에 제시되는 장마 기간은 실제 그 해 기상청이 예상한 장마 기간이 아니라 1991년부터 2020년까지 30년간 평균 장마 기간을 매년 가져다 쓰는 것이라고 기상청은 설명했다.
기상청은 또 장마 기간 내내 비가 오는 것이 아님에도 과장해 혼선을 일으켰다고 덧붙였다.
기상청 관계자는 "날씨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보니 조회수 등을 노린 가짜 뉴스가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며 "기상청은 2009년부터 공식적으로 장마 시종일(시작과 끝나는 날)을 예보하지 않으니 기상청 예보를 사칭한 가짜 뉴스에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장마 시작·종료 예보는 2009년 중단…장마철이라고 매일 비 오는 건 아냐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를 뜻하는 장마는 삼국사기에도 기록돼 있을 만큼 오래된 표현이다.
현대 기상학에서는 여름철 고온다습한 공기와 북쪽의 찬 공기가 충돌해 정체전선이 형성되면서 오랜 기간 비가 내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그러나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과거처럼 정체전선이 남에서 북으로 이동하며 비를 뿌리던 전형적인 형태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에 기상청은 "장마전선이 물러나고 나서도 많은 비가 내리는 만큼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학계 등의 지적과 자체 판단에 따라 장마 예보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며 2009년 장마 시작과 종료일 예보를 48년 만에 중단했다.
이후 등장한 가짜 예보에 활용되는 기간은 주로 1991∼2020년의 30년 평균치인 '평년값'이다.
이에 비춰보면 평년 장마 기간은 ▲ 제주도는 6월 19일에서 7월 20일 ▲ 남부지방은 6월 23일에서 7월 24일 ▲ 중부지방은 6월 25일에서 7월 26일로, 평균 31∼32일 정도다.
지역별로 역대 장마가 가장 짧았던 해는 모두 1973년이다. 당시 중부와 남부는 각 6일, 제주는 7일이었다. 가장 길었던 해는 중부와 제주는 2020년으로 각 54·49일, 남부는 2013년으로 46일 이어졌다.
기상청에선 현상 자체를 뜻하는 '장마'보다는 기간 개념이 강조된 '장마철'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장마철이 시작됐다고 해서 매일 비가 내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부지방 기준 평년 장마철은 31.5일이지만, 실제 강수일은 17.7일에 불과하다. 지난해 경우도 중부지방 장마는 6월 19일부터 7월 20일까지 32일간 이어졌지만, 비가 내린 날은 평균 14.2일이었다.
최근 장마는 정체전선이 좁고 강한 비구름대를 형성하면서 국지성 집중호우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아 지역 간 강수량 편차가 크다.
2024년 7월 10일에는 전북 익산에 264㎜의 폭우가 쏟아졌지만, 불과 25㎞ 떨어진 김제에는 25.5㎜만 내리는 등 극단적인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대기 불안정에 의한 강한 소나기인 '스콜'과 양상이 비슷한 게릴라성 호우가 잦아지면서 장마철 종료 후 폭우가 쏟아지는 일도 빈번해지고 있다.
지난해 남부지방의 장마 기간은 7월 1일 잠정적으로 종료됐다. 그러나 이후 7월 17일 하루에만 7월 한 달 평균 강수량에 맞먹는 최고 300㎜ 이상의 극한 호우가 쏟아졌다.
2022년 기상청의 '장마 백서'에 따르면 1994년 이후 한반도의 여름철 강수 패턴은 눈에 띄게 변했다.
장마 시작 전 건기인 6월 초순의 강수는 감소했지만, 6월 하순부터 7월 초순까지의 비는 늘어났다. 장마와 2차 우기(가을장마) 사이의 건기는 점차 짧아졌다.
2차 우기의 시작 시점은 빨라지고 최대 강도는 한여름 장마 못지않게 강해졌으며, 8월 20일 무렵에는 두 번째 강수 최대치가 나타났다. 이와 함께 9월 중순 강수도 크게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아울러 지구온난화로 동아시아 지역의 지표 기온이 계속 상승할 것으로 분석되면서 2099년까지 한반도 여름철 강수량이 15∼25% 증가하리란 전망도 나왔다.
◇ 장마, 수해 위험 있지만 수자원 확보 등 경제적 가치도…'우기'로 명칭 변경 의견도
전국 기상관측망이 갖춰진 1973년 이래 가장 긴 54일간의 장마가 이어진 2020년에는 호우·태풍으로 사망·실종 46명, 재산 손실 1조371억원이라는 피해가 발생했다.
2013∼2022년 10년간으로 확대하면 태풍·호우로 인한 사망·실종자는 122명, 재산 피해 규모는 약 3조원에 달한다.
장마는 이처럼 수해 위험을 몰고 오지만, 한편으로는 수자원 확보의 기회기도 하다.
우리나라 연간 강수량의 절반가량이 여름철에 집중되는데 이 중 약 30%가 장마철에 내린다.
기후변화로 평균 강우량이 줄어드는 추세인 만큼 장마철 강수는 산업 활동과 농업, 생태계 유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2022년 서경환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 연구팀은 한국기상학회에서 발표한 '장마철 첫 강수의 경제적 가치' 논문에서 장마철 첫 강수만으로도 수자원 확보·대기질 개선·산불 예방·가뭄 경감 등 측면에서 총 500억∼1천500억원의 경제적 가치가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장마의 양상이 변화하면서 '장마'라는 표현 자체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장마 기간 내린 여름철의 비 양과 장마 기간 후인 7월 말에서 8월에 내리는 비 양을 비교해보면 오히려 7월 말·8월에 내리는 비가 더 많은 해도 있는 만큼 일각에서는 '한국형 우기' 등으로 용어를 수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러나 기상청은 용어 변경에 신중한 입장이다.
학계에서도 기후적으로 볼 때 장마가 없던 해가 단 한 번도 없었고, 성질이 다른 기단이 충돌하는 장마는 동아시아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기상 현상이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장마는 삼국사기에도 등장할 만큼 역사가 깊고 국민에게 친숙한 표현이라 변경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명칭과 별개로 장마의 양상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라며 "장마가 이전보다 한 번 내릴 때 쏟아붓는 집중호우 형태를 띠는 경향이 강해지고 지역별 편차 또한 커진 만큼 이를 인지하고 대비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bookmania@yna.co.kr
<<연합뉴스 팩트체크부는 팩트체크 소재에 대한 독자들의 제안을 받고 있습니다. 이메일(factcheck@yna.co.kr)로 제안해 주시면 됩니다.>>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