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인조 왕이 피란길에 맛보고 그 쫄깃함에 반해 이름까지 붙여줬다는 ‘떡’의 고장. 충남 공주시는 발길 닿는 곳마다 1500년 전 백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거대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낮에는 찬란한 역사를 눈에 담고, 밤에는 시장통의 정겨운 맛에 취할 수 있는 이곳이 다시금 들썩이고 있다.
지난 15일, 80년 세월을 지켜온 공주산성시장이 화려한 불빛 아래 ‘밤마실 야시장’의 문을 활짝 열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터를 넘어, 여행객의 오감을 깨우는 지역 문화의 중심지로 탈바꿈한 현장이다. 은은한 달빛 아래 성곽길을 걷고 따끈한 인절미 한 입에 시름을 잊는 공주만의 특별한 밤. 낮보다 아름다운 공주의 밤거리 정취를 따라가 보았다.
80년 역사 산성시장, ‘밤마실 야시장’으로 북적
공주산성시장은 세계문화유산인 공산성 바로 옆에 자리한다. 조선 시대부터 금강 물길과 땅길이 만나는 지점이었던 이곳은 충청권에서 손꼽히는 큰 장터였다. 1937년 정식 시장이 된 이후 80년 넘게 지역 경제의 핵심 줄기 역할을 맡았다. 한때 전국적인 우시장이 설 정도로 붐볐던 장터는 이제 깨끗하고 편리한 시설을 갖추고 손님을 맞이한다.
올해는 원도심에 생기를 불어넣기 위한 ‘2026 공주산성시장 밤마실 야시장’이 열려 발길을 이끈다. 이번 행사는 오는 15일부터 10월 17일까지 매주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 5시부터 10시까지 운영한다. 단순히 먹거리를 파는 데 그치지 않고, 가족이 함께하는 체험 프로그램과 공연을 늘린 점이 눈에 띈다.
15일 개장식에는 가수 노라조와 전자 바이올린 연주자 이시보가 출연해 축제의 시작을 알린다. 5월 내내 마술쇼와 인디 음악, 국악 공연 등 여러 무대가 펼쳐져 봄밤의 운치를 더한다. 시장 곳곳에는 백제 문양을 입히고 예술 요소를 더해 구경하는 즐거움도 키웠다.
인절미와 밤의 고향, 입이 즐거운 시간
공주산성시장에 들렀다면 지역 특산물인 밤으로 만든 음식을 빼놓을 수 없다. 시장 골목에는 방금 쪄낸 쫀득한 인절미와 밤을 넣은 빵, 떡, 술 등 이색적인 간식이 가득하다.
특히 인절미는 공주와 인연이 깊다.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공주로 머물 당시, 임 씨 성을 가진 백성이 바친 떡이 맛 좋아 ‘임절미’라 불렀던 것에서 이름이 시작됐다는 설이 있다. 역사가 담긴 쫄깃한 인절미는 공주에서만 맛보는 작은 행복이다.
야시장에는 13개의 음식 및 판매 구역이 들어선다. 스테이크와 수제 맥주 같은 요즘 음식부터 정겨운 시장 먹거리까지 선택의 폭이 넓다. 한쪽에는 제기차기와 투호 등 전래 놀이 체험판도 깔려 있어 어른에게는 추억을, 아이에게는 생소한 즐거움을 준다. 위생과 안전 점검도 마쳐 누구나 마음 편히 야시장을 누릴 수 있다.
성곽길 야경 '공산성'과 '무령왕릉'
야시장이 열리기 전 낮에는 주변 유적지에서 백제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시장 맞은편 공산성은 금강을 내려다보는 천혜의 요새다. 약 2.6km의 성벽 길을 걷다 보면 굽이치는 강줄기와 공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낮 풍경도 빼어나지만, 어둠이 내린 뒤 성벽을 비추는 조명은 신비로운 밤경치를 선사한다.
차로 10분 거리에는 무령왕릉과 왕릉원이 있다. 백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합장릉인 이곳은 당시의 높은 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역사 거점이다. 무덤 내부를 직접 들어갈 수는 없지만, 전시관에서 실제와 똑같이 만든 내부를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화려한 금 장신구 등 유물을 보며 옛 백제의 위엄을 떠올리게 된다.
여행의 마무리는 제민천 카페거리가 알맞다. 옛 관공서가 모여 있던 제민천 일대는 낡은 건물을 고친 카페와 독립 서점이 모여 젊은 층에 주목받는 곳이다. 하천을 따라 산책하며 공주만의 포근한 느낌을 즐기기 좋다. 골목 사이 벽화와 아기자기한 간판을 찾는 재미가 있어 '공주의 경리단길'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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