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매거진=벼내림 작가] 마지막 여행지인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땐 예산이 거의 떨어져 가던 시기였다. 눈 돌아가는 기념품은 지천으로 널렸지만, 원하는 만큼 살 수 없는 슬픈 현실과 마주했다. 이번엔 구매 물품이 적은 관계로 약간의 메모를 곁들여 만들었다. 글이 더해지니 그래도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역시 난 여백의 미보다 가득의 미가 좋다.
(1) Handwerkskunst Frankfurt: 뢰머 광장 근처의 멋진 수공예샵
뢰머 광장 근처 기념품 가게 중에서도 가장 귀여운 친구들이 많았던 곳. 근처를 걷다 우연히 발견해 더 소중했던 가게다. 독일어로 ‘Handwerk’는 수공업/기술이고, ‘kunst’는 예술이다. 따라서 ‘Handwerkskunst’는 수공예 혹은 장인정신으로 해석된다. 가게를 들어서자 크기와 디자인이 다양한 시계가 한 벽면 빼곡했다. 아직 집에 시계가 없어 하나 장만할까 싶었는데, 정작 가게를 나올 때 손에 들려있는 건 조그만 동물 피규어였다. 귀여움이 필요를 이겼다. 까만 생명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검은 고양이와 강아지를 두고 올 수 없었다. 계산할 때 직원분이 알려 주신 건데, 아래쪽 홈이 파인 곳을 누르면 관절이 움직였다. 재밌고 신기한 기믹까지 숨겨져 있었다! 다음날 또 방문해 친구 선물로 별을 든 고양이도 구매했다.
(2) GALERIA Frankfurt an der Hauptwache: 뢰머 광장 근처 백화점
슬슬 주변 선물을 확보해야 하는 미션이 임박했다. 남편 지인 중, 우주를 좋아하는 어린아이를 위한 선물을 찾으러 큰 백화점 안의 장난감 코너로 향했다. 이런 쪽으로 일가견이 있는 나는 단시간에 남편을 도왔다. 초집중 상태로 돌아다니다 저 아래쪽에 숨겨져 있는 행성계 모형 장난감을 발견. 심지어 딱 하나만 남아 있었다. 도움 끝에 대가가 있나니. 귀여운 키링 하나를 손에 얻었다. 찾아보니 독일 완구 브랜드 ‘플레이 모빌’에서 만들어진 캐릭터 키 체인이다. 정확히는 ‘몬스터하이’ 라는 애니메이션 속 ‘드라큘라우라’ 라는 이름의 캐릭터다. 저 멀리서부터 눈에 들어왔다. 검정과 핑크의 색 조합이 독특해 애니 속에만 있을 것 같은데, 프랑크푸르트 플리마켓에서 진짜 완전히 똑같이 생긴 사람을 보았다. 이곳의 기억을 하나 더 소유하게 되었다.
(3) Flohmarkt am Schaumainkai: 프랑크푸르트 벼룩시장
여행 후반부에 급하게 일정을 짜다 주말에 열리는 벼룩시장을 알게 되었다. 동묘 시장 같아 재밌었다. 어설픈 독일어 실력과 가까이 보면 뭔가 사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에 멀찍이 구경만 했다. 잠시 후 자리를 비운 남편이 어디선가 꽃을 들고 왔다. 색 조합도 아름답고, 좋아하는 나라에서 받아 더 특별한 꽃 선물이다. 꽃을 들고 오진 못해 포장지라도 예쁘게 접어 집으로 들고 왔다.
(4) DFF - Deutsches Filminstitut & Film museum: 독일 영화 박물관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칠쏘냐. 영화 기록 1,300개를 돌파한 자칭 ‘영화 러버’로 독일 영화 박물관을 꼭 가보고 싶었다. 위치도 기가 막힌 게 벼룩시장 바로 근처였다. 황금 동선으로 영화 박물관에 입성. 정보 없이 갔더니 더 재밌었다. 비유하자면 예고편을 생략하고 고른 영화가 ‘꿀잼’이었을 때의 기분이랄까? 엄청 큰 에이리언 모형도 있고, 팀 버튼의 크리스마스 악몽 주인공 ‘잭’의 다양한 얼굴도 있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도 체험해 보았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이다. 암실 속 작은 구멍을 통해 들어온 빛이 바깥 풍경의 상을 거꾸로 보이게 한다.
영화 관련 자료가 있고, 지하엔 상영관이, 기획 전시실도 있어 한국 영상 자료원의 구조와 비슷해 익숙한 느낌도 들었다. 여기가 더 좋았던 건 굿즈 숍이 티켓 구매처 바로 앞에 있던 것. 한국영상자료원은 굿즈 숍이 따로 없고, 종종 마켓이 열린다거나 이벤트에 참여해 굿즈를 얻는 것 정도라 조금 아쉽다. (내 지갑은 언제나 영화에 열려있는데!) 이곳에선 종이 영화관 키트를 샀다. 자르고 붙여 나만의 작은 영사기를 만드는 건데 조금씩 만들다 보니 아직 완성하진 못했다.
(5) REWE: 독일 대형 마트 체인, 레베
저녁마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마트서 장을 봤다. 처음 보는 하리보 젤리 종류가 많아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 봤다. 그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맛은 단연코 ‘Lakritz Schnecken’ 감초맛 달팽이 모양 젤리다. 가장 충격적인 맛이었다. 그냥 파격적인 맛이라고 밖엔 말을 못 하겠다. 패키지는 귀여웠지만, 외관에 속지 말자.
(6) BOCKENHEIMER WARTE: 자연사 박물관 근처 ‘보켄하이머 바르테’역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에 갔다가 발견한 재밌는 역. ‘Zbigniew Peter Pininski’의 작품이다. 초현실주의 작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1980년 당시 도시 교통망 확장에 대한 시민들의 긴장감을 누그러뜨리려 딱딱한 시설대신 이런 모습의 역이 생겼다는 뒷이야기가 있다. 지금도 실제로 운영되는 역이고, 의도치 않게 경험한 이색 체험 중 하나였다. 젠켄베르크 자연사 박물관에선 귀여운 렌티큘러 엽서를 구매했다. 여행을 가기 전, 학원에서 계속 인체를 배우고 있어 그런가 그냥 자연스레 이런 디자인의 엽서가 끌렸다.
살면서 흔히 겪지 못할 정말 거대한 경험이었다. 독일의 묵직한 공기와, 잿빛 도시가 주는 고요함, 낯선 사람들 속 이방인이 되어 모험하듯 거리를 걷고, 하나도 놓치기 싫어 눈을 바삐 움직이고 귀를 활짝 열어두었던 날들. 다시 13시간의 비행 끝에 한국에 도착했다.
아직도 독일에 다녀왔다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땐 함께 온 기념품을 만지작거리곤 한다. 그때 그 일들이 현실이 맞았는지 검증하는 행동같이.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위한 판별 도구로 나왔던 영화 ‘인셉션’의 ‘토템’에 비유할 수도 있겠다. 독일의 기념품은 경험의 현실감을 고정하는 나만의 토템 같기도 하다. 이제 집 안 곳곳에 자리한 기념품은 그 순간의 내가 존재했다고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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