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교수. / 뉴스1
삼성전자 총파업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가 약 1년 전 인터뷰에서 남긴 말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노조와 어렵게 일하느니 해외로 가는 게 낫다는 판단을 기업이 하게 되면 한국에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 대목이다.
장 교수는 지난해 7월 슬로우뉴스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과 같은 대기업들이 아직 한국에 남아 있는 것 자체를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는 "현대차나 삼성전자는 이미 다국적 기업이기 때문에 많은 생산 시설을 외국으로 옮겼다"며 "'우린 이제 한국 기업이 아니다'라고 선언하고 국내 사업을 철수하면 우리 산업은 정말 텅 비게 된다"고 경고했다.
장 교수가 우려한 시나리오는 구체적이었다. "주주들이 이윤을 더 많이 환원하라고 하면, 현대차 노조와 어렵게 일하느니 슬로바키아에 가는 게 나을 것"이라며 "한국에 일자리는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현대차는 미국 외에도 체코, 슬로바키아에 생산 기지가 있고, 삼성전자도 베트남, 필리핀 등에 생산 기지를 이미 여럿 지은 상태다.
당시 인터뷰는 상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와 코스피 3000선 돌파를 배경으로 주주 자본주의 강화 흐름을 비판한 내용이 주를 이뤘다. 장 교수는 주주환원율을 75%까지 올려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해 "우리 기업은 무슨 돈으로 장기 투자를 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에 대해서는 "개악 중 개악"이라고 직격하며 "기업 이윤의 10%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수 없게 하거나 주주환원율을 50%로 제한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주식시장 주도 성장론에도 회의적 시각을 드러냈다. 그는 "주식 주도 성장이 단기적으로는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불가능하다"며 "단기 주주 입장에서 기업이 장기 투자를 하면 오히려 벌을 준다"고 했다. 이어 "너무 빨아먹어 기업이 빈약해지면 다른 곳으로 가면 그만 아니냐"며 "장기적으로 기업은 병이 든다"고 했다.
장하준 교수. / 뉴스1
미국 제조업의 몰락도 같은 맥락에서 짚었다. 장 교수는 "보잉은 지속적으로 사고가 나고 있는데 자사주 매입과 배당으로 안전한 항공기에 투자할 돈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GM에 대해서도 "1976년 현대차가 처음 포니를 생산했을 때 한 해 1만 대를 생산했고 GM은 480만 대를 만들던 회사였다"며 "그런데 지금은 현대차보다도 아래에 있다"고 했다. "이미 파산 위기로 정부로부터 구제금융까지 받은 기업이 정신 못 차리고 계속 자사주를 매입하고 주주한테 이윤을 환원하기 바빴다"는 말도 내놨다.
재벌과의 사회적 대타협 필요성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스웨덴 발렌베리 가문 사례를 들어 "6대째 세습 경영을 하고 있지만 이윤의 85%를 재단에 환원한다"며 "스웨덴 국민이 발렌베리 세습 경영을 받아들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재벌 해체를 요구하는 진영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장 교수는 "반대쪽은 기업이 사회적 존재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단순히 재산권 싸움으로만 봤다"며 "외국 금융 자본 힘을 빌려 재벌 체제를 분쇄하는 게 과연 우리에게 이로운 일인가"라고 물었다. "한쪽은 '우리는 지킬 거야', 또 다른 쪽은 '너희를 없앨 거야' 이런 식으로 나오니 타협은 언감생심"이라는 말도 했다. 국가의 적극적 산업 개입과 복지 확대, 증세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주주 자본주의 비판과 재벌 경영권 보호론을 동시에 내세우는 그의 시각이 어느 한쪽 진영의 논리로 쉽게 재단되지 않는 이유다.
장 교수 인터뷰는 삼성전자 노사가 성과급 제도 개선을 놓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총파업 일정을 사흘 앞둔 현 상황과 맞물려 다시 회자되고 있다. 삼성전자 노조는 21일부터 다음달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을 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노조가 예상하는 총파업 참여 인원은 4만7000여명이다. 반도체(DS) 부문 전체 직원 약 7만7000명의 절반을 웃도는 규모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은 단 하루만 정지돼도 최대 1조원에 달하는 직접적인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며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노사는 18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2차 사후조정을 진행했지만 이날 안에 타결될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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