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반도체 가격 급등 여파로 지난달 우리나라 수출물가가 외환위기 직후 수준까지 치솟으며 28년여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반면 국제유가 하락의 영향으로 수입물가는 10개월 만에 내림세로 돌아서면서 교역조건이 크게 개선됐다.
한국은행이 15일 발표한 ‘2026년 4월 수출입물가지수’에 따르면 4월 수출물가지수(원화 기준·잠정치, 2020년=100)는 187.40으로 집계됐다. 3월(174.92)보다 7.1% 상승하며 10개월 연속 오름세를 이어갔다.
전월 대비 상승률은 3월(17.0%)보다는 낮았지만, 전년 동월 대비로는 40.8% 급등해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3월(57.1%) 이후 28년 1개월 만에 최대 폭을 기록했다. 지수 수준 자체로도 1998년 3월(196.0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품목별로는 반도체를 포함한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가 전월보다 16.9% 뛰며 수출물가 상승을 주도했다. 화학제품도 7.7% 오르며 뒤를 받쳤다. 세부 품목 가운데서는 D램이 25.0%, 컴퓨터 기억장치가 71.4%, 프로필렌이 23.6% 각각 급등했다.
이문희 한은 물가통계팀장은 “원/달러 환율이 상승한 가운데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 등이 오르면서 수출물가가 상승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4월 컴퓨터·전자 및 광학기기의 수출물가지수는 198.30으로, 2010년 8월(201.77) 이후 15년 8개월 만에 최고치”라고 덧붙였다.
향후 전망에 대해 이 팀장은 “수출물가는 반도체 가격 영향을 크게 받을 것으로 보인다”며 “중장기적으로 반도체 가격 강세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월별 전월 대비 변동 추이는 불확실성이 있어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도체 가격이 수출 단가를 끌어올리며 수출기업의 채산성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변동성이 커질 경우 관련 업종과 물가 전반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수입물가는 국제유가 하락에 힘입어 10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다. 4월 수입물가지수(원화 기준)는 168.12로 3월(172.16)보다 2.3% 낮아졌다. 지난해 6월 이후 이어지던 상승 흐름이 멈춘 것이다.
품목별로는 원재료 중 원유 등 광산품이 10.5% 급락하며 전체 수입물가 하락을 이끌었다. 다만 중간재는 석탄 및 석유제품(6.2%), 1차 금속제품(3.3%) 등의 오름세로 전체적으로 2.1% 상승했다. 자본재와 소비재도 각각 0.4%, 0.2%씩 소폭 올랐다.
실제 두바이유(월평균 기준)는 중동 전쟁 발발 직후인 3월 배럴당 128.52달러까지 치솟았다가 4월 105.70달러로 17.8% 하락했다. 국제유가 조정이 원유를 중심으로 한 수입물가 안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이 팀장은 5월 수입물가 향방에 대해 “유가나 환율은 전월 대비 하방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중동 전쟁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당분간 원자재 공급 불안이 지속될 가능성은 상방 요인”이라며 “5월 수입물가를 섣불리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유가와 환율의 단기 하락에도 지정학적 리스크가 상존해 원자재 가격이 다시 불안해질 수 있다는 경고다.
수출 가격과 수입 가격의 상대적 움직임을 보여주는 교역지표는 크게 개선됐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107.02로 1년 전보다 14.3% 상승했다. 같은 기간 수출 가격이 33.6% 오른 반면 수입 가격은 16.9% 오르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는 수출상품 한 단위 가격을 수입상품 한 단위 가격으로 나눈 값으로, 우리나라가 같은 양을 수출해 얼마나 많은 상품을 수입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소득교역조건지수는 147.59로 전년 동월 대비 28.5% 상승했다. 순상품교역조건지수(14.3%)와 수출물량지수(12.4%)가 동시에 개선되면서 우리 경제가 수출을 통해 실질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구매력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가격 강세와 유가 조정이 맞물리며 수출단가 상승·수입단가 완화라는 ‘좋은 교역조건’이 만들어졌지만, 한국은행은 반도체 가격과 국제 원자재 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감안할 때 향후 물가와 교역환경의 흐름을 면밀히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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