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베이징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꺼낸 이 표현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가 아니었다. 미중 관계가 이제 단순한 무역 갈등을 넘어 패권 충돌 관리 국면에 들어섰다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장면이었다.
겉으로는 양국 정상이 “협력”과 “우호”를 강조했지만 실제 회담의 핵심은 충돌 방지와 레드라인 확인에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만과 반도체, 인공지능(AI), 이란, 희토류, 관세 문제까지 사실상 세계 경제와 안보 질서를 뒤흔드는 거의 모든 현안이 한 테이블 위에 올라왔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은 현직 미국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는 약 10년 만이다. 하지만 2017년 트럼프 1기 당시와 지금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당시가 무역 불균형과 관세 갈등 중심이었다면 지금의 미중 경쟁은 군사·기술·금융·공급망·에너지까지 전방위로 확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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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잘못 건드리면 충돌”…中 레드라인 재확인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이날 시 주석은 양자회담 과정에서 대만 문제를 집중적으로 꺼내들었다. 그는 “대만 문제는 미중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며 “이를 잘못 다룰 경우 양국은 대립이나 심지어 충돌에 직면할 수 있고 미중 관계 전체를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다”고 경고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중국이 대만 문제를 ‘핵심 이익(core interest)’으로 규정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사실상 미국에 대한 공개적 레드라인 재확인이다.
특히 최근 미국의 대만 무기 판매 확대와 군사 협력 강화에 대한 중국의 불만이 극도로 높아진 상황에서 시 주석은 “여기서 더 나가면 충돌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매우 직접적으로 전달한 셈이다.
실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말 111억달러 규모의 대만 무기 판매를 승인했고 추가 패키지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미국 내부와 동맹국 사이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협조를 얻는 과정에서 대만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을 우려하는 시각도 나온다.
특히 이란 문제와 호르무즈 해협 안정, 중국의 미국산 원유 구매 확대 등을 놓고 거래가 이뤄질 경우 미국이 대만 문제에서 일정 부분 유화적 태도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만 외교부가 즉각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유일한 위험은 중국”이라고 반발한 것도 이런 긴장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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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투키디데스 함정’을 꺼냈나
시 주석이 이번 회담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을 직접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키디데스 함정은 부상하는 신흥 강대국과 기존 패권국 사이 긴장이 결국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국제정치 개념이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설명하면서 “아테네의 부상과 이를 두려워한 스파르타가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 데서 유래했다.
현대 국제정치에서는 미국과 중국 관계를 설명하는 대표적 용어로 자리 잡았다. 중국은 경제력과 군사력, 기술력을 빠르게 키우며 미국 중심 국제질서에 도전하고 있고 미국은 이를 구조적 위협으로 인식하며 견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문제는 미중 간 단순한 경쟁이 아니다. 서로의 행동을 모두 위협으로 해석하기 시작한다는 데 있다.
예컨대 미국은 대만 무기 판매를 ‘방어 지원’이라고 설명하지만 중국은 이를 ‘통일을 방해하는 개입’으로 본다. 반대로 중국은 대만 주변 군사훈련을 “주권 수호”라고 주장하지만 미국과 대만은 이를 “무력 통일 압박”으로 받아들인다.
반도체와 AI 문제도 비슷하다. 미국은 첨단 반도체 수출 규제를 ‘국가안보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은 이를 ‘중국의 기술 굴기를 막기 위한 봉쇄’로 인식한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 역시 중국은 자원 주권 차원이라고 설명하지만 미국은 공급망 무기화로 받아들인다.
이처럼 상대 행동을 모두 공격적 신호로 읽기 시작하면 양국은 원치 않더라도 갈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안보 딜레마’다.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이 표현을 직접 사용한 것은 결국 “중국의 핵심 이익을 계속 압박하면 양국 관계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갈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로 해석된다.
동시에 중국 역시 미국과의 전면 충돌은 원하지 않는다는 점도 드러낸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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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 승자 없다”…무역 관계 재설정 시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시 주석을 “친구(friend)”라고 부르며 “우리 관계는 앞으로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화해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전형적인 ‘거래 외교’ 접근이라는 평가가 많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이란 문제가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는 점이 중요하다.
현재 미국은 이란 전쟁 장기화와 국제 유가 급등이라는 부담을 안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이 흔들릴 경우 글로벌 원유 공급망이 충격을 받고 미국 물가와 소비 심리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갈 수 있다.
중국 역시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만큼 호르무즈 안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백악관에 따르면 양국은 호르무즈 해협 개방 유지 필요성에 공감했으며 시 주석은 미국산 원유 구매 확대에도 관심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중국을 통해 중동 리스크를 일부 완화하고 동시에 미국산 에너지와 농산물 수출 확대라는 경제적 성과도 얻어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특히 이번 회담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미중 양국이 단순히 관세를 주고받는 수준을 넘어 경쟁을 ‘관리 가능한 영역’ 안으로 끌어들이려 한다는 점이다.
그 상징적 사례가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밝힌 ‘투자위원회(Board of Investment)’ 구상이다.
베선트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일부 중국의 대미 투자 거래를 신속 처리하기 위한 투자위원회 설립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기구가 “대미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에 회부할 필요가 없는 거래를 사전에 검토하는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CFIUS는 외국 기업의 미국 자산 인수가 국가안보에 미치는 영향을 심사하는 미국 정부 기구다. 최근 수년간 미국은 중국 자본의 반도체·AI·배터리·인프라 분야 투자를 강하게 제한해왔다.
그런데 베선트 장관은 “중국이 투자할 수 있는 분야는 많다”며 “우리는 이런 투자들이 CFIUS 심사 대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전략 기술과 안보 분야는 계속 차단하되 소비재나 비민감 산업에서는 제한적 투자와 교역을 유지하겠다는 의미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의 ‘전면 디커플링(decoupling·완전 분리)’보다는 사실상 ‘선별적 분리’ 쪽으로 현실 조정에 들어가고 있다는 신호로도 읽힌다.
실제 베선트 장관은 미국이 약 300억달러 규모의 비핵심 중국산 상품에 대해 관세를 일부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폭죽 같은 저가 소비재는 앞으로도 중국에서 계속 수입될 수밖에 없는 품목”이라며 “이런 제품들은 관세를 없앨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웠던 강경한 ‘중국 때리기’ 기조와 비교하면 상당히 현실적 접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 역시 미국산 에너지 구매 확대와 투자 협력을 카드로 관계 안정화를 시도하고 있다.
시 주석이 “관세전쟁에는 승자가 없다”며 “양측은 어렵게 형성한 긍정적 흐름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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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AI 패권 경쟁 속 “안전 협력”도 논의
AI분야에 대한 안전 프로토콜 구축 논의에 대한 접근도 일부분 성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베선트 장관은 이번 인터뷰에서 미국과 중국이 AI 안전 프로토콜 구축 논의를 시작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두 AI 초강대국이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며 “비국가 행위자들이 AI 모델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최선의 관행(best practices)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I 경쟁은 이어가되 통제 불가능한 위험만큼은 공동 관리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미국이 AI 경쟁에서 선두에 있기 때문에 중국과 건전한 논의를 할 수 있는 것”이라며 “중국이 훨씬 앞서 있었다면 이런 논의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AI 패권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자신감을 바탕으로 중국과 제한적 규범 협력에 나설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번 회담에 미국 빅테크 최고경영자(CEO)들이 총출동한 것도 상징적 장면이었다.
대표단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팀 쿡 애플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이 포함됐다.
애플과 엔비디아, 테슬라는 모두 중국 시장과 공급망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이다. 미중 갈등이 더 격화될 경우 직접적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소개하며 “이들은 중국과 시 주석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이를 적극 활용하려는 분위기다. 시 주석이 이번 회담을 통해 미국 기업들에 “중국은 여전히 돈을 벌 수 있는 시장”이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국 경제 둔화와 외국 자본 이탈 우려 속에서 해외 투자 심리 회복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번 회담에서 극적인 ‘빅딜’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고 보고 있다. 대만과 AI, 반도체 패권 문제는 양국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번 회담의 현실적 목표는 미중 전략 경쟁이 실제 군사·경제 충돌로 번지는 것을 막는 ‘충돌 관리’에 가깝다는 분석이 많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은 “중국은 2017년보다 훨씬 더 자신감 있는 상태로 이번 회담에 임하고 있다”며 “시 주석은 미국과 최소한 전략적 안정(strategic stability)을 유지하려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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