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초록'
(서울=연합뉴스) 고미혜 기자 = 전쟁의 포연이 채 가시지도 않은 1954년 4월. 190㎝ 훤칠한 키에 검은 사제복을 입은 외국인 신부가 목포항에서 배를 타고 새 임지인 제주 한림에 당도했다.
낯선 외국인 신부를 보고 몰려든 주민들은 '미군인가', '저 옷은 군복이 아니잖아', '교회에서 왔나?' 수군댔고, 신부는 그런 주민들을 향해 휙 돌아선 후 어눌한 한국어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나는 미국 놈 아니에요. 아일랜드 놈이에요."
아일랜드 출신으로 한국에서 60년 이상을 바친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한국명 임피제·1928∼2018) 신부와 한림 주민들의 첫 만남이었다.
신간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초록'은 제주를 사랑한 임피제 신부와 그가 만든 이시돌 목장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작가 김태훈이 쓰고, 사진작가 준초이의 사진이 더해졌다.
임 신부가 한국에 처음 온 것은 전쟁 중인 1953년 4월이었다. 스물다섯 나이에 3개월의 긴 여정 끝에 한반도 땅을 밟은 그는 목포에서 한국말과 한국 문화를 배운 뒤 이듬해 제주에 부임했다.
당시 제주는 4·3 사건으로 발효된 한라산 금족령이 해제되지도 않은 채였고, 4·3과 전쟁의 비극을 함께 겪은 주민들은 몸도 마음도 피폐해진 상태였다.
복음 전파보다 주민들의 고단한 삶을 개선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던 임 신부는 경기도에 피정 다녀오는 길에 농장에서 새끼 밴 암퇘지 한 마리를 샀다. 돼지를 데리고 꼬박 이틀 동안 기차와 배로 한림성당에 도착했다. 제주 똥돼지보다 몸집이 몇 배나 큰 거대한 꽃돼지는 금세 구경거리가 됐다.
'돼지 신부'라는 별명을 얻은 임 신부는 중산간에 땅을 사 돼지 사육장을 만들었고 이것이 1961년 성 이시돌 목장이 됐다. 스페인 농부 출신 성인 이시도르의 이름을 땄다.
신부는 고국 아일랜드와 캐나다 옥스팜 등 곳곳에서 원조받은 트랙터로 황무지 초지를 비옥한 푸른 땅으로 바꾸었고, 굶주리던 주민들이 스스로 설 수 있게 도왔다. 4·3으로 폐허가 된 마을을 떠났던 이들도 속속 돌아왔다.
주민들의 빈곤을 해소해 준 것 외에도 임 신부가 제주에 나눈 것은 많았다. 소외계층을 돕기 위해 병원, 요양원, 유치원 등을 세웠고, 말년엔 호스피스 병원 건립에 힘을 쏟았다.
현재 50만 평에 달하는 이시돌 목장은 임 신부의 유지를 살려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추구하고 있다.
이시돌농촌산업개발협회 이사장인 마이클 리어던 조셉 신부는 책 말미에 실린 인터뷰에서 "개발하고 돈 버는 사업을 하는 게 아니라 제주의 자연환경, 생태를 지키는 일 같은 게 우리가 할 일"이라고 말했다.
손종률 목장장도 "임 신부님이 가장 뿌듯해하신 일 중 하나가 황무지였던 제주의 땅을 초록으로 물들인 것"이었다며 "지속가능한 생태적인 농업을 추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남해의봄날. 328쪽.
mihy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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