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박정수 기자]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최복호가 2500평 산속 양장점에서 세계 무대까지 오른 인생사가 공개됐다.
13일 방송된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에서는 ‘산속에 2,500평 양장점 차린 패션 부자’ 최복호 편이 그려졌다. 1973년 데뷔한 ‘대한민국 1세대 패션 디자이너’ 최복호는 53년째 현역으로 활동하며 누적 매출 5,000억 원을 기록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건 깊은 산속에 자리한 최복호의 2500평 규모 양장점이었다. 18년 전 주변의 만류를 뒤로한 채 산으로 들어간 최복호는 “백화점 시스템 안에서는 사라져버린, 맞춤 의상을 만들며 나누던 고객과의 대화가 그리웠다”고 이유를 털어놓았다. 이 양장점은 지금도 입소문을 타며 한 달 방문객이 1,000명~1,500명, 월 매출은 최대 6,000만 원에 달한다.
최복호는 패션 감각이 남달랐던 어머니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옷에 관심을 갖게 됐고, 패션계 전설 앙드레김을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다. 대학까지 중퇴한 그는 군 제대 후 앙드레김을 배출한 복장학원에 입학했고, 산업화와 환경 문제를 고발한 파격적인 데뷔작으로 단숨에 주목받았다. 앙드레김의 스승이자 패션계 대모였던 최경자 이사장의 눈에 띄어 문하생으로 발탁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화려한 출발과 달리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한 양장점에 취직한 그는 일주일 만에 임금 ‘800원’을 받고 쫓겨나는 수모를 겪었다. 디자인은 뛰어나지만 제작 실력이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이후 지인의 양장점에서 무급 실습생으로 일하며 기본부터 다시 배웠고, 절치부심 끝에 당시 패션의 중심지였던 이대 양장점 거리에서 정식 디자이너로 재취업했다. 새벽마다 200여 개 가게 쇼윈도를 돌며 인기 디자인을 스케치해 외울 만큼 악착같이 버텼다.
이후 서울에서 디자이너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어머니의 병환 소식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향 대구로 돌아왔다. 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서울에서 유행하던 ‘빽바지’였다. 다른 양장점들이 ‘엘레강스’를 고집할 때, 그는 과감한 실루엣의 빽바지로 젊은층을 사로잡으며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첫 아이템의 흥행으로 백화점에 모피 매장까지 열며 사업을 확장했다. 하지만 입점한 백화점에 대형 화재가 발생했고, 결국 그는 양장점까지 처분해 빚을 갚아야 했다. 모든 것을 잃은 절망의 순간, 예상치 못한 손길이 이어졌다. 동료 디자이너들은 자투리 원단을 보내왔고, 시장 상인들도 선뜻 재료를 내어줬다. 최복호는 “주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제가 살아난 거다.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인간의 도리”라며, 지금까지도 대구 원단만 고집하는 이유를 밝혔다.
그렇게 다시 일어선 그의 두 번째 히트작은 어깨 패드 재킷, 일명 ‘가짜 가다마이’였다. 이 제품의 대성공으로 최복호는 1980년대 월 매출 1억 원을 올리는 브랜드 대표로 자리 잡았다. 이후 그는 대구를 넘어 서울 주요 백화점에 입점했고, 런던, 밴쿠버, 뉴욕 등 세계 무대로 영역을 넓혔다. 마침내 오랜 우상이었던 앙드레김과 같은 무대에 서는 영광스러운 순간도 찾아왔다. 최복호는 “감격스러웠다. 선생님과는 감히 겸상도 못했다”며 벅찼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받은 만큼 나누고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2008년부터 자투리 원단으로 인형을 만들어 판매 수익금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있다. 한때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운 자투리 천이,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를 돕는 희망이 된 셈이다. 이를 지켜보던 서장훈은 “가장 좋은 옷은 자기 몸에 잘 맞는 옷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선생님께 디자이너란 직업이 정말 잘 맞는 옷 같다”고 진심을 전했다. 이에 최복호는 “아이고, 눈물이 난다”며 끝내 울컥한 모습을 보여 뭉클함을 더했다.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는 매주 수요일 밤 9시 55분 방송된다.
박정수 기자 / 사진= EBS ‘서장훈의 이웃집 백만장자’
Copyright ⓒ TV리포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