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추사 김정희가 1844년 제주 유배 중 그린 작품 '세한도'는 제자 이상적에게 준 그림이다. 작품은 176년 동안 여러 주인을 거쳤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오갔다. 2020년 손창근 선생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후 국민이 공유하는 문화유산이 됐다.
세한도는 그림 한 점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김정희의 그림과 글에 한국과 중국 문인 20명이 쓴 감상글 22편이 붙었다. 전체 길이는 1,469.5cm에 이른다. 긴 두루마리 형식이다.
두루마리는 네 부분으로 구성된다. 첫 부분에는 김준학이 1914년에 쓴 ‘완당세한도’와 시가 있다. 다음 부분이 1844년에 제작된 김정희의 세한도다. 세 번째 부분에는 청나라 문인 16명의 감상글과 김준학의 글 2편이다. 마지막 부분에는 오세창, 이시영, 정인보가 1949년에 쓴 글 3편이 있다.
세한도의 제작 배경에는 김정희의 제주 유배가 있다. 김정희는 안동 김문의 모함을 받아 55세에 제주로 유배됐다. 형벌은 절해고도 위리안치였다. 멀리 떨어진 섬에서 거처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감금형이었다. 유배가 풀릴 기약도 없었다. 사형을 청하는 상소도 이어졌다.
고립된 상황에서 이상적은 김정희에게 계속 책을 보냈다. 이상적은 중국어 통역관이었다. 중국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책을 제주까지 보냈다. 김정희에게 책은 학문과 예술의 근원이었다. 유배지의 고독을 버티게 하는 대상이기도 했다.
김정희는 이상적의 의리를 '논어' 구절에 빗댔다.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뒤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는 뜻이다. ‘세한’은 추운 겨울을 뜻한다. 어려운 시기에도 변하지 않는 절의와 지조를 상징한다.
그림은 간결하다. 둥근 문이 있는 허름한 집에 좌우에는 소나무 두 그루와 측백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화려한 색은 없다. 마른 붓과 진한 먹으로 나무줄기와 잎을 표현했다. 메마르고 황량한 유배지의 분위기만 남았다.
세한도는 제작 동기가 분명한 조선시대 회화다. 그림 오른쪽에는 세한도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우선 보시게나. 완당”이라는 글도 있다. 이상적을 위해 그린 작품임을 밝힌 문장이다. 왼쪽에는 제작 이유를 적은 김정희의 글이 이어진다.
이상적은 1845년 중국 출장길에 세한도를 가져갔다. 청나라 문인 장요손의 모임에서 작품을 보인 후 청 문인 16명이 감상글을 남겼다. 글의 핵심은 송백 같은 절의였다. 힘든 상황에서도 지조를 지키는 군자의 태도를 강조했다.
20세기에 들어 세한도는 여러 소장자를 거쳤다. 이상적의 제자 김병선과 그의 아들 김준학에게 전해졌다. 뒤에는 민영휘, 민규식이 소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1932년에는 일본인 학자 후지쓰카 지카시가 소장했다. 후지쓰카는 김정희 연구 자료를 모았고, 정년퇴임 뒤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세한도도 가져갔다.
1944년 서예가 손재형이 일본으로 건너가 두 달 동안 후지쓰카를 설득해 세한도를 돌려받았다. 광복 뒤 1949년에는 정인보, 이시영, 오세창에게 감상글을 청했다. 현재의 긴 두루마리 형식은 손재형이 꾸민 것이다. 손재형 뒤에는 개성 출신 사업가 손세기가 소장했다. 장남 손창근이 작품을 이어받아 2020년 아무 조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세한도는 한겨울에도 시들지 않는 송백의 의미를 담은 작품이다. 김정희의 유배 생활, 이상적의 의리, 청 문인들의 감상, 근대 지식인들의 글, 현대 기증자의 결단이 한 두루마리 안에 남아 있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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