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 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김선 비평가, 정해연 큐레이터 등 관련 전문가들의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안녕하세요. 저는 시각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최성임입니다. 시각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고 항상 소개를 하는데, 굳이 ‘시각예술가’라고 명명하는 것은 불확실하고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 덩어리로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안도감과, 보이고 보이지 않는 것 사이에서 눈앞에 드러내고 가리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는 작업에 대한 믿음이 제 작업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보이고 드러나는 것이 실체의 전부는 아니지만, 작은 부분을 통해서 그 너머를 상상하고 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첫 개인전 이후 지난 15여년간의 작가 활동 기간은 가사와 육아의 노동과 더불어 ‘작업하기’를 지속하는 일이 당면한 과제였고, 시간과 예술노동, 효과적인 동선과 작업 공간의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여성, 육아, 예술 노동 등의 개념적인 맥락뿐 아니라 ‘작업하기’의 지속성을 위해 시간이나 공간 확보 같은 실천적인 행동을 작업 속에 담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작업을 해야만 하는 당위성과 그에 따른 결과물이 작업의 안과 밖 어느 쪽의 방향으로든 영향을 미치며 작용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이유에서 ‘설치’는 저의 작업 환경과 삶의 모습 속에서 필연적으로 선택한 도구입니다. 연극의 무대처럼 접었다가 펼치며, 현실 속의 상상과 일상의 전복을 실천하기에 적절했습니다. 또한 ‘정원 가꾸기’처럼 매일의 노동력, 물리적으로 드러나는 시간, 안과 밖의 연결과 차단, 다른 환경과의 조우, 동선의 고려, 수수께끼와 미로, 인문학적 세계관의 부여 등을 생각하고 작업 속에 녹이기 좋은 매체였습니다.
그 안에서 소재의 물질성에 주목해 형태와 기능, 존재와 사라짐, 유기성과 인공성 같은 존재의 다양한 양가성을 탐구해왔습니다. 물질을 이루는 각각의 유닛들을 형상화시키고 다시금 군집화해 물질과 비물질의 이중적 양상이 담긴 설치 조각을 구성합니다. 이를 통해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 사이의 조화 가능성, 인간과 생명, 장소 및 관계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고자 합니다.
# ARCHIVE
지난 2025년, 국립현대 창동레지던시에 약 1년 동안 머물면서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작업 내부적으로 재료적, 의미적 변화를 꾀하며 여러 전시를 통해 새로운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설치작업으로부터 뻗어 나온 조각, 드로잉, 책에 이르기까지 유연하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하고 작업을 하면서 화두였던 ‘바깥으로 다리를 뻗는 행위’는 불안정한 바닥 위에서 나와 세계를 이으며 관계를 모색하는 몸의 은유입니다. 닫힌 내면의 세계가 외부와 접속하며, 새로운 감각적 지평으로의 확장을 고민했습니다. 작업은 확장과 경계, 존재와 세움의 의미를 찾으며 어떤 경계를 넘어 타자와 세계로 향하는 감각적 다리 놓기의 과정에 있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진동과 공명을 시각화하며, 긴장과 연결 사이의 섬세한 균형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몸집, 2025, 스테인리스 스틸, 모노필라멘트, 실, 비즈, 60x60x270cm/껍질, 2025, 스테인리스 스틸, 메쉬, 실, 비즈/살갗 아래,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용수철, 플라스틱공, 솜, 목재/주름, 2025, 종이에 드로잉, 29.7x42cm (총 6점)
(오른쪽) <우리들의 자연, 행성적 공존> , 2025 서울식물원 기획전
이동하는 정원, 2025, 스테인리스 스틸, 아크릴, 플라스틱 공, 폴리에틸렌 망, 실, 비즈, 가변크기 우리들의> 공명의>
오랫동안 저를 둘러싼 고립감과 연결성을 가진 집과 몸의 개념에 집중했고 이 작업들은 몸속의 구멍과 문들, 장기들 속에서 생명의 유기적인 관계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인간의 몸뿐만이 아니라 식물의 구조를 가져와서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생생한 덩어리를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작품 속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원과 구멍들은 단순한 조형적인 요소라기보다는 관계나 어떠한 상태를 환기시키는 장치입니다. 닫힘과 열림, 보호와 노출, 채움과 비움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이기도 합니다.
구멍의 집, 2026, 폴리카보네이트, 솜, 가변크기
안기, 2023, 스테인리스 스틸, 가죽, 실, 솜, 가변크기
공명의 형태, 2025, 종이에 드로잉, 78.5x54.5cm
최근에 참여한 그룹전에서의 작업은 자전적인 이야기에 더해서 연결과 상실의 감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내부와 외부 공간을 확장시키고 원과 구멍에 머무르거나 통과된 흔적들을 다양한 촉감으로 제시했습니다. 원은 무수히 반복되고 겹쳐지고 구조와 색감이 더해지고 다시 비워나가는 과정 속에서 끝없이 번져나가는 생명력을 가집니다. 또한 생명, 죽음과 재생, 변화와 성장의 요소들을 작품에 투영하고자 했습니다.
‘황금 이불’ 작품은 수많은 와이어 끈을 교차시켜 엮어낸 것으로, 마치 빨랫줄에 걸린 빨래를 연상케 합니다. 끈을 엮는 행위는 신체적 시간과 반복적 노동을 시각화하며 단순히 작업 결과물이 아닌 작업을 대하는 태도가 드러난 일종의 실험이었습니다. 즉, 작업을 이루는 사물이 시간과 나의 몸을 만나서 만들어지는 유형의 산물이 된 것이죠. 이는 집에 머무르며 어린 시절부터 이어져 온 삶의 노동에 대한 경외, 일상적인 사물의 예술로의 전환, 그리고 익숙한 재료를 비물질화하는 과정을 담고 있습니다. 황금빛 짜임은 삶 속에 스며들되 그것을 점유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을 기억하게 하는 요소로서 서서히 드러나며 즐거움을 제공합니다. 황금 이불의 금빛은 공간을 떠돌며 덩어리를 넘어선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무늬가 되고, 마치 빨랫줄에 걸린 이불이 햇빛 아래에서 반짝이며 마르는 것처럼, 그 자체로 황홀한 빛의 흔적이 됩니다.
# ARTIST STORY
작업의 방향은 기존 작업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이동’, ‘구멍’, ‘시간’, ‘수행성’이라는 네 가지 개념적 방향성을 재고하는 중입니다. 올해는 수원 아트 스튜디오(푸른지대 창작샘터) 입주작가로 활동하며, 8월의 개인전과 여러 그룹 전시가 예정돼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동굴 속에서 예술을 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키우며 열린 테이블 위에서 주로 작업을 했습니다. 단순히 전시 발표나 책 출간이 아니라 유무형의 생각을 표현하고 나누며 삶에 영향을 주고받는 부단한 시간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 작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삶과 주변의 다른 모든 것들과 함께하는 방법으로서의 ‘작업하기’를 실천하고자 합니다.
ART CRITICISM
최성임의 작업을 보고 있으면 문득 해녀가 떠오른다. 반복되는 노동과 축적된 시간, 그리고 일상의 수행이 결국 하나의 거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가는 특별한 재료보다 일상에서 쉽게 지나치는 사물과 행위들에 주목하며, 그것들을 오랜 시간 축적하고 엮어내는 과정을 통해 독자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왔다.
그의 작업은 가사노동과 육아, 여성의 삶과 예술노동이 분리되지 않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네 아이를 키우며 지속해온 작업의 시간은 단순한 개인적 서사가 아니라, 반복과 수행, 돌봄과 생존의 감각이 응축된 예술적 태도로 이어진다. 실제로 작가가 사용하는 실, 와이어, 비즈, 플라스틱 공 등의 재료들은 일상적이고 소박하지만, 끊임없는 노동과 집적의 과정을 거치며 거대한 설치 작업으로 확장된다.
최성임의 작업은 아름다우면서도 어딘가 처연하고, 유기적이면서도 낯설다. 촘촘하게 엮인 구조와 반복되는 단위들은 생명체의 조직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상처나 균열의 흔적처럼 읽히기도 한다. 부드러운 감각과 물질적 긴장감이 동시에 공존하는 것이다.
특히 대규모 설치 작업 앞에 서면, 작고 미세한 행위들이 얼마나 거대한 감각의 덩어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새삼 실감하게 된다. 그의 작업은 결국 예술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매일의 노동과 시간, 그리고 삶을 견디는 반복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조용하지만 강한 울림으로 보여준다. (정해연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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