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남해군 삼동면 언덕 위에 독일식 건축물 40여 채가 늘어선 마을이 있다. 하얀 외벽과 붉은 기와지붕이 겹겹이 쌓인 이 마을은 관광용으로 꾸민 세트장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실제 주민이 거주하는 살아있는 공간이다. 남해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사면에 계단식으로 자리한 집들은 독일 현지에서 직접 공수한 자재로 지어졌고, 건물 하나하나에 수십 년 전 이역만리 타국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마을이 들어선 배경은 1960~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 정부는 외화 확보를 위해 광부와 간호사를 서독으로 파견했다. 파독 광부는 지하 수백 미터 탄광에서 몸을 써가며 일했고, 간호사들은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병원에서 수십 년을 버텼다. 그렇게 번 돈의 상당 부분이 고국으로 송금되어 한국 경제 재건의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겉모습만 흉내 낸 게 아니라 독일 현지 자재를 직접 들여와 지은 집들
마을 안 건물들은 외관만 독일풍으로 꾸민 것이 아니다. 파독 근로자들은 귀국 당시 독일에서 실제로 사용되던 건축 자재와 설계 방식을 그대로 가져와 집을 지었다. 외벽의 마감재, 기와의 색상과 형태, 창문 틀의 구조까지 독일 전통 가옥의 특징을 따르고 있어서 멀리서 바라봐도 중부 유럽 소도시 주택가처럼 보인다.
물건리 방조어부림은 독일마을에서 도보로 내려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데, 수백 년 된 나무들이 해안선을 따라 줄지어 서 있어 마을 산책을 마친 뒤 들르기 좋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이 숲은 조선시대 어민들이 바람과 파도를 막기 위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길이만 1.5킬로미터에 달해 걷는 데 30분 안팎이 걸린다.
5월에 가야 붉은 기와지붕과 신록과 바다가 한 화면에 담기는 이유
5월의 남해독일마을은 색감 면에서 일 년 중 가장 아름답다. 붉은 기와지붕 아래로 갓 돋아난 초록 잎이 가득하고, 그 너머로 짙은 남색 바다가 깔리는 장면이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 이 구도가 SNS에서 반복적으로 퍼지면서 포토스팟으로 자리를 잡았고, 특정 언덕 위 구간에서 찍은 사진들이 특히 많이 돌아다닌다.
가을에는 맥주 축제가 열리면서 방문객이 폭발적으로 늘어 주차 공간을 찾기도 어렵지만, 5월은 상대적으로 한산해서 골목길과 정원을 천천히 걷기에 알맞다. 독일식으로 정성스럽게 가꿔진 정원을 따라 마을 산책로가 이어지고, 오월의 기온이 걷기에도 부담이 없다.
천 원짜리 입장권으로 들어가는 파독 전시관, 실물 사료가 생각보다 많다
마을 안 파독 전시관은 이 마을을 볼거리 이상으로 만들어주는 공간이다. 1960~70년대 파독 근로자들이 실제 사용하던 물건들이 그대로 보관되어 있는데, 독일로 출국할 때 들고 간 여권과 광산에서 쓰던 작업 도구, 가족에게 보낸 손편지, 병원 근무 당시 착용하던 유니폼 등이 진열되어 있다.
독일 현지 신문에 실린 파독 간호사 관련 기사, 귀국 후 정착 과정을 기록한 사진 자료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서 시대 흐름을 따라가며 보면 생각보다 오래 머물게 된다. 성인 입장료가 1,000원이고, 운영 시간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슈바인학센과 독일 맥주, 남해에서 유럽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들
전시관 관람을 마친 뒤에는 마을 내 카페나 식당에서 독일 음식을 먹는 것이 자연스러운 동선이 된다. 독일 소시지와 슈바인학센, 독일 맥주를 취급하는 곳들이 마을 곳곳에 있고, 점심 시간대에는 대기가 생기는 식당도 있다.
슈바인학센은 돼지 족발 부위를 오랜 시간 오븐에 구워내는 독일 전통 요리인데, 국내에서는 흔히 접하기 어려운 메뉴라 이 마을을 목적으로 찾아오는 방문객도 있다.
하룻밤 묵고 싶다면 예약은 서둘러야 하고, 오가는 길도 어렵지 않다
당일치기로 다녀가는 여행자가 많지만, 독일식 가옥 구조를 그대로 살린 숙박시설을 이용하면 마을의 저녁과 아침을 모두 경험할 수 있다. 낮 시간 관광객이 빠져나간 뒤에는 마을이 조용해지고,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남해 야경이 낮과는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숙박시설은 예약이 빠르게 차는 편이라 날짜가 정해졌다면 공식 홈페이지에서 예약 현황을 먼저 확인해야 한다.
남해독일마을의 주소는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 1154로, 내비게이션에 직접 입력하면 된다. 남해는 섬이지만 남해대교와 창선·삼천포대교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어서 자동차로 접근하기 어렵지 않다. 진주나 사천에서 출발하면 1시간 안팎이고, 부산에서는 약 1시간 30분 거리다. 마을 자체는 연중무휴로 외관 관람이 가능하고, 파독 전시관만 월요일 휴관과 운영 시간을 확인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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