닌텐도가 글로벌 시장에서 게임기 가격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하면서 한국 닌텐도 역시 게임기와 서비스의 가격인상을 공지했다. 스위치1의 경우 5만 원 가격인상이 발표되었으며 스위치2는 9월 가격 변동이 예정되어있다. 다만 구체적인 가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일본 내수용의 가격이 1만 엔 인상을 예고한 것을 감안하면 국내 가격도 10만 원가량 오를 것으로 예측된다. 이미 게임샵 등지에서는 정가에 파는 스위치 2를 찾기 힘들어졌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은 이미 가격을 인상했다. 디스크드라이브가 포함되어있는 일반형 가격은 74만 8천원에서 94만 8천원으로 27% 올랐고 디스크드라이브가 없는 디지털 에디션은 59만 8천원에서 85만 8천원으로 43%인상되었다. PS5 프로의 가격은 129만 8천원이 되었다.
소니는 가격 인상 사유를 글로벌 경제환경 전반의 지속적인 압박이라고 짧게 설명했다. 닌텐도 역시 "다양한 시장 환경에 따라 향후의 글로벌 사업성을 검토한 결과"로 가격 인상의 이유를 설명했다.
게임기의 가격인상이 지금까지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이번의 인상폭은 특히나 크다. 예전 인상의 원인이 환율이었다면 지금의 이유는 환율에 더해 인공지능(AI) 기업들의 기술경쟁이다. 그로인한 하드웨어 부품 사재기 등으로 D램 가격이 폭등한 결과 역시 게임기 가격인상 요인에 포함될 것이다. 이러한 반도체 부품의 품귀 현상은 가격인상 뿐만 아니라, 밸브에서 준비하고 있던 스팀머신의 출시 연기등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게이밍 기기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충분히 예측 가능했다. AI 개발 붐으로 인해 그래픽 카드 가격이 가장 먼저 올랐고, 하드디스크와 CPU 같은 부품 가격까지 따라 올랐다. 이미 게임 개발사나 코어게이머들은 새로운 개발용 PC를 갖추는데 부담을 느끼고 있는 상황이었다. 현재 AI 기술과 시장이 버블인지 아닌지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지만 AI 기업들의 투자가 계속 되고 있는 동안 이러한 추세는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신 게임 가동을 위한 PC 조립 가격이 수백만 원을 가볍게 넘을 정도로 올라 게이머가 지갑사정을 크게 고려해야 하게 된 상황에서 그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가정용 게임기 역시 비슷한 상황이 됐다.
이 다음은 휴대폰이 될 것이다. 하지만 필수재에 가까운 휴대폰의 경우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가격 인상 압박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최고의 기능과 사양을 가진 플래그십 모델들의 가격은 올라가겠지만 오른 가격만큼 기기의 성능이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고, 가격이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면 메모리 용량 등 부품의 스펙을 낮춘 제품이 팔리는 이른바 슈링크플레이션이 함께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성능을 신경쓰는 얼리어답터 성향의 소비자라면 고민할 부분이 늘어날 것이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풍경은 지금까지의 상식과는 어긋난다. 특히 게임기로 넘어온다면 더욱 그렇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려면 짧은 역사지만 비디오 게임 산업에서 가정용 게임기 비즈니스 모델을 살펴봐야한다. 비디오 게임 시장에서 가장 오랜역사동안 살아남고 증명된 비즈니스 모델은 면도기-면도날 모델이다. 지금은 모바일 게임 시장이 커지면서 이 모델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예전 같지는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주로 통용되는 모델이다. 면도기 본체는 싸게 혹은 손해를 보면서 팔고, 면도날 교체에서 수익을 가져가는 면도기와 면도날 모델은 게임기를 면도기에, 게임 소프트웨어는 면도날에 대입해 이해할 수 있다. 닌텐도는 자사의 카트리지 교환식 가정용 게임기를 저렴하게 팔되, 라이선스 통제로 서드파티 매출에서 수익을 가져가는 플랫폼 홀더 모델을 도입했다. 강력한 권한을 휘두르며 라이선스를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닌텐도는 80~90년대 시장에서 큰 성공을 이루었다.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역시 면도기-면도날 모델의 대표격이었다.
이러한 모델은 게임을 많이 팔수록 플랫폼 홀더가 수수료를 얻는 구조로, 게임기가 많이 팔릴수록 팔리는 게임의 양이 늘어난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의 입장에서는 게임기를 판매하면서 손해를 조금 보더라도, 그 수익을 환수할 수 있다. 특히 게임 소프트웨어 제작사는 게임기가 많이 팔려야 해당 게임기로의 출시를 고려하기 때문에 게임 플랫폼 홀더 입장에서는 초반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게임기를 많이 판매해야한다. 하지만 초반에 이렇게 손해를 보면서 게임기를 팔더라도 계속 이런 상황이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의 발전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초반에는 비싼 기기더라도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같은 성능의 칩이나 메모리의 가격이 점차 떨어진다. 공정 역시 개선된다. 플레이스테이션 2 이후의 기기에서는 작업공정이 개선됨에 따라 게임기의 보드 크기가 줄어드는 경우도 많고, 그렇다보니 나중에는 슬림 모델이 나오는 경우도 있다. 따로 게임기 가격을 인하하기보다는 이렇게 슬림 모델을 내면서 가격을 싸게 책정하는게 일반적인 게임기가 할인되는 형태이다. 이렇다보니 플랫폼 홀더 입장에서도 게임기가 많이 팔릴수록 게임기의 제작 단가가 작아지다보니 얻는 이익은 늘어난다. 게임기의 가격도 싸지다보니 게임기의 보급도 늘어나고 이렇게 판매된 게임기의 숫자는 게임 소프트웨어 개발사가 플랫폼을 선택하는데 영향을 주게 되니 플랫폼 홀더가 얻는 수익은 늘어난다. 가정용 게임기의 게이머의 유입은 지금까지 이런 방식으로 주로 작동했다.
그런데 이번 부품가격 급등으로 인해 이 모델이 더는 동작하지 않게 되었다. 권장 소비자가가 출시 후 계속 오르고 있다. PS5는 몇차례 가격이 인상되었으며, 그런 와중에도 물량이 부족하고 되팔이 시장에서 웃돈이 붙는 형국이다. 공식 가격 인상과 공급 부족이 만드는 비정상적인 가격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게임기는 처음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비싸지는 물건이 됐다.
이 변화에서 게임 시장이 받는 가장 큰 위협은 신규 게이머의 진입 자체가 막히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새로운 세대의 게임기로 갈아타는 수요는 그 게임기에서만 즐길 수 있는 강력한 신작 AAA 게임이었다. PC를 업그레이드 하는 이유도 비슷했다. 사람들은 <윙커맨더>의 신작을 하기 위해 PC를 업그레이드 했고 <사이버펑크 2077>을 즐기기 위해 새로운 그래픽카드를 구매했다. 젤다와 마리오 같은 독점 게임이 닌텐도 게임기의 주된 구매 이유중 하나이며 새로나올 <GTA 6> 역시 강력한 성능의 게임 전용 기기를 구매할 동인이 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동작할 것이다. 다만 130만 원이라는 가격은 많은 사람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기다릴까... 라는 생각을 갖게끔 할 정도로 비싼 가격이다.
이 지점은 AAA게임업체에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AAA게임의 제작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서 어지간한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비를 넘어선지 오래다. 패키지 게임의 초반 판매량이 출시와 함께 치솟은 다음 점차 줄어드는 모델임을 생각하면 출시 시점의 게임 판매량이 게임 외적인 요인으로 줄어들 수 있다는 지점이 AAA 게임 제작사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게임기 가격이 오르면 그만큼 대작 게임 소프트웨어의 수월한 판매를 기대하기는 힘들어진다. 하물며 <GTA 6>의 제작비는 10억~20억달러로 추정하고 있는데, 아무리 제작비 회수가 당연한 프로젝트라고 하더라도 판매량에 영향을 줄 이런 리스크는 제작사의 입장에서는 큰 고민으로 다가올 것이다. 업계는 <GTA 6>가 출시 첫날에만 2500만 장 이상을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처럼 부품 가격 급등으로 인한 게임기 가격 인상은 규모의 경제가 만들 수 있는 게임에 대한 도전을 힘들게 만들고 대형 게임 스튜디오의 폐쇄를 가져오게 된다. 자본으로서는 도전을 하기 힘들고, AI의 위협과 함께 시장의 경색은 결국 노동자의 일자리 상실로 이어진다. 이미 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다. 전 세계 여러 게임개발사가 최근 들어 대규모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이런 사태 한편에는 게임 개발자들이 하드웨어의 발전에 너무 안일하게 기대해온 부분도 존재한다. 지난 몇십년간 반도체의 집적도가 2년마다 두배가 된다는 무어의 법칙과 함께 빠르게 발전해온 하드웨어의 사양에 기대 게임 개발자들은 최적화를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뤄왔다. 게임의 로딩을 1초 줄이는 것보다 콘텐츠를 더 많이 넣는 것이 중요했으며, 게임의 로딩은 더 빠른 하드웨어가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시장을 지배했다. 이제 어지간한 AAA게임의 설치용량은 100GB가 넘어가고 있으며, 이는 1985년에 출시된 비디오게임 역사상 가장 유명한 게임중 하나인 슈퍼마리오브라더스 용량인 40kb의 약 250만배다. '왜 과거보다 250만배 재밌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가정용 게임기 시장에서는 제한된 하드웨어에서 최대한의 성능을 이끌어내고자 프로그래머들이 몸을 비틀며 묘기를 부리고 있으니까.
모든 장르가 가벼울 수는 없다. 오픈월드처럼 거대한 세계를 끊임없이 보여줘야하는 장르는 빠른 SSD입출력속도와 큰 용량을 전제로 디자인 된다. 시장 환경 변화로 인해 대규모 자본이 집중되어야 하는 큰 규모의 도전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다. 개발자들은 당분간은 좀 더 제약에 집중해야 할 수 있다. 게이머가 점차 고령화하고 줄어드는 환경에서 더욱 더 이러한 제약과의 싸움이 중요해질 것이다.
게이머 입장에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가격 인상으로 인해 스팀 컨트롤러 구매도 실패하고 새 게임기를 사는데 부담이 커졌다는 게 슬프다. 이러한 망설임이 개인의 불편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게이머가 들어올 자리가 좁아지면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자리는 얼마나 더 좁아질까. 세상은 AI의 발전에 열광하며 AI 덕분에 게임 개발 난이도가 더 낮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그런 점에서 AI의 발전으로 인해 오히려 시장이 큰 타격을 입어 게임을 할 사람이 부족해질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은 그야말로 역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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