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 조범형 기자] 노후된 지역을 바라보며 '여긴 언제 개발되나'라는 생각을 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는 오히려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에 가깝다.
낡은 건물, 오래된 공장지대, 정비되지 않은 골목을 보면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공간으로 바뀌길 기대하게 된다. 정치인과 지자체 역시 이런 민심을 안다. 재개발·재건축, 통합 개발 같은 청사진이 선거철마다 빠지지 않는 이유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공장지대도 그 흐름 안에 놓여 있다. 1970년대에 형성된 문래동 철공소 골목은 한때 국내 대학·연구소·산업 현장의 기술적 수요를 뒷받침하던 공간이었다.
현장에서는 '유명 대학이 필요한 샘플 제작을 맡겼다', '연구 장비와 정밀 부품 제작 작업도 했다'는 이야기가 어렵지 않게 나왔다. 작은 철공소들이 모여 있었지만, 기술력만큼은 결코 작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문래동을 둘러싼 논의는 '보존'보다 '이전'에 무게가 실린다. 공장지대를 외곽으로 통합 이전하고 현재 부지를 개발하겠다는 구상이다. 건물주와 일부 상인단체는 환영의 뜻을 내비친다. 개발 기대감과 월세·땅값 상승을 기대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문제는 정작 그 공간에서 수십년을 일해온 사람들의 목소리가 이 논의에서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대부분 고령이었다. 40~50년 경력의 숙련공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 기술을 익혔음에도 자신의 공장이나 사업체를 가진 경우는 많지 않았다. 여전히 남의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이들이 상당수였다.
그들은 인터뷰 자체를 경계했다. 개발과 이전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가장 먼저 흔들리는 쪽이 자신들이라는 걸 이미 체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입을 연 한 고령 숙련공은 "공장을 옮긴다는 이야기는 들었다"면서도 "그 나이에 외곽까지 따라가며 일할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통이전 후보지로 거론되는 김포공항 인근이나 경기 외곽까지 매일 출퇴근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담담한 어조였지만, 그 말의 뜻은 사실상 '그만두겠다'에 가까웠다. 누군가에겐 개발이지만, 누군가에겐 사실상 은퇴를 강요받는 일인 셈이다.
문래동은 이미 변하고 있다. 철 냄새와 용접 불빛 사이로 카페와 음식점이 들어섰고, 공장 골목 특유의 분위기를 소비하는 문화도 자리 잡았다. 흔히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그 변화 속에서 오래 버텨온 기술자와 노동자들은 이미 서서히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이전 논의는 그 흐름을 완성하는 마지막 수순처럼 보인다. 물론 문래동이 과거 모습 그대로 유지되기는 어렵다. 시설은 노후화됐고, 안전 문제와 도시 정비의 필요성도 분명히 존재한다. 개발 논의 자체를 무조건 막을 수는 없다.
다만 '어디로 옮길 것인가'만큼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 안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다.
수십년 동안 쇳가루를 뒤집어쓰며 서울 제조업의 한 축을 버텨온 이들이다. 그러나 지금의 이전 논의에서 그들의 출퇴근, 생계, 삶의 반경 같은 현실적인 문제는 좀처럼 중심에 놓이지 않는다.
관련 내용을 지자체와 서울시에 문의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사업이 진행 중'이거나 '용역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 대부분이었다. 정작 하루아침에 일터 위치가 바뀌는 노동자들에 대한 고민은 쉽게 찾기 어려웠다. 더욱 우려되는 건 기술의 단절이다. 수십 년 동안 현장을 지켜온 숙련공 상당수는 이미 고령이다.
외곽 이전이 현실화될 경우 상당수가 현장을 떠날 가능성이 크다. 도시 개발이 진행되는 사이, 서울 제조업 현장을 지탱해온 기술과 경험 역시 함께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도시는 결국 사람 위에 존재한다. 개발이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가장 먼저 고려돼야 할 대상은 그 공간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
조범형 한국금융신문 기자 chobh06@fntimes.com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