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담양을 한 잔에 담다, '추성주'의 향과 설화

실시간 키워드

2022.08.01 00:00 기준

[우리 전통주를 찾아서] 담양을 한 잔에 담다, '추성주'의 향과 설화

뉴스컬처 2026-05-10 16:23:23 신고

3줄요약
추성주 양대수 명인.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추성주 양대수 명인.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전남 담양의 술 추성주(秋成酒)는 고장의 옛 이름에서 태어났다. 통일신라 경덕왕 때부터 고려 성종 때까지 담양은 추성군으로 불렸다. 술 이름은 지역의 옛 지명을 품고 있다. 맛은 추월산 자락의 약초와 담양 대나무의 개운함을 담았다. 추성주는 담양을 대표하는 전통주로 자리했다. 대한민국 식품명인 제22호 양대수 명인이 복원한 술인 추성주는 담양의 술 문화와 지역성을 함께 보여주는 이름이다.

◇담양 옛 이름에서 태어난 술

추성주는 이름부터 지역성을 드러낸다. ‘추성’은 담양의 옛 지명이다. 통일신라부터 고려 초기까지 쓰인 이름이 술 안에 남았다. 한 병의 술 안에 담양의 옛 행정명, 산과 절, 약초와 대나무가 함께 들어간다.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추월산과 병풍산, 무등산 자락이 둘러싼 지형, 영산강 물길, 너른 논과 대숲은 담양의 풍경을 이룬다. 지역의 자연을 술로 옮긴 이름에 가깝다. 쌀은 들에서 오고, 약초는 산에서 오며, 술맛을 다듬는 대나무 숯은 담양의 대표 산물에서 나온다.

지역 이름을 단 술은 흔하지만, 추성주는 지명만 빌린 술이 아니다. 전승 이야기와 제조 방식 곳곳에서 담양성이 드러난다. 추월산 인근 연동사 설화, 대나무 숯 여과, 죽순회무침이나 떡갈비와의 어울림은 모두 담양이라는 공간과 맞물린다. 술 이름을 설명하는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담양 이야기가 따라붙는 이유다.

추성주.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추성주.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연동사 설화와 제세팔선주

추성주의 뿌리는 추월산 자락 연동사 설화와 함께 전해진다. 연동사는 고려 초 창건된 사찰로 알려졌다. 연동사 스님들이 건강을 위해 곡차를 빚어 마셨다는 이야기도 있다. 쌀과 보리, 절 주변에서 자라던 갈근, 두충, 오미자 같은 약초가 술의 원료가 됐다.

술맛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제세팔선주’라는 이름에서 알수 있다. 마시면 신선이 된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술 이름에 신선이 들어간 사실은 약초와 술을 함께 바라본 옛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술은 취하기 위한 음료에 머물지 않았다. 몸을 다스리고 기운을 보태는 곡차로도 받아들여졌다.

추성주에는 살쾡이 설화도 따라붙는다. 연동사에서 누군가 몰래 술을 마시는 일이 생겼고, 절에서 공부하던 사람이 의심을 받았다. 술을 지켜보던 중 늙은 살쾡이가 술을 훔쳐 마시는 모습을 보게 됐다는 이야기다. 살쾡이는 자신을 살려주면 평생 도움이 될 비밀의 책을 주겠다고 했다. 책을 받은 이영간이라는 인물이 입신양명했다는 전설도 있다.

설화는 술의 사실관계를 모두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지역이 술을 어떻게 기억했는지는 보여준다. 연동사, 유생, 살쾡이, 비밀의 책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추성주를 보통 술이 아닌 신비로운 술로 만들었다. 담양 사람들에게 추성주는 오래된 사찰과 산중 약초, 입신의 전설이 겹친 술이었다.

문인들의 일화도 술 이름에 깊이를 보탠다. 면앙정 송순이 과거급제 60주년을 기념하는 희방연에서 제세팔선주를 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송강 정철과 백호 임제 등 담양 문인들이 즐겼다는 전승도 남아 있다. 담양은 가사문학의 고장이다. 시와 정자, 술과 풍류가 어울리는 지역 문화 속에서 추성주는 깊은 이름을 얻었다.

추성주 양조장 모습.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추성주 양조장 모습.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약초가 빚은 추성주의 성격

추성주는 약초가 술맛을 정하는 술이다. 멥쌀과 찹쌀을 재료로 발효를 거친다. 구기자와 오미자, 산약, 두충, 음양곽, 갈근, 상심자, 육계 등 여러 약재가 들어간다. 과거 전승에는 20여 가지 약초가 쓰였다. 지금은 식품 기준과 제조 환경에 맞춰 10여 가지 약재를 중심으로 빚는다.

약초는 추성주의 향을 만든다. 구기자와 오미자는 열매의 산미와 깊은 향을 남긴다. 산약은 부드러운 인상을 만든다. 두충과 갈근은 산약초 특유의 향을 낸다. 육계는 따뜻한 향을 보태고, 음양곽과 상심자는 술맛에 약초의 층을 만든다. 약초 하나하나는 강하게 튀기보다는 발효와 증류 뒤 술 안에서 차분하게 모인다.

약술이라는 표현 때문에 효능을 떠올릴 수 있다. 옛 기록에는 강장, 혈액순환, 해열, 진정 등에 좋다고 여겨졌다는 내용이 있다. 다만 술의 효능을 단정하기보다는 약초가 술의 향과 질감을 만드는 재료라는 점에 무게를 둘 필요가 있다. 추성주의 약초는 전통 술 문화의 재료 감각을 설명하는 요소다.

약초를 다루는 일은 어렵다. 약재마다 손질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달여야 하는 약재가 있고, 볶아야 향이 살아나는 약재가 있다. 쪄야 거친 기운이 누그러지는 약재도 있다. 양대수 명인이 추성주 복원 과정에서 가장 애를 먹은 부분도 약재였다. 술을 빚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했다. 약초의 성질과 술 안에서 변하는 향을 이해해야 했다.

추성주 양조장 모습.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추성주 양조장 모습.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고두밥에서 증류까지, 술이 익는 과정

추성주 제조는 발효, 증류, 숙성, 여과로 나눌 수 있다. 출발점은 곡식이다. 멥쌀과 찹쌀을 씻어 불려 물기를 뺀 뒤 고두밥을 짓는다. 고두밥은 술을 빚기 위해 쪄낸 된밥이다. 밥알이 무르면 발효가 무거워진다. 너무 마르면 누룩과 고르게 섞이지 않는다. 술맛은 쌀을 씻고 찌는 첫 과정에서 이미 방향을 잡는다.

일부 제조 전승에서는 멥쌀과 찹쌀을 3대 1 비율로 사용한다. 차게 식힌 고두밥에는 엿기름물과 누룩, 용수가 들어간다. 엿기름은 곡식의 전분을 당으로 바꾸는 데 도움을 준다. 누룩은 발효를 이끄는 중심 재료다. 고두밥과 누룩, 엿기름물이 어우러지면 술의 기반이 되는 술덧이 만들어진다.

발효는 온도와 시간이 중요하다. 25~30도 안팎에서 발효를 시작해 다시 온도를 조절하며 2차 발효를 거친다. 약재는 발효 과정에 함께 들어가거나 증류 후 침출 단계에서 쓰인다. 추성주의 핵심은 순곡과 약초를 함께 다루고, 발효한 술을 증류해 맑고 힘 있는 술로 만드는 데 있다. 발효와 증류를 지나 술은 약초 향을 품은 발효주에서 증류주로 성격을 바꾼다.

증류는 추성주의 맑음을 만드는 과정이다. 발효가 끝난 술덧을 증류기에 넣고 천천히 가열한다. 알코올과 향 성분은 증기로 올라가 식은 뒤 액체로 받아진다. 추성주는 두 차례 증류를 거쳐 술맛을 한층 정제한다. 두 차례 증류는 장기 보관이 가능한 성격도 만든다. 발효주와 달리 오래 둘 수 있는 이유가 증류 과정에 있다.

증류 후에는 숙성이 필요하다. 원주는 곧바로 병에 담기지 않는다. 약초와 함께 다시 숙성하거나, 술맛이 안정되도록 시간을 둔다. 숙성은 높은 도수의 날카로움을 누그러뜨려 약초 향을 둥글게 묶는다. 마지막에는 여과 과정이 필요하다. 추성주에서는 대나무 숯을 사용한다.

추성주 양조장 모습.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추성주 양조장 모습.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대나무 숯이 다듬는 뒤끝

제조 과정에서 대나무 숯 여과는 추성주의 뒤끝과 개운함을 다듬는 중요한 단계다. 증류와 숙성을 거친 술은 대나무 숯을 지나 한층 맑아진다. 숯은 술 안의 거친 기운과 잡미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준다. 

대나무 숯 여과를 거친 추성주는 미황색을 띤다. 뒷맛이 깔끔하다고 평가된다. 약초가 많이 들어가도 지나치게 텁텁하지 않은 이유가 있다. 약초 향은 남기고 거친 후미는 줄이는 방식이다. 알싸한 향과 개운한 뒤끝이 느껴지는 추성주의 인상은 발효, 증류, 숙성, 여과가 차례로 쌓인 맛이다.

추성주를 생산하는 추성고을에는 대나무를 활용한 다른 술도 있다. 대잎술과 대통대잎술은 담양 대나무 이미지를 더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대잎술은 대잎 향을 중심에 둔 발효주 성격이 강하다. 같은 양조장에서 나오는 술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담양의 자연을 담는다.

◇직장인이 되살린 가문의 술

추성주를 현재 모습으로 복원한 인물은 양대수 명인이다. 양 명인은 농협에서 일했다. 증조부 때부터 집안에 술 빚는 비방이 있었지만, 일제강점기와 군사독재 시기를 거쳐 가업은 여러 차례 중단됐다. 부친은 가업을 이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양 명인은 가업 계승을 마음에 품었다.

복원은 쉽지 않았다. 부친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세부 양조기술을 충분히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통주 제조법은 글로 적힌 비방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고두밥의 상태, 발효 냄새, 약초 손질, 증류 시점, 숙성 온도 같은 세부 판단은 경험에서 나온다. 양 명인은 낮에는 직장인으로 일하고, 퇴근 뒤에는 술 공부에 매달렸다.

가장 어려운 지점은 약재였다. 구기자와 갈근은 달여야 한ㄷ. 오미자와 우슬은 볶아야 한다. 연뿌리처럼 쪄야 하는 재료도 있다. 약초마다 손질법이 다른데, 잘못 다루면 향이 탁해지거나 술맛이 흐려졌다. 양 명인은 대학과 연구기관, 한약방을 찾아다니며 약재 성질을 익혔다.

실패도 많았다. 술이 싱겁다는 평가, 냄새가 난다는 반응, 약초 향이 지나치다는 의견을 들으며 비방을 다듬었다. 숙성 과정을 조절하고 약초 구성을 바꿔 지금의 추성주 형태를 마련했다. 1990년대 소량 생산을 거쳐 2000년 대한민국 전통식품 명인 제22호로 지정됐다.

추성고을은 양 명인의 복원 작업을 토대로 성장했다. 담양군 용면 추월산 자락에 자리한 양조장은 지역의 술도가로 알려졌다. 가문에 남은 비방은 증조부가 한문으로 적었고, 조부가 한글로 풀어 쓴 문서로 전한다. 원본과 번역본은 양씨 집안의 중요한 가보로 여겨진다. 추성주는 집안의 기록과 손의 기술로 살아남은 술이다.

지금은 다음 세대 전승도 진행된다. 아들 재창 씨가 기능전수자로 나서 술의 맥을 잇고 있다. 전통주는 한 사람의 술로 끝나지 않는다. 세대가 바뀌어도 살아남으려면 제조법과 시장 감각, 지역과의 관계가 함께 전해져야 한다. 추성주의 다음 과제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대통대잎술.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대통대잎술. 사진=추성고을 홈페이지

 

◇25도의 약초 향, 담양 음식과 어울리다

추성주는 25도 술이다. 도수만 보면 낮은 술은 아니다. 하지만 체감은 지나치게 거칠지 않다. 약초 향과 은은한 단맛이 바디감을 만든다. 대나무 숯 여과가 후미를 다듬는다. 훈연된 향, 오크향에 가까운 깔끔한 향이 느껴진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식 약초 증류주이면서도 위스키 같은 인상을 준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맛은 알싸하다. 누룩 향이 은근히 남고, 약초 향이 입안에서 퍼진다. 단맛은 강하지 않다. 다만 약초의 쓴맛과 증류주의 뜨거움을 누그러뜨릴 만큼 은은하게 깔린다. 한약재에 익숙한 애주가라면 부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향이다. 반대로 약초 향에 민감한 사람에게는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 추성주는 개성이 분명한 술이다.

음식 궁합은 담양 음식과 잘 맞는다. 죽순회무침은 대표적인 추천 안주다. 죽순의 아삭한 식감과 산뜻한 양념이 추성주의 약초 향과 어울린다. 담양 떡갈비와도 조화가 좋다. 고기의 단맛과 기름진 맛을 추성주의 알싸한 향이 정리한다. 육포처럼 씹을수록 감칠맛이 올라오는 안주도 잘 맞는다.

갈치조림처럼 양념이 있는 생선 요리와도 어울린다는 추천이 있다. 강한 양념을 술의 약초 향이 차분하게 받쳐준다. 생선의 부드러운 식감과도 충돌이 적기 때문이다. 구운 채소, 과일, 담백한 회와 함께 마셔도 추성주의 향을 느낄 수 있다. 차게 보관하면 맛이 좋아진다. 낮은 온도에서 마시면 알코올의 자극이 줄고, 약초 향은 한층 정돈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Copyright ⓒ 뉴스컬처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실시간 키워드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0000.00.00 00:00 기준

이 시각 주요뉴스

알림 문구가 한줄로 들어가는 영역입니다

신고하기

작성 아이디가 들어갑니다

내용 내용이 최대 두 줄로 노출됩니다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이 이야기를
공유하세요

이 콘텐츠를 공유하세요.

콘텐츠 공유하고 수익 받는 방법이 궁금하다면👋>
주소가 복사되었습니다.
유튜브로 이동하여 공유해 주세요.
유튜브 활용 방법 알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