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준섭 기자] '한국기행'이 이번 주 특별 기획으로 ‘어른들의 딴짓’이 방송된다.
삶의 속도에 떠밀리듯 살아온 시간이 어느 순간 멈추고, 각자의 이유로 “이제는 내가 좋아하는 걸 해보겠다”는 결심이 현실이 되는 순간들. 이 시리즈는 그 조용한 전환의 지점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번 방송은 거창한 성공이나 극적인 반전보다, 아주 개인적인 선택들이 어떻게 삶의 온도를 바꾸는지를 보여준다. 자연, 공부, 춤, 동물, 돌, 흙 같은 일상의 재료들이 다시 삶의 중심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중심에 놓인다.
■새를 향한 20년의 시선, 멈추지 않는 탐구
대전 외곽 산자락. 이른 새벽이 지나도 텐트는 쉽게 걷히지 않는다. 이현웅 씨의 하루는 ‘새가 나타나는 순간’을 기준으로 움직인다.
농산물 중도매인으로 생계를 이어가지만, 그의 진짜 시간은 일과가 끝난 뒤부터 시작된다. 산란기가 되면 전국의 산을 돌며 새의 움직임을 기록한다. 망원 카메라, 위장 장비, 그리고 긴 침묵이 그의 기본 도구다.
처음부터 조류 전문가였던 것은 아니다.
20여 년 전 우연히 황조롱이를 카메라에 담은 순간, 단 한 번도 같은 장면이 반복되지 않는 자연의 속성이 그를 붙잡았다. 그때부터 기록은 습관이 되었고, 습관은 곧 삶의 방식이 됐다.
지금까지 확인한 조류는 500종 이상 그의 기록은 개인 아카이브를 넘어 SNS를 통해 확장되며 59만 명의 구독자와 연결돼 있다.
관찰은 더 이상 혼자의 행위가 아니라, 함께 보는 세계로 변해 있다.
■늦게 시작된 공부, 벽을 채운 700장의 언어
대전의 또 다른 공간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몰입이 이어진다. 송순자 씨의 집은 ‘공부방’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미용실을 운영하며 살아온 그는 예순을 넘긴 시점에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읽고 싶은 문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배움에 대한 결핍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공부 방식은 예상 밖이다. 책상 위 노트보다 집 안의 벽이 먼저 학습 도구가 됐다.
달력, 포스트잇, 손글씨 카드가 공간 전체를 덮는다. 지금까지 붙인 영어 문장은 700장 이상.
암기보다 ‘노출’을 선택한 방식이다. 지나가며 보고, 생활 속에서 반복하는 구조다. 잊히는 속도보다 다시 떠올리는 빈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공부는 이어진다.
■섬에서 시작된 리듬, 셔플댄스의 확장
전남 신안군 임자도. 바다와 논이 맞닿은 섬에서 김현화 씨는 택배 일을 한다.
하지만 그의 또 다른 이름은 ‘셔플댄스 전도사’다. 업무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음악을 틀고 발을 움직인다.
셔플댄스는 원래 도시에서 접한 취미였다.
하지만 섬으로 돌아온 뒤, 이 움직임은 생활 속 에너지로 바뀌었다. 혼자 즐기던 춤은 어느새 이웃과 함께하는 활동이 되었고, 영상 기록은 외부로 퍼져 나갔다.
연륙교 개통 이후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그는 도시에서 다시 춤을 배우고 돌아온다.
배움과 전파가 반복되며, 임자도는 작은 ‘댄스 커뮤니티’로 변해간다.
■손끝에서 태어난 세계, 돌과 개구리의 정원
경기도 가평. 숲과 맞닿은 한 정원에는 예상하지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수천, 수만 개의 개구리 형상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남궁영 씨는 도자기를 빚는 손으로 개구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취미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개구리는 점점 늘어났다. 지금은 약 5만 마리에 이르는 작품이 정원을 구성한다.
아내가 가꾼 야생화 사이사이에 놓인 개구리들은 장식이 아니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빛과 그림자 속에서 다른 표정을 만든다.
거제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축적이 이어진다.
이성보 씨는 30년 동안 모은 돌로 정원을 구축했다.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시절 수석에 매료된 그는,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돌을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5톤 트럭 200대 분량의 돌이 한 공간에 모였다모ㅈ여기에 난과 식물이 더해지며 석부작 정원은 하나의 구조물처럼 성장했다.
취미는 점점 축적의 예술로 변했고, 공간 자체가 시간을 기록하는 형태가 됐다.
■상처 이후의 선택, 동물과 함께하는 삶
충남 서산의 한 중식당. 수타면이 만들어지는 주방 한편에는 돼지와 염소, 거위가 함께 생활한다.
지흥선 씨는 40년 가까이 면을 뽑아온 손끝으로 또 다른 세계를 만들었다. 과거 신뢰의 균열과 인간관계의 상처를 겪은 뒤, 그는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다시 균형을 찾는다.
‘꿀순이’와 ‘꿀돌이’로 불리는 돼지 가족은 그의 일상 중심에 있다. 먹이, 산책, 성장 과정까지 모두 함께한다.
영업시간은 줄었지만, 공간은 더 많은 생명으로 채워졌다.
■지리산 위, 흙으로 만든 또 다른 시간
지리산 오도재 해발 750m.
구름이 낮게 깔리는 이곳에서 곽중식 씨는 10년째 거주 중이다.
카센터를 운영하던 그는 어느 순간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한다. 직접 땅을 파 토굴을 만들고, 사과 농장을 일구며 생활 구조 자체를 바꿨다.
최근에는 토굴 위에 온실을 세워 이끼 정원을 조성했다. 습도, 빛,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 이끼의 색은 계절보다 더 섬세한 변화를 보여준다.
공간은 생산의 장소가 아니라 관찰의 장소에 가깝다. 시간이 흐를수록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형되는 구조다.
‘한국기행-어른들의 딴짓’ 편은 공통적으로 생계 중심의 삶 이후 개인의 선택이 생활 구조를 어떻게 재편하는지를 보여준다. 각기 다른 배경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시간의 방향을 스스로 바꾸는 선택’이다.
뉴스컬처 이준섭 rhees@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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