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북항 크루즈 터미널 부두 앞에는 관광버스 100여 대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섰다.
부산 전경 / Mrhuynh81-shutterstock.com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한 17만 톤급 초대형 크루즈선 ‘스펙트럼 오브 더 씨(Spectrum of the Seas)’호가 입항하면서 내린 중국인 관광객 4800여 명을 수송하기 위한 행렬이다. 이날 입국한 단체 관광객 중 3500여 명은 범어사를 관람한 뒤 곧장 롯데백화점과 면세점 부산 본점으로 향했다. 유통업계는 이러한 ‘큰손’ 외국인 관광객의 집중 유입으로 인해 10여 년 만에 유례없는 업황 호조를 맞이했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고령화와 청년 인구 유출로 인해 ‘노인과 바다의 도시’라 불리던 부산의 풍경이 급변하고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었던 외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부산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지역 경제 전반이 활기를 되찾는 모양새다. 특히 2026년 들어 부산은 단순한 경유지가 아닌 목적지 그 자체로서의 글로벌 K-관광 성지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반도체 머니’ 대만인과 중국발 크루즈... 유통가 매출 지도 바꿨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초 연휴 기간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의 외국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0% 급증했다. 이는 서울 명동 본점의 매출 증가율(90%)을 두 배 이상 앞지르는 수치다.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 역시 같은 기간 외국인 매출이 298.4% 폭증하며 정점을 찍었다. 일본의 골든위크와 중국의 노동절 연휴가 겹친 특수를 부산이 고스란히 흡수했다.
매출 성장의 핵심은 중국발 크루즈를 통한 단체 관광객이다. 명품 소비 성향이 강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엔저와 원저 현상에 힘입어 부산항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올 1분기 크루즈를 통한 입국객은 18만 383명으로 전년 대비 세 배 이상 증가했다. 현지 가이드들은 환율 이점 덕분에 한국 내 명품 가격 경쟁력이 높아지면서 관광객들이 주저 없이 지갑을 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부산 전경 / jksz.photography-shutterstock.com
개별 관광객(FIT) 시장에서는 대만인의 활약이 독보적이다. 대만인은 2024년부터 부산 방문 외국인 국가별 순위에서 부동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호황에 따른 소득 증대로 해외여행 수요가 폭증한 대만인들 사이에서는 부산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n차 방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올 1분기 부산을 찾은 대만인은 20만 8,984명으로 중국을 제쳤다. 대만 SNS에서는 부산 여행 후 일상 적응이 힘들다는 의미의 ‘부산병(釜山病)’이라는 신조어가 확산할 정도로 부산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오감을 깨우는 미식 투어... 부산 식도락의 4대 핵심 코스
외국인 관광객들이 부산에 매료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채로운 ‘먹거리’다. 부산은 지형적 특성과 역사적 배경이 어우러져 독특한 미식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다. 2026년 기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식도락 코스를 4가지 핵심 테마로 정리했다.
1. 피란 수도의 역사적 유산: 돼지국밥과 밀면
부산 미식 투어의 시작은 돼지국밥과 밀면이다. 6.25 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미군 부대 등에서 나온 고기를 이용해 국밥을 만들고, 구호물자인 밀가루로 냉면을 대신해 밀면을 만들어 먹었던 역사는 외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서면 국밥 골목이나 초량동 인근의 노포들은 이른 아침부터 외국인 관광객들로 붐빈다. 대만과 일본 관광객들은 돼지국밥의 진한 육수와 밀면의 새콤달콤한 맛을 ‘한국 미식의 정수’로 꼽으며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후기를 공유하고 있다.
2. 자갈치에서 광안리까지: 활어와 해산물의 향연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신선한 해산물은 포기할 수 없는 코스다. 세계적인 규모의 자갈치 수산시장은 날것 그대로의 활력을 느끼려는 외국인들로 가득하다.
조개구이 자료사진 / Cynnie78-shutterstock.com
꼼장어 구이나 조개구이는 모험적인 미식을 즐기는 서구권 관광객들에게도 인기다. 저녁에는 광안리 수변공원이나 민락회타운에서 회를 포장해 광안대교 야경을 바라보며 즐기는 ‘야외 횟집 문화’가 K-컬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영도 해녀촌에서 바다를 마주하고 해산물을 맛보는 코스가 인스타그램의 ‘핫플’로 급부상했다.
3. MZ세대의 성지: 전포 카페거리와 해리단길
세련된 카페 문화도 부산 관광의 중추다.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가볼 만한 곳으로 꼽혔던 전포 카페거리와 옛 해운대역 뒷골목의 해리단길은 대만과 일본의 젊은 여성 관광객들이 점령했다. 빈티지한 골목에 숨겨진 감각적인 카페들은 부산 특유의 감성을 전달한다. 이곳에서 파는 부산 로컬 로스터리의 커피와 지역 식재료를 활용한 디저트는 단순한 음료를 넘어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소비되고 있다.
4. 시장 골목의 숨은 고수: 비프광장과 깡통시장
남포동 비프(BIFF) 광장의 씨앗호떡은 이제 세계적인 길거리 음식이 됐다. 부평 깡통시장의 비빔당면, 유부주머니, 그리고 갓 튀겨낸 부산 어묵은 저렴한 가격에 제주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코스다. 특히 부산 어묵은 선물용 세트로도 각광받으며 부산역과 공항 내 매장의 매출을 견인하고 있다. 시장의 활기찬 분위기와 넉넉한 인심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사람 냄새 나는 여행’의 기억을 선사한다.
지역 경제 파급효과 6조 8,000억 원... 경제 지형을 바꾸는 관광 산업
외국인 관광객의 유입은 지역 상권 전반에 강력한 낙수 효과를 가져오고 있다. 올 1분기 부산 방문 외국인의 지출액은 2,355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4% 늘었다.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 편의점들은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스무디와 로컬 간식류가 불티나게 팔리며 연초 대비 매출이 7배 가까이 폭증했다. 현장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들은 20년 만에 처음 겪는 호황이라며 관광객 유입의 효과를 체감하고 있다.
부산 밀면 / HweolHweol-shutterstock.com
부산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부산 지역에 발생한 경제 파급효과는 무려 6조 8000억 원에 달한다. 올해는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할 것이 확실시된다. 1분기에 이미 외국인 관광객 100만 명을 돌파하며 역대 최단 기간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한국을 여러 번 방문하는 ‘숙련된 여행객’들이 서울을 넘어 지방의 거점 도시인 부산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한다. 쇼핑 시설, 자연 경관, 역사적 서사, 그리고 풍부한 미식 인프라를 모두 갖춘 부산은 이제 대체 불가능한 글로벌 관광 허브로 진화했다. 과거의 정적인 항구 도시를 넘어, 전 세계 여행객의 오감을 사로잡는 역동적인 미식과 쇼핑의 메카로 자리매김한 부산의 전성시대는 2026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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