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치 지형에 거대한 균열이 발생했다. 지방선거 개표가 한창인 가운데 나이절 패라지가 이끄는 우익 성향 개혁당이 돌풍을 일으키며 기성 정치권을 강타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8일 오후 4시 30분(현지시간) 기준으로 잉글랜드 136개 지방의회 5천36석 가운데 84개 의회 2천557석의 당선자가 확정됐다. 개혁당은 이 중 약 30%에 해당하는 790석을 쟁취했으며, 788석이 신규 획득 의석이다.
집권 노동당의 몰락은 처참했다. 597석이 증발하며 456석만 남았고, 과반을 유지한 의회는 32곳에서 18곳으로 쪼그라들었다. 보수당 역시 366석을 반납해 464석으로 후퇴했다. 반면 자유민주당은 58석을 추가해 514석을 확보했고, 녹색당도 146석을 늘려 215석까지 세를 불렸다. 개혁당은 5개 의회를 처음으로 완전 장악했다.
웨일스에서는 정권 교체가 현실화됐다. 96석 중 60석이 확정된 웨일스 자치의회에서 민족주의 정당 플라이드 컴리가 27석, 개혁당이 20석을 가져갔다. 노동당은 고작 7석에 머물렀다. 1999년 자치의회 설립 이래 27년간 권력을 쥐어온 노동당이 처음으로 정권을 내놓게 된 것이다. BBC 방송은 엘리네드 모건 웨일스 자치정부 수반마저 낙선할 것으로 내다봤다.
스코틀랜드 상황도 노동당에 가혹하다. 129석 중 59석이 발표된 자치의회 선거에서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47석을 휩쓸었다. 노동당 몫은 단 2석이다. 아나스 사와 스코틀랜드 노동당 대표는 SNP 후보에게 지역구를 빼앗겼다. 선거 분석가 존 커티스는 SNP가 제1당 지위를 유지하겠지만 과반에는 못 미칠 것으로 전망했다.
패라지 대표는 런던 헤이버링에서 승리를 자축했다. 개혁당이 런던에서 처음으로 과반 의회를 획득한 곳이다. 그는 "영국 정치사의 역사적 전환점"이라며 "좌우 구분은 이제 무의미하다. 전통적 노동당 텃밭에서도 놀라운 지지를 받았다"고 선언했다. 2018년 브렉시트당으로 출발해 반이민·반유럽통합 기치를 내건 이 정당이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선거로 입증한 셈이다.
노동당의 철옹성으로 불리던 잉글랜드 중북부 공업지대도 무너졌다. 앤절라 레이너 전 부총리 지역구인 그레이터 맨체스터 테임사이드에서 노동당은 17석 중 16석을 개혁당에 헌납했다. 리사 낸디 문화장관 지역구인 위건에서는 22석 전부가 개혁당으로 넘어갔다.
커티스는 "예상했던 것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노동당에 최악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2024년 7월 총선 승리를 설계한 키어 스타머 총리는 2년도 안 돼 역대급 비호감도에 시달리고 있다. 핵심 공약 번복, 경기 침체, 주미 대사 임명 파문 등이 겹치며 위기가 고조된 상황에서 이번 참패는 치명타가 될 수 있다.
다만 당내 대안 부재가 총리에겐 버팀목이다. 앤디 버넘 그레이터 맨체스터 시장은 당 대표 출마 요건인 하원의원 신분이 아니고, 레이너 전 부총리는 사퇴 원인이었던 세금 문제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스타머 총리는 이날 "고통스러운 결과이며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이대로 떠나지 않겠다. 사임으로 나라를 혼란에 던지지 않을 것"이라며 퇴진 가능성을 일축했다.
금융시장은 안도했다. 총리 발언 직후 파운드화는 달러당 1.3624달러로 0.6% 상승했고, 영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0.07%포인트 하락해 4.875%를 기록했다. 로이터 통신은 시장이 좌파 성향 인사로의 총리 교체 시 정부 차입 확대 가능성을 경계해왔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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