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김재현·송수원 인턴기자】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오래된 명제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린 시절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시작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긴 학창 시절을 또래들과 함께 보낸다. 학교는 단순히 공부를 배우는 공간을 넘어 관계를 맺고 사회성을 익히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성장해가는 사회·제도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하지만 이 같은 학창 시기에 사회적 공동체를 벗어나 생활하는 청소년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들은 학업 부적응, 심리적 어려움, 가정환경, 진로 선택 등 각기 다른 이유로 학교를 떠난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학교를 떠난 이후의 삶이 곧바로 새로운 기회로 이어지기보다는 관계의 단절과 방향 상실이라는 공백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이들은 제도권 교육 밖에서 스스로 진로를 설계해야 하는 동시에 또래 집단과의 연결이 약화되는 이중의 변화를 경험한다. 우리는 이들을 ‘학교 밖 청소년’이라 부른다.
성평등가족부는 ‘학교 밖 청소년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마다 실시하는 ‘2025 학교 밖 청소년 실태조사’ 결과를 지난달 23일 발표했다. 해당 조사는 지난해 5월부터 12월까지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 청소년단기쉼터, 소년원, 보호관찰소, 대안교육기관의 학교 밖 청소년 2363명과 검정고시에 응시한 학교 밖 청소년 448명 등 총 2811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주요 조사 내용은 학업 중단 시기를 비롯해 건강, 생활, 진로 계획, 정책 수요 등 전반적인 실태 파악과 향후 정책 수립을 위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조사 결과 학교 밖 청소년들은 ‘고등학교 시기’에 학교를 그만두는 비율이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에 따르면 전체 학교 밖 청소년 가운데 ‘고등학교 시기’에 학업을 중단한 비율은 67.2%였으며, ‘중학교 시기’는 22.0%, ‘초등학교 시기’는 10.9%로 집계됐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로는 ‘심리적·정신적 문제’가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전체 응답자의 32.4%가 이를 이유로 꼽아 약 3명 중 1명 수준이었다. 이어 ‘원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25.2%), ‘부모님의 권유’(22.4%) 등 순이었다. 그 밖에도 ‘학교 분위기가 나와 잘 맞지 않아서’(18.2%),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고 싶어서’(17.9%), ‘특기를 살리려고’(17.7%), ‘학교 친구들과의 문제’(16.6%) 등의 응답이 이어졌다.
이처럼 학교를 그만두게 되는 가장 큰 요인은 ‘심리적·정신적 문제’였지만, 동시에 많은 학생이 기존 학교 시스템 안에서보다 더 다양한 선택지를 찾기 위해 학교 밖으로 나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부모님의 권유로’ 학교를 그만뒀다는 응답이 22.4%로 나타난 점은 부모 세대 역시 학교 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필수 과정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학교를 그만둘 당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검정고시’가 70.7%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대학 진학 준비’(35.7%), ‘시간제 근로·아르바이트’(21.7%), ‘대안학교 진학’(18.5%), ‘직업교육 훈련’(17.0%), ‘해외 유학’(9.4%) 등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학교를 그만둘 당시 세웠던 계획과 달리 학교 밖 청소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진로 설정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진로 계획을 묻는 질문에는 31.4%가 ‘진로 미결정’이라고 답해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했다. 이어 ‘정규학교 복학(대학 진학 포함)’이 29.5%로 뒤를 이었다. 반면 학교를 그만둘 당시 계획 가운데 과반을 훌쩍 넘겼던 ‘검정고시 준비’는 12.4%에 그쳤다.
이 같은 어려움의 원인으로는 교육과 정보 제공 부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들은 ‘진로 계획을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모르겠다’(42.4%), ‘내 진로 적성을 모르겠다’(41.2%), ‘진로 관련 정보 부족’(26.9%), ‘도움받을 곳이 없다’(12.6%) 등으로 답했다. 또한 ‘진로를 생각하면 불안하거나 마음이 답답하다’는 응답도 40.9%에 달해 많은 학생이 진로 설정 과정에서 불안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삶이 학교를 그만둘 당시 세웠던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많음을 보여준다. 또한 교육과 정보 부족으로 막막함과 어려움을 느끼는 학교 밖 청소년들을 위한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학교를 그만둔 이유로 심리적·정신적 문제(32.4%)를 꼽은 응답이 가장 많았던 만큼, 이들의 정신건강 상태 역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2주 이내 일상생활을 중단할 정도의 우울감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31.1%가 ‘그렇다’고 답했다. 또한 최근 12개월 이내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21.1%였으며, 실제 자살 시도로 이어진 경우도 7.8%로 나타나 학교 밖 청소년 상당수가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음이 확인됐다.
학교 밖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응답자 중 18.6%는 ‘1개월 미만’의 은둔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어 ‘1개월 이상 3개월 미만’은 8.5%,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은 3.8%로 집계됐다. 또한 ‘1년 이상’ 은둔 생활을 경험한 경우도 1.8%로 나타났다. 이를 종합하면 전체의 35.1%가 은둔 생활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를 그만둔 것에 대한 후회는 감소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관련 응답은 2015년 56.9%에서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3년에는 38.8%까지 내려갔으며, 2025년에는 40.0%로 소폭 증가했다. 다만 여전히 많은 학생이 고민과 불안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단순한 긍정적 변화로만 해석하기는 어렵다.
후회의 이유를 살펴보면 관계 형성과 경험 부족에 집중돼 있었다. ‘친구를 사귈 기회가 줄었다’는 응답이 61.2%로 가장 높았고, ‘다양한 경험을 하지 못했다’는 응답 역시 55.9%에 달했다. 이어 ‘졸업장을 받지 못한 점’(34.5%), ‘소속감 부족’(29.8%) 등이 뒤를 이었다. 이는 학교가 단순히 공부를 하는 공간을 넘어 또래 관계와 사회적 연결망을 형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의 경험을 살펴보면 응답자의 82.3%는 ‘검정고시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진로상담’(40.3%), ‘심리상담 및 정신과 치료’(37.2%), ‘직업기술 습득’(36.8%), ‘대안학교 재학’(29.6%) 등이 뒤를 이었다. 검정고시 준비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학교를 그만둔 이후 학력 회복이 가장 기본적인 과제임을 보여준다. 동시에 상담과 직업교육 참여 비율이 높다는 점은 청소년들이 단순히 학교 밖에 머무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미래를 준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차별 경험에 대한 응답 비율은 비교적 낮은 편이었지만 여전히 제도적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보여줬다. ‘공모전 참여 제한’(7.9%), ‘교통 및 공공시설 이용 시 비용 부담 증가’(7.7%), ‘대학 진학 과정에서의 불이익’(6.2%) 등이 대표적이다. 수치만 보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으나, 이는 특정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구조적 문제라는 점에서 간과하기 어렵다. 특히 교육과 진로 영역에서 차별 경험이 나타났다는 점은 학교 밖 청소년들이 일부 제도와 지원 체계에서 배제되거나 불이익을 경험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함을 시사한다.
학교를 그만둔 이후 실제로 체감하는 어려움 가운데 가장 높은 응답은 ‘진로 찾기의 어려움’(26.9%)이었다. 이어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어려움’(26.2%), ‘의욕 저하’(24.6%), ‘선입견·편견·무시’(22.9%), ‘진학 정보 부족’(22.4%)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진로 문제와 사회적 인식 문제가 동시에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학교 중단 후회 이유에서도 ‘친구를 사귈 기회 감소’(61.2%)와 ‘소속감 부족’(29.8%)이 높게 나타났다는 점에서 학교 밖 청소년들이 크게 느끼는 문제는 또래 관계와 사회적 소속감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다.
희망하는 직업교육훈련 분야를 보면 ‘복지·상담 분야’, ‘식음료 분야’(바리스타·제과제빵), ‘창작 분야’(작가·크리에이터), ‘IT·디자인 분야’(코딩·그래픽), ‘의료 보조 분야’ 등이 주요 선택지로 나타났다. 한편 ‘특별히 희망하는 직업이 없다’는 응답도 20.2%에서 22.1%로 증가해 일부 청소년들이 진로 방향 자체를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도 확인됐다.
성별에 따른 차이도 나타났다. 남성 청소년은 코딩·게임 프로그래밍, 유튜브 크리에이터 등 디지털 분야를 선호한 반면, 여성 청소년은 제과제빵, 복지, 뷰티, 간호 분야 등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여 직업 선택 과정에서 여전히 전통적인 성별 인식이 일정 부분 작동하고 있었다.
2025년 관심이 증가한 직업교육·훈련 분야는 주로 창작·디지털 콘텐츠 분야와 전문기술 분야로 나타났다. ‘간호조무사·수의사 보조원·응급구조사 관련 교육’은 8.6%에서 10.9%로 증가했고, ‘작가·방송작가 분야’ 역시 9.1%에서 11.2%로 상승했다. 또한 ‘코딩·게임 프로그래밍 분야’도 8.6%에서 9.7%로 증가해 디지털 기술 및 콘텐츠 산업에 대한 관심이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사회복지사·청소년지도사·요양보호사, 제과제빵, 웹디자인 분야 등은 소폭 감소해 일부 직업교육 분야의 선호도는 다소 낮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책 수요를 살펴보면 기본적인 구조는 유지되면서도 일부 변화가 나타났다. 교통비 지원은 여전히 1순위를 유지하며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꼽혔다. 이는 경제적 부담이 학교 밖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가장 큰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시에 문화예술 활동 지원에 대한 수요가 새롭게 부각된 점은 문화 분야 경험과 지원 확대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는 점도 확인된다.
또한 2025년 새롭게 10순위에 포함된 ‘학습·진로 멘토 및 진로·직업훈련·취(창)업 연계 통합 프로그램’은 학습, 진로 탐색, 직업훈련, 취업·창업까지 하나의 과정으로 연결하는 통합형 지원에 대한 수요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반면 2023년에 포함됐던 ‘질병 치료·건강검진 관련 지원’ 항목은 순위권에서 제외돼 기본 복지 지원보다 진로·교육 중심 지원에 대한 요구가 상대적으로 커진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김희진 박사는 “전반적으로 심리·정서·사회적 지표가 악화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변화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번 결과는 큰 폭의 개선이라기보다는 이전보다 나빠지지 않은 수준에 가까운 만큼, 상황이 언제든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현재의 긍정적 흐름이 지속될지, 혹은 다시 부정적인 양상으로 전환될지는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볼 필요가 있다”며 “여전히 취약한 지점이 존재하는 만큼 정책적 보완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청소년들의 정신건강을 보다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심리·정서 지원 체계를 더욱 세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며 “상담 지원과 정신건강 관련 정책 역시 보다 촘촘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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