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를 넘어, 깊이 있는 도약
2026년 아트 바젤 홍콩은 41개국에서 240개 갤러리가 참여했으며, 9만1500명 이상 관람객을 맞이하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숫자는 단순한 규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행사 전반에 걸쳐 보고된 안정적 판매 흐름과 함께 컬렉터층 확장과 참여 방식의 변화가 동시에 감지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아시아·태평양 지역을 중심으로 한 컬렉터들의 활발한 움직임과 함께 유럽, 미국의 주요 컬렉터들이 지속적으로 유입되며 시장의 균형이 다층적으로 재편되었다. VIP 프리뷰 첫날, 하우저앤워스에서 루이즈 부르주아, 조지 콘도, 이불 등의 작품이 오픈 당일 저명한 컬렉터와 기관에 배치되었다는 소식이 빠르게 퍼졌다.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 대표는 “오프닝 당일부터 판매가 활발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컬렉터의 비중이 높았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새로운 세대가 아시아 미술 시장에 진입하고 있다”고 전했다. 페어 최고가 거래는 바스티안 갤러리에서 판매된 ‘Le Peintre et Son Modele‘(파블로 피카소, 1964)로, 400만 달러(약 60억 원)에 달했다. 하우저앤워스에서 판매된 ‘A Baudelaire(#1)‘(루이즈 부르주아, 2008)는 295만 달러(약 45억 원)에, 화이트 큐브에서 판매된 ‘Take Me to Heaven‘(트레이시 에민, 2024)은 160만 달러(약 24억 원)에 각각 새 소장처를 찾았다. 조현화랑 최재우 대표는 “아시아 전역에서 새롭게 유입된 컬렉터 수에 매우 만족한다”며 한국·일본·싱가포르·중국 본토는 물론 유럽과 미국 컬렉터들과도 활발한 논의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홍콩 마켓은 이제 활기를 넘어 한층 깊어진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었다.
구조의 변화가 만들어낸 유기적 서사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확장’이라는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 단순한 규모 확장이 아닌 구조와 방식, 그리고 관람 경험 전반에 걸친 변화였다. 특히 올해는 많은 큐레이토리얼 구조 자체에 변화를 시도하며 페어의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확장이 분산되는 경험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는데, 그 중심에는 일관된 서사로 흐름을 엮어낸 ‘엔카운터스(Encounters)’가 있다. 대형 설치와 퍼포먼스를 중심으로 구성된 이 섹터는 올해 처음으로 공동 큐레이션 모델을 도입했다. 도쿄 모리 미술관 관장 카타오카 마미를 중심으로, M+ 홍콩 이사벨라 탐, 자카르타 기반 큐레이터 알리아 스와스티카, 모리 미술관 수석 큐레이터 도쿠야마 히로카즈 등 네 명의 아시아 기반 큐레이터가 처음으로 섹터 전체를 이끌었다. 이들은 아시아 전역에서 발견되는 우주론적 체계 ‘오행’(공간(에테르), 물, 불, 바람, 흙)을 큐레이토리얼 콘셉트 삼아 총 12점의 작품을 선보였다. 이러한 주제는 아트 페어라는 환경이 지닌 분절적 구조를 넘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읽히도록 설계됐고, 관람객은 작품 사이를 이동하며 보다 연결되는 유기적 서사를 경험했다. 특히 국제갤러리를 통해 소개된 강서경의 작품은 판매가 성사되며 집중도를 재확인시켰다. 동시에 엔카운터스는 홍콩 컨벤션센터 밖 퍼시픽 플레이스 파크 코트로도 확장됐다. 김 크리스틴 선의 장소 특정적 디지털 애니메이션 설치 ‘A String of Echo Traps’(2022~2026)가 공개된 이 오프사이트 전시는 페어와 도시 사이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허물었다. 다층적 감각과 언어로 재편된 엔카운터스는 이번 에디션에서 가장 의미 있는 구조적 변화로 기억될 것이다.
디지털 아트의 새로운 문법
아트 바젤 마이애미 비치에서 첫선을 보인 뒤 이번 홍콩에서 아시아 데뷔를 치른 ‘제로 10(Zero 10)’은 올해 페어에서 가장 화제가 된 신규 섹터였다. 엘리 샤인먼의 큐레이션으로 구성된 이 섹터는 디지털 화면에 국한되지 않고 대형 조형과 AI 또는 블록체인과 연계된 관객 참여형 등을 아우르며, 디지털 아트가 얼마나 다양한 형식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단순한 기술 기반 예술의 전시를 넘어 컬렉팅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 것이다. 뇌파 기계를 부착해 기계와 상호작용하며 오프닝 퍼포먼스를 선보인 소우그웬 청은 두 점의 작품 판매와 함께 홍콩 미술관의 관심을 받았다. 한국 디지털 아티스트 디케이는 초기 비디오게임의 시각언어를 차용해 심리적 상태를 탐구하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신작을 선보였고, 오픈 이후 빠르게 판매로 이어졌다. 디케이를 선보인 AOTM 디렉터 아니코 버먼은 “에미 쿠사노의 ‘Magical Compact’ 또한 오픈 직후 바로 판매되었다”며 “디지털 작품을 물질적 작업과 나란히 선보인 것은 기존 컬렉터뿐 아니라 새로운 층과도 폭넓게 소통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엔카운터스에서 디지털 작품을 주로 소개한 것을 떠올리면, 제로 10의 등장은 단순한 새 섹터의 신설이 아니라 디지털 아트가 아트 바젤이라는 페어에 본격적으로 편입되었음을 의미한다. 그 파급력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날 내년이 기대되는 이유다.
심도 있는 큐레이션, 전시를 품은 페어
올해 처음 선보인 신규 섹터 ‘에코즈(Echoes)’는 최근 5년 내 제작한 작품을 최대 세 명의 작가를 중심으로 집중 조명하는 포맷으로, 총 10개 부스가 참여했다. 이 중 한국의 휘슬이 포함되어 현남·박민하·샌정 작가의 작품을 선보였다. 갤러리 규모와 무관하게 동시대 예술의 밀도 높은 대화를 끌어낸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이 섹터는 기존 대형 그룹전이나 단독 개인전과 결이 다른 감상 포인트를 제공했다. 이 섹션은 특히 미드 마켓 갤러리와 신진·중견 작가에게 또렷한 위치를 부여하며, 컬렉터와 기관이 보다 깊이 있는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하도록 설계되었다. 전반적으로 ‘많이 보여주는 것’에서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으로의 이동이 느껴지는 지점이다. 이는 아트 바젤 홍콩이 독자적 큐레이토리얼 언어를 심화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심에 자리한 한국 작가
아트 바젤 홍콩 어디서나 한국어가 들리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올해는 존재감을 넘어 한국 작가들이 페어의 핵심 지점에서 작업의 밀도를 보여준 해였다. 엔카운터스의 강서경, 제로 10의 디케이, 에코즈의 휘슬 부스 외에도 한국 작가의 활약은 여러 섹터에 걸쳐 고르게 분포했다. 이배의 작품은 여러 갤러리 부스를 통해 소개되며 꾸준한 컬렉터 수요를 입증했다. 실린더는 올해 처음으로 아트 바젤 홍콩 ‘디스커버리즈(Discoveries)’ 섹터에 참가해 권현빈의 조각과 사운드를 결합한 혼합형 기술적 설치를 선보였다. 유예림은 P21, 우정수는 N/A를 통해 각각 소개되었으며, 우정수는 중세 아이콘화와 현대 서브컬처의 모티브를 층층이 재해석한 콜라주 작업으로 아트 바젤 홍콩에 첫선을 보였다. ‘인사이츠(Insights)’ 섹터에서는 지갤러리가 우한나의 착용 가능한 소프트 스컬프처와 양주혜의 텍스타일 추상작을 선보이는 등 한국 페미니즘 예술의 세대 간 연결을 조명하는 전시를 구성했다.
홍콩, 아시아 미술의 거점을 다지다
시장, 제도, 도시, 그리고 각국의 방문객이 맞물리며 작동하는 구조 속에서 동시대 미술이 어디로 향하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시하는 아트 바젤 홍콩은 하나의 생태계에 가까웠다. 전시장 밖 곳곳에서 아트 에코 시스템이 활발히 작동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M+ 외벽을 수놓은 파키스탄계 미국 작가 샤지아 시칸데르의 신작 ‘3 to 12 Nautical Miles’는 빅토리아 항구를 배경으로 빛의 애니메이션을 펼쳐 보였다. 동인도회사 시기 필사본 회화의 미학을 차용해 제국과 무역, 글로벌 네트워크에 대한 사유를 담은 이 공동 커미션은 UBS의 후원으로 M+와 아트 바젤이 5년 연속 이어온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이와 함께 로버트 라우션버그와 아시아를 조명하는 전시, 이불의 대규모 회고전, 류이치 사카모토 전시 등이 동시에 열리며 아트 위크 기간 홍콩의 문화적 밀도를 끌어올렸다. 홍콩 미술관(HKMoA)의 은 홍콩 현대미술 작가 19명의 최근작을 한자리에 모았고, 노스포인트 Oi!는 ‘Oi! Spotlight’의 일환으로 정징과 찬 와이랩의 개인전을 선보이며 아트 위크의 열기를 도시 전역으로 확장했다. 타이쿤에서는 3년째를 맞이한 ‘아티스트 나이트(Artists’ Night)’가 열렸다. 아트 바젤 홍콩 디렉터 앙젤 시양 리는 “전시 홀 전반에 흐른 재충전된 에너지는 서로 다른 커뮤니티를 한데 모으고, 이 지역과 더 넓은 세계를 연결하는 홍콩만의 고유한 역량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에 발표한 아트 바젤과 홍콩 정부 간 5년 협력 체결은 홍콩이 아시아 지역 내 유일한 개최지로서 장기적 기반을 공고히 했음을 의미한다. 효율적 인프라,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이 교차하며 아시아와 세계를 잇는 이 도시는 지금도 변화를 흡수하며 또 다른 흐름을 만들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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