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주말 안방극장이 활기로 가득하다. 볼거리가 풍성하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한편으론 우리에게 주어진 금쪽같은 시간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새삼 야속해진다. 결국 세 편의 화제작 중 내 취향을 가장 날카롭게 파고들 작품을 골라야 하는 ‘행복한 우선순위’의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갈등 중인 예비 시청자들을 위해, 지금 이 순간 안방을 달구고 있는 세 작품의 매력을 찬찬히 훑어봤다.
〈21세기 대군부인〉: 대중성을 담보한 영리한 선택지
MBC 금토드라마 〈21세기 대군부인〉은 현재 안방극장에서 가장 확실한 대중성을 거머쥔 작품이다. 안정적인 시청률 10%대 안착은 물론, 화제성 지수(펀덱스 기준) 4주 연속 1위라는 성적표가 그 사실을 말없이 증명한다.
작품의 동력은 ‘입헌군주제’라는 판타지 설정을 빌려 재벌 2세와 왕족의 로맨스를 영리하게 비튼 데 있다. 인물 화제성 1, 2위를 독식 중인 아이유와 변우석은 자칫 비현실적으로 흐를 수 있는 설정을 필연적인 서사로 납득시키는 마력을 발휘한다. 여기에 탄탄한 주조연 라인업과 출생의 비밀, 궁중 암투 같은 클리셰가 세련되게 변주되며 쉴 틈 없는 볼거리를 쏟아낸다. 슈퍼카를 탄 재벌이 엄숙한 궁궐로 입궐하는 이색적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21세기 대군부인〉의 존재감은 이미 충분히 귀하다.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 서서히, 그러나 깊이 스며드는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는 〈21세기 대군부인〉과는 또 다른 의미로 ‘귀한’ 작품이다. 영화판 뒷이야기가 아주 새로운 소재는 아닐지라도, 그 서사의 주인공이 구교환과 고윤정이라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지금 가장 뜨거운 두 배우와 〈나의 아저씨〉, 〈나의 해방일지〉로 누군가의 인생작을 써 온 박해영 작가의 만남만으로도, 이 드라마를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사실 초반 진입 장벽이 낮지는 않다. 박해영 작가 특유의 지질하면서도 처절한 캐릭터들의 향연이 누군가에겐 낯설게, 혹은 불편하게 다가왔을 터. 하지만 이 문턱을 한 번 넘어서는 순간, 몰입의 농도는 그 어느 작품보다 짙어진다. 현재 시청률은 2%대에 머물고 있지만, 전작들이 그러했듯 회차를 거듭할수록 ‘이건 내 이야기다’라며 무릎을 치는 시청자들의 입소문이 강력한 동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화려한 왕실 로맨스보다 내 마음을 가만히 어루만지는 위로가 필요한 이들이라면,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가 되어줄 것이다.
〈은밀한 감사〉: 쫄깃한 긴장감과 로맨스 사이의 줄타기
전작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 다소 무거운 소재로 아쉬운 성적을 남기고 퇴장했다면, tvN 토일드라마 〈은밀한 감사〉는 소재의 무게를 덜고 대중의 입맛을 조준하며 눈에 띄는 상승세를 탔다. 기업 감사팀이라는 전문적인 배경을 취하고 있지만, 정작 극을 이끄는 엔진은 주인공들 사이의 텐션 넘치는 로맨스다.
사내 불륜이라는 자극적인 설정으로 초반 몰입도를 확보한 뒤, 주인공 주인아(신혜선)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하나씩 풀어가는 구조가 주효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관전 포인트는 단연 신혜선이다. 전작 〈레이디 두아〉를 통해 정점을 찍은 그녀의 연기력은 이번에도 빈틈이 없다. 흠잡을 데 없는 발성과 감정 처리로, 자칫 뻔해질 수 있는 장르물의 완성도를 한 층 끌어올린다. 세련된 오피스물 특유의 ‘보는 맛’과 속도감 있는 전개를 즐기는 시청자라면, 주저 없이 〈은밀한 감사〉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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