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츠하이머병 진단이 더 이상 대형병원이나 척수 천자 검사에만 의존하지 않는 시대가 열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손가락 끝을 살짝 찔러 얻은 핏방울 몇 방울만으로 알츠하이머 핵심 바이오마커를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대규모 국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연구진은 이 기술이 향후 치매 조기 발견과 임상연구 참여 방식 자체를 바꿀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배너헬스(Banner Health)가 주도한 이번 연구는 2026년 1월 5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슨(Nature Medicine)에 발표됐다. 연구 제목은 ‘알츠하이머 바이오마커 검사를 위한 건조 혈액 스폿(Dried blood spots for Alzheimer's disease biomarker testing, DROP-AD project)’이다.
연구는 미국 배너 선헬스 연구소(Banner Sun Health Research Institute)의 니콜라스 애슈턴(Nicholas Ashton) 박사가 총괄했다. 스웨덴 예테보리대학교의 카이 블레노프(Kaj Blennow) 교수와 헨릭 제터버그(Henrik Zetterberg) 교수, 영국 엑서터대학교 의과대학 연구진도 공동 참여했다.
연구진은 유럽 7개 의료기관에서 총 337명을 대상으로 손끝 모세혈관 혈액 검사와 기존 정맥 채혈 검사를 비교 분석했다. 이 가운데 304명은 손끝 혈액과 정맥 혈장을 모두 제공해 두 검사 방식의 정확도를 직접 비교할 수 있었다.
검사 방법은 비교적 단순했다. 참가자가 손끝을 살짝 찔러 나온 혈액을 전용 카드에 떨어뜨려 말린 뒤 실험실로 보내는 방식이다. 연구진은 이를 ‘건조 혈액 스폿(DBS·Dried Blood Spot)’ 또는 ‘건조 혈장 스폿(DPS·Dried Plasma Spot)’이라고 설명했다. 냉장 보관이나 별도 전처리 없이 우편 발송이 가능하다는 점도 특징으로 꼽혔다.
영국 엑서터대학교 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참가자 스스로 손끝 채혈을 수행할 수 있는지도 확인했다. 참가자들은 연구진의 시연과 안내문만 보고 의료진 도움 없이 직접 채혈에 성공했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 및 신경퇴행과 관련된 주요 바이오마커 3종을 분석했다. 대표적인 알츠하이머 혈액 바이오마커로 알려진 인산화 타우 217(p-tau217)은 손끝 혈액 검사와 기존 정맥 채혈 검사 사이에서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또 척수액 검사로 확인되는 알츠하이머 병리를 예측하는 정확도(AUC)는 약 0.864로 나타났다.
뇌 손상과 염증을 반영하는 GFAP(아교섬유산성단백), 신경세포 손상을 나타내는 NfL(신경섬유 경쇄) 역시 손끝 혈액 검사와 정맥혈 검사 사이에서 높은 일치도를 보였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단순한 검사 편의성 향상을 넘어, 알츠하이머 조기 발견 전략 자체를 바꿀 수 있다고 평가했다. 현재 알츠하이머 확진에는 PET 뇌영상 검사나 척수액 검사 등이 사용되는데 비용 부담이 크고 침습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정맥 채혈조차도 훈련된 의료진과 냉장·보관 시스템 등이 필요하다.
니콜라스 애슈턴 박사는 “궁극적으로는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알츠하이머를 치료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그 과정에서 병원을 자주 찾지 않는 사람들까지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엑서터대학교의 앤 코벳(Anne Corbett) 교수는 “누구든 어디에 살든 연구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번 기술은 신경과학 연구 방식 자체를 바꿀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했다.
연구진은 특히 다운증후군 환자처럼 병원 방문과 채혈 자체가 부담인 집단에서 활용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농어촌 지역이나 임상연구 참여 기회가 적었던 소수 인종·민족 집단에서도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번 기술은 알츠하이머뿐 아니라 파킨슨병, 루게릭병(ALS), 다발성경화증(MS), 외상성 뇌손상 등 다양한 신경계 질환 연구에도 활용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NfL은 신경세포 손상을 반영하는 대표적 바이오마커로 여러 신경퇴행성 질환에서 공통적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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