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스포츠동아 이승미 기자] 미국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가 인공지능(AI)으로 생성된 캐릭터와 각본의 수상 자격을 원천적으로 제한하는 새 규정을 공식화했다. 영화 예술의 본질인 ‘인간의 창조성’을 최우선 가치로 보호하겠다는 선언으로 읽힌다.
최근 AMPAS가 발표한 제99회 시상식 규정에 따르면, 연기 부문은 배우의 동의 하에 인간이 ‘직접 연기한 역할’만을 심사 대상으로 인정한다. 이에 따라 AI로 구현된 가상 캐릭터나 타인의 외형을 복제한 ‘디지털 배우’는 후보에 오를 수 없다. 각본 부문 역시 ‘인간이 저술한 시나리오여야 한다’는 요건이 명시됐다. 사실상 ‘AI 단독 창작물’의 수상 가능성을 차단한 셈이다.
이번 조치는 AI 기술이 영화 제작 전반에 빠르게 침투하며 배우와 작가 등 창작자들의 실존적 위협이 현실화된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얼마 전 AI로 구현된 고(故) 발 킬머가 코트 보어히스 감독의 영화 ‘무덤만큼 깊은’에 출연키로 해 논란이 됐다. 발 킬머는 후두암 투병을 하다 지난해 별세했으며, 해당 작품은 유족의 동의 하에 디지털 복제가 이뤄졌다. 기술이 배우의 ‘부재’를 대체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경계심을 자극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할리우드 영화계는 이번 규정을 단순한 수상 자격 제한을 넘어선 ‘상징적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AI의 급속한 확산 속에서 ‘예술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이라는 기준선을 분명히 그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다만 아카데미는 영화 제작 과정에서의 AI 활용 자체를 전면 금지하지는 않았다. 시각효과(VFX), 후반 작업, 자료 분석 등 보조 영역에서의 기술 활용은 허용된다. AI 기술 사용 범위에 대한 논란이 제기될 경우, 아카데미는 창작 과정에서의 인간의 기여도를 입증할 추가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을 확보했다. AI를 도구로 인정하되 ‘최종적인 예술적 판단과 책임은 인간이 져야 한다’는 원칙을 제도화한 장치로 해석된다.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시상식인 아카데미가 이 같은 기준을 명문화함에 따라 향후 글로벌 공연, 출판, 미술 등 문화예술 전반에도 유사 규정이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승미 기자 s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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