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의 중심 개념인 ‘오묘주’는 서로 다른 빛이 하나의 근원으로 귀일하는 찰나의 상태를 의미한다. 부제 ‘빛이 머무는 경계, 그 회귀의 운동’이 암시하듯, 작가는 생성과 소멸, 충만과 공허, 유와 무가 교차하는 경계의 순간을 회화적 장으로 끌어들인다. 이는 단순한 시각적 효과의 구현을 넘어 존재의 근원적 질서에 대한 사유를 담아내려는 시도로 읽힌다.
정익현의 작업은 한국 전통 색채 체계인 오방색과 오간색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서 출발한다. 각 색은 고유한 상징성과 독립성을 유지하면서도 화면 위에서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침윤하고 스며든다. 이러한 상호작용은 색채의 혼합이나 대비를 넘어, 차이가 소멸되지 않은 채 공존하는 상태를 지향한다. 결과적으로 화면은 다층적인 색의 관계 속에서 하나의 빛으로 수렴되며, 이는 작가가 구축한 독자적인 회화적 질서로 기능한다.
여기서 ‘빛’은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이 아니라 존재를 발생시키는 근원적 에너지로 작동한다. 이는 『도덕경』이 제시하는 도(道)의 개념과 긴밀히 연결된다. 유와 무, 밝음과 어둠, 드러남과 숨음이 서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상생하는 관계 속에서 세계가 구성된다는 인식은, 정익현의 화면에서 반복적으로 변주된다. 특히 “되돌아감이 곧 운동”이라는 사유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구조로, 모든 색과 형태의 흐름이 궁극적으로 하나의 근원을 향해 회귀하는 운동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조형적 탐구는 2016년 금의 물성을 화면에 본격적으로 도입하면서 중요한 전환점을 맞는다. 초기에는 빛을 상징하는 재료로 선택된 금이 점차 화면의 구조를 형성하는 핵심 요소로 확장되었고, 이후 금박과 은박을 화면 전면에 반복적으로 축적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이 과정에서 캔버스는 더 이상 단순한 평면이 아니라, 빛을 반사하고 발산하는 하나의 ‘장(場)’으로 변모한다.
금과 은은 여기서 장식적 효과를 위한 표면이 아니라 시간의 층위와 감각의 퇴적을 담아내는 물질적 언어로 자리 잡는다. 반복적이고도 수행적인 부착 행위는 물질을 축적하는 과정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감각과 침묵의 층위를 화면 위에 쌓아 올리는 행위다. 이러한 축적의 결과, 화면은 물성과 비물성, 빛과 침묵이 공존하는 깊은 정신적 공간으로 확장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주목할 점은 금박과 은박이 갖는 ‘경계적 성격’이다. 그것은 빛을 과시하는 장식이 아니라, 빛이 머무르고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하는 표면이다. 관람자는 작품을 통해 명확한 서사나 이미지를 읽기보다, 시선이 머무르는 지점에서 감각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는 회화를 해석의 대상이 아닌 체험의 장으로 전환시키는 지점이다.
정익현의 작업은 평면 회화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서로 다른 물성 간의 유기적 결합을 통해 확장된다. 안료의 깊은 색채와 금·은박의 이질적 질감이 충돌을 멈추고 하나의 빛으로 수렴하는 순간, 화면은 단순한 재현의 공간을 넘어 무한한 깊이를 지닌 정신적 장으로 전환된다. 이는 전통적 조형 감각이 현대적 언어와 결합하며 새로운 생명력을 획득하는 과정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작가는 2023년 서울과 대구에서의 전시를 통해 이러한 조형 언어를 보다 명확하게 구축해왔다. 금과 은, 색과 침묵, 전통과 현대를 하나의 화면 안에서 긴장과 조화로 통합하는 방식은 단순한 재료 실험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체계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작업은 동시대 회화에서 물질성과 정신성의 관계를 다시 사유하게 만드는 중요한 사례로 평가된다.
정익현은 “오묘주는 특정 전통에 대한 재현이나 오마주가 아니라, 동서양의 사유와 전통의 물성, 현대적 감각이 하나의 빛 안에서 공존하는 우주관”이라며 “회화가 만물의 회귀가 머무는 고요한 심연이자 사유의 장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전시는 동아시아 전통 미학을 현대적 조형 언어로 확장하는 동시에, 빛과 존재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자리다. 정익현의 ‘오묘주’는 회화를 단순한 재현의 도구에서 벗어나 감각과 사유가 교차하는 장으로 재정의하며, 국제 미술계에서 동시대 회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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