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2024년 발표에 따르면 세계 한류 팬은 약 2억2천500만명에 육박한다고 합니다. 또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초월해 지구 반대편과 동시에 소통하는 '디지털 실크로드' 시대도 열리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한류 4.0'의 시대입니다. 연합뉴스 동포·다문화부 K컬처팀은 독자 여러분께 새로운 시선으로 한국 문화를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전문가 칼럼 시리즈를 준비했습니다. 시리즈는 매주 게재합니다.]
◇ 심장이 기억까지 옮긴다고?
미국에서 있었던 실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여덟 살짜리 소녀가 심장 이식 수술을 받은 뒤, 자꾸만 악몽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꿈속의 공포는 너무나 생생했다. 결국 정신과 치료까지 받게 됐는데, 놀라운 사실은 소녀가 받은 심장이 살해당한 열 살 소녀의 것이었다는 점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다음이다. 소녀는 꿈속에서 본 살인자의 인상착의를 정확히 묘사했고, 경찰이 이를 토대로 수사한 끝에 진짜 범인이 체포됐다.
이런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미국 애리조나에 사는 빌 홀(63세)은 심장을 이식받은 뒤 삶이 180도 달라졌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그가 갑자기 운동광이 돼 철인 3종경기를 비롯한 각종 스포츠 대회에 출전하기 시작했고, 재즈 가수 샤데이의 음악만 들으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심취했다.
호기심에 이전 심장 주인을 추적해본 그는 충격을 받았다. 심장을 기증한 사람은 운동을 좋아하던 할리우드 스턴트맨이었고, 그가 가장 사랑하던 가수가 바로 샤데이였다.
미국 애리조나 주립대의 게리 슈왈츠 교수는 지난 20년간 장기 이식자들을 추적 연구해왔다. 그가 직접 확인한 '기억 이전' 사례만 70건이 넘는다. 그는 이런 기이한 현상들을 토대로 심장에도 기억이 저장된다는 가설을 제시했다. 미국 하트매스연구소의 롤린 맥크레이티 박사도 같은 견해다. 심장에는 신경세포로 이뤄진 작은 뇌가 있어서, 두뇌의 명령 없이도 스스로 박동하면서 기억과 감정까지 인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주장이 주류 의학계에서 완전히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심장이 펌프 이상의 역할을 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로 입증되고 있다. 심장은 혈액을 뿜어내는 기능 외에도 호르몬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이기도 하다. 심방에서 분비되는 ANP는 혈관, 신장, 뇌, 면역계, 폐, 간 등 전신에 영향을 미치고, 심실에서 분비되는 BNP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와 해마에 작용한다. 게다가 심장은 강력한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을 만들어내 전신 세포, 특히 뇌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옛사람은 심장을 감정의 근원이자 사랑과 용기의 상징으로 여겼다. 그러던 것이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감정과 기억의 자리는 뇌로 옮겨갔고, 심장은 그저 혈액을 공급하는 펌프로 격하됐다. 그러나 정말 그게 전부일까?
◇ 한국인은 무엇으로 죽는가
통계청이 발표한 '2024년 사망원인통계'를 보면, 3대 사망원인은 암, 심장 질환, 폐렴이었다. 이 세 원인이 전체 사망의 42.6%를 차지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2021년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사망의 31% 이상이 심혈관 질환으로 발생하며, 2021년 기준 연간 약 6천8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됐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사망원인 1위가 '심장질환'으로 표시돼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다.
"미국의 1번 살인자가 누구냐고? 바로 우리 자신이다(Heart Disease)."
흥미로운 점은 심장질환이라고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관상동맥 혈관 질환이라는 사실이다. 결국 사망원인 1, 2위인 심장질환과 뇌혈관질환은 모두 혈관 질환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심장과 뇌의 혈관에서만 큰 문제가 생길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반 조직의 동맥은 한 곳이 막혀도 우회로가 있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심장의 관상동맥과 뇌동맥에는 우회로가 없다. 한 곳이라도 막히면 그 너머로는 혈류가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그렇게 무서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심근경색 환자에게 우회술(bypass surgery)을 하는 것도 인공적으로 우회로를 만들어주기 위함이다.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는 심장을 '지성과 운동, 감각이 위치하는 곳'으로 보았다. 2세기 갈렌은 심장을 '열을 생산하는 장소이자 정신이 깃든 곳'이라고 했다. 12세기까지 서양에서도 심장은 정신과 마음을 가진 기관이었다. 그러다 17세기 영국 의사 윌리엄 하비가 혈액 순환의 원리를 밝히면서 심장은 점차 '기계적 펌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데카르트(1632~1704)의 심신이원론이 결정타를 가했다. 그는 영혼을 과학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정신과 신체가 다르다고 주장했다. 영혼은 교회가, 신체는 과학이 다루는 것으로 분리된 것이다. 이후 존 로크와 데이비드 흄을 거치며 환원주의(reductionism)가 서양 의학의 주류가 됐다. "시계를 이해하려면 작은 부속을 연구하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19세기에는 루이 파스퇴르와 클로드 베르나르 사이에 운명적인 대립이 있었다. 파스퇴르는 질병의 원인을 '세균(germ)'으로 본 반면, 베르나르는 '인체 내부 환경'(terrain)을 중시했다. 결국 파스퇴르의 세균설이 승리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파스퇴르가 임종을 앞두고 "C'est le terrain"(결국 인체 내부 환경이 중요하다)이라는 말을 남겼다는 것이다.
반면 동양 의학은 처음부터 다른 관점이었다. '몸 전체가 심장이다'라는 사고방식, 즉 전인적(holistic) 접근이다. 기쁨(喜)은 심(心)과, 분노(怒)는 간(肝)과, 슬픔(悲)은 폐(肺)와 연결되어 있다고 봤다. 옛사람은 심장을 '오장육부지대주'(五臟六腑之大主)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허준의 동의보감과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이 이런 관점을 집대성했다.
17세기까지만 해도 동서양 의학에 큰 차이가 없었고, 어떤 면에서는 동양 의학이 오히려 우월했다고 평가하는 학자도 있다.
◇ 심장병을 부르는 7가지 위험인자
심장질환을 일으키는 위험인자는 잘 알려져 있다. 첫째 고(高)콜레스테롤혈증, 둘째 고혈압, 셋째 흡연, 넷째 비만, 다섯째 당뇨, 여섯째 운동 부족이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 번째가 흥미로운데, 바로 '너무 심각한 마음가짐'이다.
콜레스테롤은 흔히 무조건 나쁜 것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단순하지 않다. 지방은 단백질과 결합해 지질단백(lipoprotein)으로 존재한다. 총 콜레스테롤 양보다는 LDL(저밀도지질단백)은 낮고 HDL(고밀도지질단백)은 높은 상태가 좋다. 일반적으로 맛있는 음식일수록 콜레스테롤이 높은 편이지만, 그보다는 균형 잡힌 식단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등장한 개념이 앞서 다룬 프랑스 사람들의 식습관, 즉 지중해식 라이프스타일이다.
운동 부족은 현대인의 고질병이다. 하루 30분 정도의 가벼운 운동만으로도 심혈관계가 크게 좋아진다. 그런데 정말 의외인 것은 일곱 번째 인자, 너무 심각한 마음가짐이다. 매사를 너무 진지하고 비관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심장을 갉아 먹는다는 뜻이다.
20세기는 '뇌의 세기'(Century of the Brain)였다. 서양은 머리(Brain)의 코드로, 동양은 가슴(Heart)의 코드로 살아왔는데, 지난 한 세기는 압도적으로 뇌의 코드가 지배했다.
그러나 뇌의 코드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첫째, '바깥세상은 나에게 적대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뇌는 항상 전투태세다. 둘째, 피해의식에 사로잡힌다. '왜 하필 나에게', '이건 부당해'라며 끊임없이 남 탓을 한다. 셋째, '열심히 일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며 자기 자신을 혹사한다. 넷째, '내가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다섯째, 좌절을 곧장 공격성으로 표출한다.
이런 뇌의 코드대로만 살면 심장이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그래서 이제는 가슴의 코드로 살아갈 시간이다. 세계보건기구(WHO)도 건강을 '질병이나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완전한 육체적·정신적·사회적 웰빙 상태'로 정의하고 있다. 심장을 그저 펌프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따뜻한 마음과 풍부한 감정이 담긴 장기로 다시 바라봐야 한다는 뜻이다.
건강한 삶을 위한 라이프스타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매일 소량의 술(특히 와인) 한 잔, 금연, 30분 운동, 비만 피하기, 과일·야채·잡곡·생선 위주의 식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낙천적인 마음가짐이다. 즉, 가슴의 코드를 따르는 삶이다.
엄융의 서울의대 명예교수
▲ 서울의대 생리학교실 교수 역임. ▲ 영국 옥스퍼드의대 연구원·영국생리학회 회원. ▲ 세계생리학회(International Union of Physiological Sciences) 심혈관 분과 위원장. ▲ 유럽 생리학회지 '플뤼거스 아히프' 부편집장(현). ▲ 대한민국의학한림원 정회원(현). ▲ 대구경북과학기술원 학제학과 의생명과학전공 초빙석좌교수(현).
*더 자세한 내용은 엄융의 교수의 저서 '건강 공부', '내몸 공부' 등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
seva@yna.co.kr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