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원 아카이빙] 익숙한 이미지의 다른 사용법 - 배경과 사물: 병풍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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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익숙한 이미지의 다른 사용법 - 배경과 사물: 병풍②

문화매거진 2026-05-04 09:37:29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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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원 아카이빙] 익숙한 이미지의 다른 사용법 - 배경과 사물: 병풍①에 이어 
 

▲ 이형록, 이택균필 책가도 병풍, 19세기
▲ 이형록, 이택균필 책가도 병풍, 19세기


[문화매거진=정서원 작가] 책가도가 그려진 병풍은 또 다른 방식으로 병풍의 성격을 보여준다. 책, 도자기, 문방구, 골동품이 가득 그려진 책가도는 얼핏 서재의 물건들을 그린 그림처럼 보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공간이 하나의 시점으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책장과 사물들은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본 것처럼 배치되고, 깊이는 자연스럽게 이어지기보다 화면 위에 차곡차곡 쌓인다. 

이 낯선 공간감은 병풍이라는 형식과 잘 맞는다. 여러 폭으로 나뉜 화면은 한 번에 읽히기보다 옆으로 이동하며 보게 된다. 병풍은 하나의 창문처럼 세계를 보여주기보다, 여러 조각의 장면을 나란히 세워둔다.

이 지점에서 병풍은 오늘날의 화면 문화와도 묘하게 닿는다. 우리는 휴대폰과 모니터에서 여러 창을 동시에 열고, 이미지를 겹쳐 보고, 하나의 공간을 여러 프레임으로 나누어 인식한다. 병풍은 물론 디지털 화면이 아니지만, 단일한 시점보다 분할과 병치에 익숙한 물건이다. 접힌 면과 펼쳐진 면, 앞에 놓인 사람과 뒤의 그림, 가려진 부분과 드러난 부분이 동시에 존재한다. 병풍을 단순한 옛 소품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데 오늘날 병풍은 대개 이 복잡한 쓰임을 잃은 채 빠른 이미지로 소비된다. 전시장이나 촬영장에서 병풍은 ‘한국적인 분위기’를 즉각적으로 만들어 내는 배경이 된다.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병풍이 원래 했던 일이 사라진 채, 표면만 남을 때 생긴다. 병풍은 더 이상 공간을 나누지 않고, 누군가의 위치를 바꾸지도 않으며, 의례의 시간을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산수, 꽃, 문자, 색채 같은 요소만 남아 익숙한 전통 이미지로 읽힌다.

이런 변화는 병풍만의 문제가 아니다. 오래된 사물들은 기능을 잃고 이미지로 남는다. 이 연재에서 보고싶은 것은 바로 그 과정이다.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남았는가. 그리고 남은 표면은 지금 어떤 방식으로 다시 사용되고 있는가. 너무 익숙하게 소비되는 이미지를 통해 그 이미지가 원래 어떤 몸짓과 장소, 제도와 연결되어 있었는지 살펴보자는 것이다. 

▲ 의재 허백련, 사군자십곡병풍, 종이 위 수묵담채
▲ 의재 허백련, 사군자십곡병풍, 종이 위 수묵담채


병풍은 그림처럼 보이지만 그림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람을 막고, 시선을 가리고, 자리를 만들고, 어떤 사람을 특정한 의미 안에 놓는 물건이었다. 작업의 관점에서도 이 차이는 중요하다. 전통 이미지를 가져오는 일은 쉽다. 병풍의 모양, 구름무늬, 산수의 선, 낡은 색감을 화면에 얹으면 곧바로 어떤 분위기는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이미 익숙한 표면을 반복하는 데 그칠 수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병풍이 어떻게 쓰였는지를 보는 일이다. 접히고 펼쳐지는 방식, 앞과 뒤를 나누는 방식, 사람의 위치를 바꾸는 방식, 한 장면을 여러 폭으로 나누어 보여주는 방식. 이런 쓰임을 다시 생각할 때, 병풍은 단순한 소재가 아니라 작업의 구조를 바꿀 수 있는 단서가 된다.

그래서 병풍은 단순히 오래된 것이라기보다 아직 덜 읽힌 사물에 가깝다. 그것은 오래된 이미지로 남아 있지만, 그 안에는 공간과 시선, 권위와 욕망이 얽혀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남은 병풍의 표면은 그 얽힘이 지워진 자리이기도 하다. 이 연재는 앞으로 그런 사물들을 하나씩 따라가 보려 한다. 장식으로 남기 전, 이미지가 되기 전,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를 다시 묻는 방식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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