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컬처 이상완 기자] 국외를 떠돌던 분청사기가 보물 지정을 앞두고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분청사기 음각선어문 편병’, ‘부산 범어사 대웅전 벽화’,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벽화’, ‘임실 진구사지 철조여래좌상’, ‘완주 위봉사 목조관음보살입상 및 지장보살입상’, ‘여수 흥국사 제석천·천룡도’, ‘전 이경윤 필 산수인물도첩’ 등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눈길을 끄는 작품은 개인 소장 유산인 ‘분청사기 음각선어문 편병’이다. 15~16세기 전라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둥근 병을 만든 뒤 몸통을 두드려 납작한 면을 만들고, 굽을 깎아 편병 형태를 완성했다. 표면에는 백토를 입힌 뒤 끝이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문양을 새겼다.
병의 매력은 정교함보다 자유로움에 있다. 앞뒷면과 양옆에 새겨진 선문과 파어문은 일정한 틀에 갇히지 않는다. 물고기 같기도 하고 물결 같기도 한 선들이 느슨하게 흐르면서도 화면의 균형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분청사기 특유의 즉흥성과 대담함이 잘 드러난다.
작품의 이력도 특별하다. 일제강점기 일본 소장가가 구입해 국외로 반출됐다가 2018년 국내 소장가가 공개 구입하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오랜 시간을 건너온 유물이지만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국외 반출과 환수, 보물 지정 예고로 이어진 과정은 작품의 역사성을 더한다.
‘부산 범어사 대웅전 벽화’는 한 공간 안에 불교 신앙의 세계가 어떻게 펼쳐지는지를 보여준다. 대웅전 내부 동쪽과 서쪽 벽에 그려진 불화 4점이 대상이다. 중앙 주불단 뒷벽의 영산회상도를 중심으로 동쪽에는 약사여래삼존도, 서쪽에는 아미타여래삼존도가 배치됐다. 석가여래를 중심에 두고 약사여래와 아미타여래를 양쪽에 모시는 삼불 신앙이 건축 공간 안에 구현된 셈이다.
범어사 벽화는 관음보살도와 달마·혜가단비도가 함께 남아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크다. 관음보살과 달마대사를 소재로 한 벽화는 다른 사찰에서도 확인되지만, 삼불 세계를 구현한 벽화와 관음·달마 벽화가 한 공간에 함께 남아 있는 사례는 드문 것으로 평가된다. 보수 과정에서도 다시 칠해지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 관음보살 벽화’는 대웅보전 후불벽 뒷면에 그려진 작품이다. 관음보살이 보타락가산 암벽에서 선재동자를 맞이하는 장면을 담았다. 화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백의관음보살은 한쪽 다리를 세우고 다른 다리를 내려뜨린 유희좌 자세로 앉아 있다. 머리 보관 중앙에는 태극문이 표현돼 있다.
태극문은 조선 후기 불화승 의겸 일파가 만든 개암사 괘불 등에서 확인되는 양식과 닮았다. 내소사 벽화가 의겸 계열 화승 집단의 작품일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18세기 불화 양식과 화승 집단의 활동을 연구하는 기준점으로 의미가 있다.
‘임실 진구사지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하대인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손과 일부 신체는 결실됐지만 전체 비례와 조각 수법은 여전히 힘을 지니고 있다. 역삼각형 얼굴, 작고 단정한 턱과 입, 눈썹에서 콧등으로 이어지는 이중 곡선, 가늘게 뜬 눈매는 9세기 후반 철불의 특징을 보여준다.
몸체에서는 통일신라 전성기 조각 전통도 확인된다. 잘록한 허리, 팽만한 가슴, 부드럽게 흐르는 옷주름은 금속 불상임에도 유연한 인상을 준다. 뒷면까지 옷주름을 조각한 점은 제작 수준을 보여주는 중요한 요소다. 신라 하대 실상산문의 거점 사찰로 여겨지는 임실 진구사와 관련됐을 가능성이 높다.
‘완주 위봉사 목조관음보살입상 및 지장보살입상’은 1605년 위봉사 북암에 봉안하기 위해 만든 사보살상 가운데 두 점이다. 현재는 위봉사 보광명전에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직후 제작된 이른 시기의 기년작 보살입상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제작에는 수조각승 원오를 비롯한 조각승 5명이 참여했다. 원오는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 불상 조각승 유파가 형성되던 초기 단계에서 활동한 대표 장인이다. 두 보살상은 1989년 도난됐다가 2016년 환수됐다. 도난 과정에서 사라진 보관과 지물은 근래에 다시 조성해 함께 모셨다. 도난과 환수를 거친 문화유산이라는 점에서도 보존 의미가 깊다.
‘여수 흥국사 제석천·천룡도’는 대웅전에 모셔졌던 중단탱화다. 제석천도와 천룡도가 하나의 화면으로 결합되기 전, 각각 따로 제작된 2폭의 불화가 한 쌍으로 전하는 사례다. 1741년 수화승 긍척이 주도하고 여러 화승이 함께 완성했다. 긍척은 의겸의 화풍을 이은 화승이다. 18세기 의겸 화파의 흐름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호림박물관 소장의 ‘전 이경윤 필 산수인물도첩’은 조선 중기 문인 문화의 현장을 보여주는 화첩이다. 1면부터 9면까지는 이경윤의 작품으로 전하는 산수인물도가 실려 있다. 이어 작자 미상의 금니산수, 화조도, 인물도 등이 이어진다.
화첩이 중요한 이유는 그림만 남아 있어서가 아니다. 선조대 문장가 최립이 1598년 겨울부터 1599년 정월 사이 직접 쓴 제화시와 발문이 함께 수록돼 있다. 그림을 누가 소장했는지, 어떤 경위로 화첩이 만들어졌는지, 당대 문인들이 어떻게 작품을 감상했는지를 함께 보여준다. 조선 중기 회화와 문인 교유, 수집과 감상의 문화를 입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자료다.
보물 지정 예고 대상은 한 시대나 한 장르에만 머물지 않는다. 분청사기의 자유로운 선, 사찰 벽화의 신앙 세계, 통일신라 철불의 조형성, 전란 직후 목조보살상의 역사성, 조선 중기 화첩의 문인 문화까지 폭이 넓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저마다 시대의 기술과 미감, 신앙과 사회적 기억을 품고 있다. 어떤 유산은 국외를 떠돌다 돌아왔고, 어떤 유산은 도난과 환수를 거쳤다. 또 어떤 유산은 사찰 건축 안에서, 혹은 화첩의 종이 위에서 수백 년 동안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지정 예고된 유산들은 30일 동안 의견 수렴을 거친다. 이후 문화유산위원회 심의를 통해 보물 지정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뉴스컬처 이상완 prizewan2@nc.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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