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은 작가 / 홍 작가 인스타그램
혈연도 혼인도 아닌 방식으로 가족을 꾸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가족이 아닌 남남끼리 사는 5인 이하 가구'를 뜻하는 비친족 가구가 2020년 42만3459가구에서 2024년 58만413가구로 급증했다. 연인 간 동거, 사실혼, 동성 부부, 룸메이트 등 다양한 형태가 포함된다. 이른바 '법망 밖 가족'이 60만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연합뉴스가 4일 이 흐름을 짚은 기획 보도를 내보냈다. 비혼 출산을 위해 덴마크까지 다녀온 30대 여성, 두 애인과 한집에서 사는 홍승은(38) 작가 등 기존 가족 제도 바깥에서 자신만의 삶의 방식을 선택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홍승은 작가 / 홍 작가 인스타그램
홍 작가는 11년, 9년을 각각 만나온 두 명의 애인과 8년째 한집에서 살고 있다. 상호 합의로 한 명 이상의 사람과 연인 관계를 맺는 논모노가미(Non-monogamy: 비독점적 다자연애), 혹은 폴리아모리(Polyamory: 비독점적 다자 사랑)의 당사자다.
홍 작가가 처음부터 이 삶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오랫동안 일대일 독점적 연애를 해온 그는 소유하고 구속하는 관계에서 반복적으로 상처를 입었다. '서로를 통제하지 않는 사랑은 불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오래 붙들고 있던 그는 새 연인과 비독점적 관계에 합의했고, 또 다른 인연이 더해져 세 사람이 함께 살게 됐다.
홍 작가는 2020년 이 경험을 자전 에세이 ‘두 명의 애인과 삽니다’에 담았다. 국내 첫 폴리아모리 에세이로 꼽히는 이 책에서 그는 "한때 나는 과거 사냥꾼이었다"고 고백했다. 연애를 시작하면 상대의 과거 흔적을 찾아내 서운함을 드러내고, 서로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했다. 일기장을 찢고, 커플링을 버리고, 지난 사랑의 흔적을 지웠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가족회의를 통해 서로의 일정을 공유한다. 각기 맺고 있는 관계와 활동하는 단체들이 자연스럽게 섞이고, 집 안 곳곳에 다양한 친구와 동료들의 칫솔이 쌓여 간다. 책이 출간되자 포털 메인에 소개되며 하루 만에 댓글 1000개가 넘게 달렸다. 화제와 논란이 동시에 터졌다.
책에서 홍 작가는 관계의 지속 비결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오래 한결같은 마음이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서로의 변화를 지켜봐 주었기 때문이죠. 당신이라는 바람을 내 손에 잡아 두지 않으려 했고, 나라는 바람을 상대도 움켜쥐려고 하지 않았어요."
폴리아모리의 형태가 특수하다는 점보다 그 안에 있는 합의와 존중이 핵심이라는 게 홍 작가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는 연합뉴스 인터뷰에서 "일대일 연애라 해도 서로를 존중하지 않으면 관계가 곪아버리듯, 논모노가미도 형태의 특이성보다 서로 간의 합의와 존중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승은 작가 / 홍 작가 인스타그램
그러나 홍 작가가 선택한 삶에는 제도의 벽이 뚜렷하다. 홍 작가는 동거인이 아플 때 수술 동의 등 보호자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던 일이 가장 큰 장벽이었다고 떠올렸다. 혈연도 혼인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럴 때마다 평소에 잘 연락하지 않는 원가족에게 연락하는 아이러니를 겪었다"고 했다.
그래서 홍 작가가 말하는 가족의 정의는 법적 테두리 바깥에 있다. 그는 연합뉴스에 "서로를 돌보는 여러 형태의 이름 없는 관계들이 가족보다 더 친밀할 수 있다"고 했다.
혈연이나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인도 가족에 준하는 관계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은 21대와 22대 국회에 발의됐으나 논의는 지지부진한 상태다. 홍 작가를 비롯한 수많은 '법망 밖 가족'이 직면한 현실이기도 하다.
홍 작가는 페미니즘 에세이 ‘당신이 계속 불편하면 좋겠습니다’(2017), 글쓰기 안내서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도 펴냈다. 2013년부터 '불확실한 글쓰기' 수업을 운영하며 이야기 안내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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