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퍼포먼스 '듀엣' 선보였던 두 사람, 화이트 큐브 서울서 작품으로 협연
(서울=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 1979년 6월 20일 백남준(1932∼2006)과 그리스 출신 키네틱 조각(움직이는 조각)의 대가 타키스(1925∼2019)가 독일 쾰른에서 만났다. 두 사람은 쾰른 미술협회 미술관에서 설치 및 퍼포먼스 작품 '듀엣'을 선보였다.
피아노 앞에 앉은 백남준은 아주 느리고 여리게 피아노 건반을 눌렀다. 그의 연주는 쇼팽의 '왈츠 9번 내림 A장조'에서 시작해 바흐의 '인벤션 7번 E단조'로 이어졌다.
백남준의 연주가 진행되는 동안 전자석을 이용한 타키스의 작업이 작동했다. 전류가 흐르면 전자기장이 생기면서 큰 공이 철제 프로펠러에 부딪히게 되는 장치였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깨진 심벌즈를 때리는 듯한 금속의 굉음은 백남준의 피아노 소리 위를 덮었다 사라졌다. 타키스의 조각이 내는 요란한 소음은 백남준이 이어가는 불안하고 나약한 연주를 방해했다.
기존의 음악적 질서를 해체하는 두 사람의 이 실험은 모든 부정성을 제거한 '매끄러움'의 미를 추구하는 시대에 원초적이고 역동적인 개성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이 실험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그로부터 47년 지난 2026년 서울에서 두 사람의 또 다른 '듀엣'이 열리고 있다. 지난 2일부터 화이트 큐브 서울에서 시작한 전시 '듀엣: 타키스와 백남준'이다. 백남준의 작품 4점과 타키스의 작품 17점 등 총 21점의 작품을 한 공간에 배치해 협업을 선보인다.
두 사람은 현대 음악가 존 케이지(1912∼1992)에 영향을 받았다. 케이지는 무대에 등장한 피아노 연주자가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은 채 앉아 있다가 일어난 작품 '4분 33초'로 유명하다.
백남준은 케이지와 만난 뒤 '존 케이지에 대한 경의: 테이프와 피아노를 위한 음악'이란 퍼포먼스를 선보일 정도로 영향을 받았다.
1959년 뒤셀도르프 갤러리 22에서 선보인 이 퍼포먼스는 고전 음악부터 일상 소음까지 녹음해 편집한 테이프를 틀어 놓고는 피아노를 연주하다 부수고 바닥에 넘어뜨리는 공연이었다. 백남준은 이때 틀었던 테이프를 액자에 넣어 동명의 작품으로 남겼다.
타키스 역시 한 인터뷰에서 "케이지는 우연한 소리조차 음악가처럼 작곡한다"며 그의 사상에 깊이 공감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타키스의 '뮤지컬' 연작도 볼 수 있다.
타키스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구 탄생 때부터 존재하던 자기력에 관심이 많아 이를 작품으로 많이 만들었다. 뮤지컬은 나무판에 수평으로 팽팽히 당겨진 기타 현을 설치하고 그 위에 바늘 모양의 가느다란 금속 막대를 달아 놓은 작품이다.
자성으로 움직이는 바늘이 금속 현에 부딪히며 소리가 나면 나무판에 내장된 스피커가 이를 증폭시키는 장치다. 예측 불가능하게 움직이는 막대가 현과 부딪히면서 나는 '날것의 음악'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다.
자기력은 백남준에게도 중요한 소재였다.
'닉슨'은 두 대의 텔레비전 화면에 원형 코일을 설치한 작업이다. 두 화면에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 동시에 출력되는데 이 중 한 곳에만 전자기력을 발생시켜 화면을 일그러뜨리게 한다.
백남준은 TV가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이 매체가 지닌 정치적 영향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고 이를 작품으로 구현했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케나 말버트 화이트 큐브 어소시에이트 큐레이터는 "두 작가가 사후에 작품으로 만나 대화하는 현장을 즐겨달라"고 말했다.
전시는 6월 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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