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는 밸런타인데이를 앞두고 초콜릿 숍만큼 왁싱 숍을 찾는 비율이 폭증했었다고 한다. 보디 프로필이 유행할 때도 왁싱 숍은 반짝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다시 취미 수영이 늘자 이를 위한 고객이 증가했고, 러닝이 인스타그램을 막 휩쓸 때쯤에는 마찰로 불편을 호소하는 러너들이 왁싱 숍 문을 두드렸다. 물론 이와 같은 이유로 왁싱 숍을 찾는 사람은 여전히 많지만, 최근 1~2년 사이 추세가 좀 달라졌다.
네일 숍, 미용실, 피부과처럼 자기 관리를 위해 방문하는 이들이 주 고객층으로 콘크리트처럼 자리 잡으며 단발성이 아닌 꾸준한 제모는 물론 사후 케어까지 좀 더 정교해지고 첨단화되기 시작한 것. 고객 스펙트럼도 더 넓어졌다. 사춘기 청소년부터 자의 또는 타의로 방문한 남성, 임산부, Y존 새치를 관리하려는 중년 여성에 이르기까지, 문턱이 낮아진 만큼 다양해진 요구는 제모 판도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켰다. 또한 한때 비건 열풍과 함께 부흥한 비건 왁스 ‘슈거링’이 이제는 하나의 제모 옵션으로 자리 잡았지만 업계에서는 이에 대한 시선이 엇갈리는 모양새다. 꾸준한 관리가 대세라지만 여름을 앞두고 털 관리에 관심이 쏠리는 지금, 우후죽순 떠다니는 최신 제모 트렌드를 발칙한 이야기도 섞어가며 정리해봤다.
왁싱도 웰니스의 일부다
」시즌성 혹은 노출 대비를 위한 단기적 미용으로 인식되던 왁싱이 웰니스 라이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건 MZ세대의 영향이 컸다. 타인의 시선보다 스스로의 컨디션과 만족감을 중시하는 이들은 왁싱을 사치가 아닌 불편을 줄이기 위한 기능적 소비이자 자신을 위한 경험과 시간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보여줄 사람이 없어도 내가 좋아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면도로 제모 라이프를 연명하다 왁싱으로 전향하는 경우도 많다. 면도를 반복적으로 하면 표피에 지속적인 상처가 나고 각질이 두껍게 형성되면서 인그로운 헤어가 잘 생기는데, 이에 고통받던 이들이 웰니스를 경험하고 왁싱에 주기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건 왁싱을 하는 사람은 손톱도, 머릿결도, 옷차림도 깔끔할 비율이 높다는 사실. 아마도 이는 왁싱이 여타 관리와 병행되는 하나의 루틴으로 자리 잡았다는 근거로 읽힌다. 동시에 웰니스에는 고비용이 따른다는 깨달음까지.
웰컴 에브리바디 존
」물론 젊은 여성 고객이 압도적으로 많다. 그런데 최근 들어 확실히 다양한 고객층이 제모에 관심을 갖고 왁싱 숍을 찾는 추세다. 성별로 나누자면 8:2 정도다. 당연히 남성이 20%를 차지한다. 아직 미약한 비율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따른다. 바로 남자 왁서가 거의 없다는 것. 남성 전용 숍도 있긴 하지만 그리 흔하진 않다. 그럼에도 늘고 있는 남성의 왁싱 숍 방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자의와 타의. 자발적으로 찾는 경우 과거에는 운동선수, 모델, 유학생 등으로 한정됐지만 최근에는 편의를 이유로 일반 남성으로까지 확장됐다. 남성의 체모는 여성에 비해 굵고 양이 많아 여러 문제가 쉽게 발생하는데, 특히 운동을 즐겨 하다 보면 습진과 따가움이 반복되다 결국 상처가 나고 착색되는 과정이 계속 되풀이된다. 피부 트러블 해결 외에도 인그로운 헤어와 같은 피부 컨디션 개선과 체취 관리 역시 왁싱 숍을 찾는 목적이다. 물론 남성은 타인의 시선 때문에 완전히 제거하기보다 일부분만 남기는 걸 선호한다. 첫 진입 장벽이 높을 뿐 페이스와 보디 왁싱 모두 변화의 폭이 크기 때문에 체감 만족도는 오히려 여성보다 높은 편이다. 타의에 의한 방문은 보통 아내나 여자 친구의 권유 때문이다. 간혹 아무 정보 없이 따라왔다가 발길을 돌리는 남성도 있다고 한다. 5060 고객의 증가도 눈여겨볼 만하다. 수영복 입을 일이 흔한 동남아 여행을 앞두고 찾는 경우가 많고, 남성과 마찬가지로 일부분만 남기는 걸 원한다. 흥미로운 점은 일부 5060 고객 사이에서 왁싱과 함께 Y존의 새치를 염색하는 니치한 흐름이 있다는 것. 민감한 부위인 만큼 일반 염모제가 아닌 전용 혹은 식물성 염료를 사용한다. 청소년 고객의 유입도 눈에 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콧수염과 목 뒤, 눈썹 사이 등 털 때문에 신경 쓰이는 부위를 관리하러 부모님과 동행해 왁싱 숍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이다.
비건은 언제나 옳을까
」슈거링은 100% 천연 원료를 내세운 안전한 왁싱으로 첫 등장부터 주목받았다. 특히 임산부를 비롯해 자극과 성분에 민감한 고객층을 중심으로 피부 친화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 슈거링은 보통 하드 왁싱과 비교된다. 두 방식 모두 모근부터 제거한다는 점은 같지만 성분과 시술 방법에 차이가 있다. “스패출러로 왁스를 털의 반대 방향으로 도포한 뒤 제거하는 방식인 하드 왁싱은 짧은 시간 내 넓은 부위를 관리할 수 있습니다. 슈거링은 설탕 페이스트를 털의 결 방향으로 바르고 제거해 민감한 피부에 적합하죠.” 무무왁싱 장정윤 대표의 설명이다. 뜨거운 하드 왁스보다 낮은 온도로 시술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슈거링의 장점이다. 다만 성분이 전부는 아니다. 사만다왁싱의 김희현 대표는 “왁스는 피부에 흡수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중요한 것은 제모력입니다. 통증 역시 고객들의 가장 큰 관심사죠. 하드 왁싱과 슈거링 모두 개인차가 있고, 손으로 핸들링하기 때문에 시술자의 실력 또한 중요합니다. 마사지를 받을 때 오일보다 테라피스트의 핸들링이 훨씬 더 중요한 것과 비슷한 원리죠”라고 말한다. 슈거링은 결국 마케팅일까, 아니면 또 하나의 선택지일까? “슈거링은 소프트 왁싱이나 하드 왁싱을 대체하기보다는 클린 뷰티를 중시하는 고객층이 선호하는 대안으로,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선택적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장정윤 대표의 결론이다.
스킨 부스터, 이제 Y존에 양보하세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스킨 부스터라니, 피부과에서나 들었던 키워드가 뇌리에 꽂혔다. 제모 트렌드의 가장 큰 변화는 단연 사후 케어다. “요즘은 단순히 진정 젤을 바르는 수준을 넘어 왁싱 후 열린 모공을 통해 앰풀을 침투시키는 미세 전류 시술이나 고밀도 초음파, 진정 팩을 병행합니다. 히알루론산 앰풀로 건조함을 즉각 개선하고, 엑소좀을 침투시켜 피부의 재생을 돕고 붉은 기를 완화하죠.” 김희현 대표의 설명이다. 장정윤 대표 역시 “이제 사후 관리는 단순 진정 단계를 넘어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과정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인그로운 헤어 예방, 색소침착 관리, 피부 장벽 회복까지 포함하는 기능성 중심의 관리로 확장되고 있죠”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레이저 제모와 왁싱을 병행하는 흐름도 뚜렷하다. 레이저로 숱을 줄인 뒤 왁싱으로 마무리하는 방식이다. 체모 밀도가 낮아질수록 통증 부담도 줄어든다. 특히 위생 관리가 중요한 부위는 레이저 효과가 제한적인 경우도 많아 레이저 제모와 왁싱의 병행이 사실상 필수에 가깝다. 문득 브라질리언 왁싱을 처음 받던 날이 떠오른다. 왁서가 건네준 곰 인형을 끌어안고 버텼던 시간. 시술 후 만족감은 컸지만, 통증의 기억이 쉽게 잊히지 않아 나는 그날 이후 더 이상 왁싱 숍에 가지 않았다. 그런데 스킨 부스터라는 단어가 다시 마음을 움직인다. 통증을 감수하고서라도 조만간 이 신문물을 경험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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