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김진영 기자] 중동 전쟁 장기화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서도 우리 수출이 두 달 연속 800억달러를 돌파했다. 표면적으로는 전쟁과 물류 차질, 유가 급등이라는 악재가 겹친 상황이지만, 실제 흐름은 반도체 중심의 구조적 호황이 이를 상쇄하는 양상이다. 인공지능(AI) 인프라 확대가 메모리 수요를 자극하면서 수출 구조가 ‘반도체 단일 축’으로 더 쏠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4월 수출은 전년 동월 대비 48% 증가한 약 859억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866억달러)에 이어 역대 두 번째 규모로, 사상 처음으로 2개월 연속 800억달러를 넘어섰다. 무역수지도 237억달러 흑자를 기록하며 두 달 연속 200억달러를 돌파했다. 4월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이번 수출 호조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다. 4월 반도체 수출은 전년 대비 173.5% 증가한 319억달러로, 두 달 연속 300억달러를 넘겼다. 지난해 11월 이후 월별 수출액이 170억달러대에서 300억달러 수준까지 가파르게 상승하며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부는 AI 서버 수요 확대에 따른 메모리 고정가격 상승을 주요 배경으로 꼽았다.
AI 확산은 반도체 외 IT 품목에도 영향을 미쳤다. 데이터센터 투자 확대에 힘입어 SSD를 포함한 컴퓨터 수출은 500% 이상 급증하며 보조 축 역할을 했다. 결과적으로 AI 인프라 투자 확대가 메모리와 저장장치 전반의 동반 성장을 이끌며 수출 증가세를 견인한 셈이다.
지역별로도 반도체 중심 흐름이 확인된다. 중국 수출은 62.5% 증가한 177억달러로 6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고, 미국 역시 54% 증가한 163억달러를 달성했다. 아세안, 인도 등 주요 시장에서도 반도체·IT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이 확대되며 9대 주요 지역 중 7곳에서 증가세를 보였다.
반면 전쟁의 직접적 영향을 받는 품목과 지역에서는 온도 차가 뚜렷했다. 자동차 수출은 중동발 물류 차질과 미국 현지 생산 확대 영향으로 5.5% 감소했다. 특히 중동 지역 수출은 항만 운항 차질 등으로 25% 이상 줄어들며 지정학 리스크가 현실화된 모습이다. 다만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 수출은 각각 증가세를 유지하며 구조 전환 흐름을 이어갔다.
수입 역시 전쟁 변수의 영향을 받았다. 중동발 공급 불안으로 국제 유가가 상승하면서 원유 수입 단가가 올라 전체 수입액이 증가했다. 에너지 수입액은 7% 이상 늘었고, 원유 수입액은 13% 이상 증가했다. 물량 감소에도 불구하고 가격 상승이 수입액을 끌어올린 구조다.
이번 수출 지표는 ‘전쟁 속 호황’이라는 이중적 성격을 드러낸다. 외부 변수로 인한 불확실성은 확대되고 있지만, AI 중심의 반도체 수요가 이를 상쇄하며 전체 수출을 끌어올리고 있는 구조다. 정부는 이 같은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면서도 변동성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 산업부는 원유·나프타 등 대체 물량 확보와 함께 수출 시장 다변화, 금융·마케팅 지원 등을 통해 기업 부담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반도체 의존도가 높아지는 구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AI 수요가 유지되는 한 수출 호조는 이어질 수 있지만, 특정 산업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될수록 외부 충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전쟁 장기화로 원자재 수급과 물류 차질이 확대될 경우, 현재의 수출 호조 역시 제약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해석이다.
Copyright ⓒ 이뉴스투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