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유럽연합(EU)산 승용차와 트럭에 부과하는 관세를 다음 주부터 2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 타결된 미·EU 무역합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정면으로 거론하며, 합의 이전 수준의 고율 관세 체제로 되돌리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EU가 우리가 완전히 합의한 무역합의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근거로, 나는 다음 주 미국으로 들어오는 승용차와 트럭에 대해 EU에 부과하는 관세를 인상할 것이라고 발표하게 돼 기쁘다”고 썼다. 그는 “관세율은 25%로 오를 것”이라고 못박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EU)이 승용차와 트럭을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면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다는 점은 완전히 이해되고 합의된 것”이라며, 관세 인상이 EU 기업들의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압박하기 위한 수단임을 시사했다. 이어 백악관에서 취재진과 만나 “이는 미국으로 오는 수십억 달러 규모의 수입품에 해당하며, 이로 인해 그들은 생산공장 이전을 훨씬 신속하게 하도록 강요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치는 사실상 지난해 7월 미·EU 무역합의 이전 수준으로 관세를 되돌리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직후인 지난해 4월 3일, 미국은 외국산 자동차에 대해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했고, 이에 따라 EU산 자동차에는 기본 관세 2.5%를 더한 27.5%의 관세가 매겨졌다. 그 전날인 4월 2일에는 EU 전체에 대해 20%의 상호관세(경제주체별 차등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압박 속에 미국과 EU는 새 무역합의 협상에 착수했고, 지난해 7월 27일 트럼프 대통령과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만나 협상을 타결했다. 합의 내용은 EU가 7천5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에너지·군사장비를 구매하고 6천억 달러를 추가 투자하는 대신, 미국은 EU에 대한 상호관세를 15%로 낮추고 자동차 등 품목별 관세도 15%로 일괄 인하하는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인상 배경으로 이 합의의 ‘미준수’를 들고 있다. EU 측의 대규모 대미 투자와 구매 약속 이행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 누적돼, 다시 관세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해석이다. 그는 지난 1월 한국 국회에서 대미투자특별법 통과가 지연되자 한국에 대한 관세 인상을 공개적으로 거론한 전례도 있다.
관세 인상에는 안보 현안에 대한 불만도 겹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이란과의 전쟁 국면에서 유럽 주요 동맹국들이 미국의 요청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거듭 비판해왔다. 나토(NATO) 주요 회원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에 군함 파견을 거부하고, 미국과 이스라엘 항공기의 유럽 내 일부 군 기지 사용을 허용하지 않은 데 대해 “기억하겠다”고 말하는 등 강한 실망감을 드러내며 미국과 나토 유럽 회원국 간 긴장을 키워왔다.
이와 맞물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독일 주둔 미군 감축 검토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이번 EU산 자동차 관세 인상은 무역합의 이행 문제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이란 전쟁을 둘러싼 유럽의 ‘비협조’에 대한 보복의 범위를 경제 분야까지 넓히려는 포석이라는 관측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제기된다.
관세가 인상되면 EU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현재 미국 시장에서 EU와 경쟁하는 일본·한국 업체들은 당분간 상대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점할 것으로 보인다. EU가 25% 관세를 적용받는 동안 일본과 한국산 자동차에는 여전히 15%의 관세가 매겨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재 미국에는 1억 달러가 넘는 규모로 자동차 공장이 건설되고 있다”며 “일본, 한국, 캐나다, 멕시코 등 모든 국가가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지만, EU는 합의를 준수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EU의 미국 내 투자·생산 확대를 압박하는 동시에, 이미 미국에 공장을 세우거나 투자 확대를 약속한 일본·한국 등에는 당분간 ‘당근’을 주는 모양새다.
다만 일본과 한국 역시 이란 전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 요청에 적극 호응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관세를 통한 ‘간접 보복’의 칼끝이 언제든 이들 동맹국을 향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나온다. 관세 인상으로 단기적인 가격 경쟁 우위를 누릴 수 있지만,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예측 불가능한 통상·안보 연계 전략을 감안하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다.
EU는 미국의 일방적 관세 인상에 맞서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나 보복 관세 등 대응책을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란 전쟁을 둘러싼 안보 갈등이 얽혀 있는 만큼, 이번 사안은 단순한 통상 분쟁을 넘어 미·EU 관계 전반을 흔드는 또 하나의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워싱턴 외교가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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