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리포트=강해인 기자] 16년 만에 공개된 ‘바람’의 뒷 이야기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바람'(2009)에 관한 기억은 파편적이다. 이 영화를 처음부터 본 경험은 많지 않다. 채널을 돌리다 보이면 거기서부터 쭉 보게 되는 영화였다. 진한 사투리와 정글 같은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는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았다. 친구들과 만나면 영화 속 명대사를 자주 주고받고는 했다. 남자들의 소울 푸드가 제육볶음이라면, ‘바람’은 소울 무비였다. ‘짱구’는 이런 ‘바람’과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운 작품이었다.
사실, ‘짱구’는 ‘바람 2’가 아니다. 주연이자 감독인 정우는 이 작품을 ‘바람’의 스핀오프라고 정의했다. 본인이 연기했던 짱구가 성인이 된 이후의 시간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짱구’는 성인이 된 짱구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마음하나로 고된 서울 생활을 버티는 이야기를 담았다. 지칠 때면 고향인 부산에 내려가 친구들과 만나고, 여기서 ‘바람’과의 연결고리가 형성된다.
‘바람’은 개봉 당시 10만 관객을 동원했지만, 영화 채널 등을 통해 무료로 봤던 이들이 많아 ‘비공식 천만 영화’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때문에 의리로 ‘짱구’를 봐야 한다는 의견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콘텐츠도 있었고, ‘짱구’를 봐야 ‘바람’의 서사가 완성된다는 문구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이미 여기서부터 불안함을 느껴야 했다. ‘바람’의 속편이 아니라는 감독의 선언과 ‘바람’과 어떻게든 엮으려는 마케팅 사이의 괴리가 뜻하는 건 하나였다. ‘짱구’는 그 자체만으로는 관객에게 어필할 것이 없는 영화였다는 거다.
‘바람’이 그랬듯 ‘짱구’도 정우의 에피소드가 녹아 있는 영화다. ‘짱구’는 무명 배우가 어려움을 딛고 성장한 뒤 ‘바람’이라는 영화를 만나며 문을 닫는다. 많은 장애물을 극복하고 꿈을 쟁취하는 이들의 이야기엔 늘 감동이 있다. 정우 개인의 삶과 오버랩될 수 있는 ‘짱구’ 역시 그런 영화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 영화는 청춘의 시간을 너무도 가볍게 소비하며 실망을 안겼다. 정우의 삶과 노력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무명 배우라는 특수한 상황과 정우 개인의 기억을 극영화의 내러티브와 볼거리로 확장시키지 못했다는 게 문제다.
영화는 현실의 벽에 막혀 좌절을 경험하는 청춘의 시간을 따라간다. 짱구는 성인이 되었지만, 사회로 나가는 시간을 유예하고 있는 청년이다. 특별한 직업 없이 배우가 되겠다는 목표 하나로 월세방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가 삶을 짓누르고, 연인 민희(크리스탈 분)와의 관계도 위태로워 방황 중이다. 여기까지는 20대의 성장을 담은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설정과 상황이다. ‘바람’이 일반적인 고교생활에서 벗어나 불량 서클을 중심으로 독특한 이야기를 전개했듯, ‘짱구’도 여기서 어떤 무기를 보여줄 수 있어야만 했다.
그러나 ‘짱구’는 주인공의 성장에 큰 관심이 없다. 20대에 경험해 봤을 시련, 그리고 철없는 시기에 해봤을 법한 해프닝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고, 짱구의 성장을 이끌어내는 장치로도 보이지 않았다. 고생담이 스케치 영상처럼 지나가고, 가끔 웃음을 유발한다. 특히, 짱구와 민희의 연애 서사는 이렇게 비중 있게 다룰 서사였는지 의문을 갖게 한다. 뜨겁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았고, 민희라는 인물도 끝까지 혼란스럽게 표현돼 몰입하기 어려웠다. 그 밖의 인물들도 웃음을 위한 장치로 소모되는 경향이 있어 아쉬웠다.
더 큰 결함은 무명 배우라는 설정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는 데 있다. 수없이 오디션을 준비했다는 배우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짱구는 매번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홀로 연습을 할 때도 이는 크게 변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배우로서 성장하기 위해 공부하거나 노력하는 과정이 후반부 외에 카메라에 담기지 않았고, 마지막 오디션 전에는 배우를 꿈꾸는 이유와 욕망도 잘 보이지 않는다. 때문에 그의 도전기가 관객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짱구’는 성장 과정이 생략된 성장 영화였다. 감독이자 주연인 정우는 고생했던 시간과 추억을 돌아볼 수 있겠지만, 관객에게 큰 스크린에서 봐야 할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이미 많은 청춘물에서 봤을 법한 이미지를 반복 전시하는 데 그쳤다. 사투리와 배우 개개인의 역량으로 웃음을 만드는 순간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극적인 재미와 이 영화만의 매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고향인 부산에서의 서사는 유독 따로 논다. 사투리를 통한 코믹 코드가 없었다면, ‘짱구’에 부산이 등장할 이유가 없어 보였다. ‘바람’의 세계관을 억지로 붙여놓은 것만 같았고, 그래서 종종 민망함을 느끼야 하는 신도 있었다. 종합해 보면 ‘짱구’는 개인의 추억에서 끝났어야 할 것들을 극서사로 무리해서 확장한 듯한 영화였다. 공감하기 어려운 이야기였고, 그런 탓에 영화가 긴 러닝타임을 버티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바람’과 얽힌 추억이 많았기에 ‘짱구’에 관한 아쉬움을 토로하는 글을 쓰면서 고민이 많았다. 우리의 추억에 침을 뱉는 것만 같아 속이 쓰렸다. 이 영화를 위해 할 수 있는 건, 후기를 최대한 늦게 발행해 흥행에 영향을 덜 주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개인적인 방식으로라도 ‘바람’과의 의리를 지켰다고 위안을 삼아 본다.
강해인 기자 khi@tvreport.co.kr / 사진= ㈜바이포엠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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