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썰 / 안중열 기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3.50~3.75%에 묶으며 세 차례 연속 동결을 단행했다. 하지만 결정 이면에는 1992년 이후 34년 만에 가장 많은 ‘4인의 반대 표’가 쏟아지며 내부 전략 균열이 극명히 드러났다. 특히 제롬 파월 의장이 ‘퇴임 후, 이사직 유지’라는 파격적인 승부수를 던지면서, 차기 의장 지명자의 인준 정국과 맞물린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 논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고물가·지정학 리스크가 발목…한·미 금리 차 1.25%p 유지
연준은 29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직후 발표한 성명서에서 금리 유지 배경을 명확히 밝혔다. 연준은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으며, 중동 등 지정학적 불안이 경제 전망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경제 활동이 견조하고 실업률이 안정적이라는 점을 들어 급격한 경기 침체 우려에는 선을 그었다.
이번 동결로 한국(2.50%)과의 금리 격차는 상단 기준 1.25%포인트로 남게 됐다. 이로써 연준은 인플레이션 압박과 고용 둔화 우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 타기’를 이어가게 된 형국이다.
◇외신이 주목한 ‘34년 만의 반란’…흔들리는 연합전선
주요 외신은 이번 회의를 단순한 동결 이상의 ‘내부 분열 사건’으로 규정했다. 뉴욕타임스(NYT)는 “만장일치 합의를 중시하던 파월 시대가 극심한 의견 대립 속에 막을 내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투표권을 가진 위원 12명 중 4명이 반기를 들었다. AP 통신에 따르면, 스테판 미란 이사는 즉시 0.25%포인트 인하할 것을 요구한 반면, 나머지 3명은 향후 인하 가능성을 내비치는 ‘비둘기파적’ 성명 문구를 넣는 데 강력히 반대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를 두고 “연준 위원들이 향후 정책 방향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으며, 완화적 기조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경계심이 극에 달했다”고 분석했다.
◇‘워시 체제’의 서막과 트럼프 리스크
다음 달 15일 임기를 마치는 제롬 파월 의장의 뒤를 이어 지휘봉을 잡을 케빈 워시 지명자 앞에는 험로가 예상된다. 워시 지명자는 최근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연준의 독립성은 연준 스스로에 달려 있다”며 중앙은행의 자율성을 강조했으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연일 금리 인하를 압박하며 ‘정치적 외풍’을 예고한 상태다.
블룸버그 통신은 “워시 지명자가 대통령의 요구와 연준 내부의 매파적 반발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을지가 관건”이라며 “6월 FOMC가 그의 리더십을 시험하는 첫 번째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워시는 청문회에서 연준의 기존 소통 방식을 두고 “진실을 찾는 일이 반복보다 중요하다”며 대대적인 ‘소통 체계 변화’를 예고해 시장의 긴장감을 높였다.
◇파월의 ‘질서 있는 퇴장’인가, ‘불안한 동행’인가
한편 파월 의장은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례적인 결단을 발표했다. 그는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연준을 보호하고자 의장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2028년 1월까지 이사로 남아 소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차기 정부의 연준 개입 시도를 막으려는 방어막을 자처한 셈이다. 로이터 통신은 “파월이 이사로 남기로 한 결정은 케빈 워시 체제에서도 연준의 기존 정책 기조를 유지하려는 일종의 ‘대못 박기’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차기 회의는 오는 6월 16~17일에 열린다. 케빈 워시 체제가 처음 선보이는 이 회의에서 연준이 내부 분열을 수습하고 명확한 금리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전 세계 금융시장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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