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뒤 미술계의 예고편, 미대 입시 28년이 바꾼 작가의 탄생 방식 | 예스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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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뒤 미술계의 예고편, 미대 입시 28년이 바꾼 작가의 탄생 방식 | 예스24

채널예스 2026-04-30 00:00:00 신고

 ⓒ태드미술학원, 유튜브 캡쳐


예술가의 탄생은 개인의 천부적인 재능과 치열한 자의식의 산물인 동시에, 그를 길러낸 사회적 시스템의 정교한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국 미술계에서 '미대 입시'라는 관문은 단순히 대학 진학을 위한 통과 의례를 넘어, 당대 미술 교육이 지향하는 가치관과 미래의 작가상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필터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지난 80여 년간 한국 미대 입시는 외형적인 '재현의 기술'에서 내면적인 '사고의 전개'로, 그리고 이제는 '텍스트와 이미지의 융복합적 해석'으로 그 축을 급격히 옮겨왔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적 진보가 과연 우리 미술계의 본질적인 자양분이라 할 수 있는 '작가의 깊이'와 '인적 구성의 다양성'을 충분히 담보하고 있는지는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1. 미대입시 28년간의 패러다임 변화와 그 파장

 

한국 미대 입시의 역사적 첫 번째 전환점은 1997년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설립에 따른 혁신적인 입시 도입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예종은 기존의 정형화된 석고 소묘 중심의 입시 전형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학생의 창의적 사고력과 인문학적 소양의 깊이를 묻는 파격적인 실기 시험을 선보였습니다. 이는 단순히 '잘 그리는 기능공'이 아닌 '생각하는 예술가'를 선발하겠다는 미술계의 거대한 선언과도 같았습니다. 실기 위주의 학교라는 설립 취지로 인해 예상되었던 일반적인 행보와는 사뭇 다른 파격이었기에,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미술 교육계의 지형을 바꾼 결정적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이후 2012, 한국 미술대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홍익대학교가 실기 시험을 전면 폐지하고 입학사정관제를 전격 도입하면서 미대 입시의 패러다임은 '실기 능력'에서 '교과 성적과 서류전형(미술활동보고서)' 중심으로 급격히 기울었습니다. 이것은 소위 미술교육 시장과 미술학원가뿐만 아니라 예중, 예고의 입시 체계에 이르기까지 어마어마한 지각 변동을 일으키며 기존의 생태계를 위협할 정도의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2025 현재, 주요 대학들의 입시는 이제 미술의 범주를 넘어 소설이나 산문   장르의 텍스트를 발췌하여 해석을 유도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층적인 이미지를 제시하게 하여 질의 응답을 진행하는 '복합형 심층 면접고사' 진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홍익대 누리집, 홍익대학교 서울캠퍼스 정문 홍문관 전경

 

2. 암기식 실기는 정말 창의성의 적이었을까?

 

과거 2000년대 이전, 석고 소묘와 수채화, 소조, 동양화 등으로 대변되던 실기 과목들은 이른바 '암기식 실기'라는 오명으로 내몰렸던 시대였습니다. 분명 그 시절에는 명과 암이 뚜렷했습니다. 정해진 시간 내에 완벽한 재현을 해내야 하는 시스템은 분명 창의성을 저해한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역설적으로 그 시대의 입시장은 지금보다 훨씬 넓은 사회적 스펙트럼과 다양한 계층을 수용해 냈습니다. 당시의 실기는 비교적 명징한 목표 지점이 설정되어 있었기에, 경제적 여건이 넉넉지 않은 지방 출신 학생이나 일반계 고등학교 학생들도 개인의 끈기와 물리적 노력, '엉덩이의 '만으로 충분히 상위권 대학에 진입할  있는 사다리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인 다양한 경제적, 지역적 배경을 가진 동기들은 대학이라는 용광로 안에서 서로 다른 삶의 궤적을 공유하며 충돌했고, 이러한 인적 다양성은 인간과 세상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고민을 가능케 하는 작가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또한 유사한 실기를 오랜 시간 반복하면서 남과 다른 성과를 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 '미묘한 창의적 시도'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더 본능적으로 꿈틀거렸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적당히 해서는 결코 변별력 있는 결과를 낼 수 없었기에, 인체에 대한 집요한 탐구와 물성 및 표현에 대해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를 얻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2012 실기 폐지 이후의 풍경은 사뭇 다릅니다. '성적 중심' 입시는 입시 준비의 부담을 줄여줄 것이라는 장밋빛 기대와 달리, 오히려 교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극심하게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미술 실기에 직접 투입되던 비용은 이제 고스란히 고액 과외와 스펙 관리를 위한 보이지 않는 사교육비로 전이되었습니다. 미술활동보고서라는 정교한 서류 전형을 내실 있게 채우기 위해서 학생들은 더욱 저학년 때부터 치밀하고 꼼꼼한 관리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과연 이런 고도의 관리와 기획을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 스스로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입니다. 결국 자본을 동원해 고급 전문가들이 투입될수록 입시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는 '자본주의적 예술 입시'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특히 최근의 '텍스트 해석  심층 면접' 형태의 시험은 겉으로는 통합적 사고력을 측정하는  보이지만,  이면에는 더욱 정교하고 고급화된 사교육의 유무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합리적인 의심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습니다.

 

 

3. 상향 균질화된 집단, '무균실의 예술가'가 던지는 질문

 

오늘날의 입시생들은 수 종의 미술 교과서를 미술사의 맥락 속에서 통달해야 함은 물론, 제시된 복합적인 조건을 시각화하기 위해 장기간 훈련된 고급 드로잉 기법을 갖춰야 합니다. 이러한 역량은 일반적인 공교육 체계 내에서 습득하기가 매우 까다롭기에, 전문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예술고등학교(예고) 출신이나 강남 등 특정 교육 특구의 고액 사교육을 거친 학생들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접근으로는 수많은 대학의 세분화된 전형을 파악하는 것조차 벅찰 정도입니다. 결과적으로 오늘날의 미대 강의실은 유사한 성장 배경을 공유하고, 도시의 중산층 이상의 배경을 가진, 이른바 '상향 균질화된 집단'으로 납작하게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적 구성의 단순화는 한국 미술의 미래에 심각하고도 무거운 질문을 던집니다. 예술가의 위대함은 세련된 기술적 숙련도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독창적이고 다양한 시선에서 비롯됩니다. 서로 다른 삶의 고통과 결핍, 그리고 다양한 사회적 층위를 경험하지 못한 채, 정교하게 설계된 교육 시스템 안에서 '정답에 가까운 예술'만을 정석대로 학습하며 자라온 이들이 성공적인 입시 후 한국 미술의 주류가 되었을 때, 과연 우리 미술계가 세계 무대에서 어떤 담론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비슷한 취향과 경험을 공유하는 이들이 생산해내는 작품들은 시각적으로는 미려할지언정, 시대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이나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울림을 주기에는 명백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4. 컬렉터가 응원해야 할 '가공되지 않은 원석'의 생명력

 

이제 우리는 '어떻게 뽑을 것인가'라는 기술적 문제를 넘어, '어떤 작가를 길러낼 것인가'라는 본질적인 명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과거의 석고 소묘 시대로 역행적 회귀를 주장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입시 시스템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되어가는 현상은 반드시 각성해야 할 지점입니다. 입시는 대학의 선발 도구인 동시에 한 국가의 예술적 토양을 결정짓는 '백년지대계'이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입시 전형 속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혹시 가공되지 않은 원석이 가진 그 거친 생명력이 아닐까요?

 

제 3세계나 민주화, 타자와 성정체성, 디아스포라라는 거창한 주제들을 지나 이제 인류세나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대세의 담론으로 이어지는 주류 예술계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크게 와닿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혹시 미술계가 특정 흐름에 서로 경도되어 남의 이야기를 우리의 것처럼 유행화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하게 됩니다. 소수집단이 감당할 수 없는 큰 무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강박이 어쩌면 다양성보다 중요하게 여겨진 합의적 태도에서 기인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우리가 오늘 미대 입시의 변천사를 들여다보는 이유는, 오늘 입시장을 거쳐  예비 작가들이 바로 10  미술계의 주인공이자 컬렉터들이 마주할 동시대 예술의 주역이기 때문입니다. 세련된 텍스트 해석 능력은 무난한 합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치열한 삶을 통해 체득된 문제적 관점과 변별한 주장으로부터 가능해집니다. 계획대로 채워진 스펙 너머의 치열한 , 그리고 자신만의 우여곡절을 작가적 언어로 치환할  아는 기개와 용기. 대학과 교육 당국은 현재의 입시 함수가 배출해내고 있는 '무균실의 동기화된 인재'들의 한계를 직시하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잠재적 예술가들이 다시 미대로 유입될  있는 제도적 숨구멍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만이 한국 미술이 세계와 달라지는 길이고, 뜨거운 담론의 중심지로서 생명력을 유지할  있는 유일한 길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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