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외교전문가들은 국제질서의 이동은 작년 한국에서 열렸던 APEC 정상회의 선언문에서부터 다자주의의 종말 징후는 나타났다고 평가한다. 당시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은 자유무역과 다자무역체제가 연상되는 표현을 공동선언에서 빼자고 요구했다. APEC 개최국인 우리 정부는 설득에 나섰지만, 미국의 양보는 없었다. 결국 정상 선언에 포함되지 못한 WTO와 다자주의 지지 메시지는 외교·통상합동각료회의(AMM) 공동성명에만 담겼다. 장관들이 채택한 공동성명에만 “우리는 무역 현안을 진전시키는 데 있어 세계무역기구(WTO)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WTO에서 합의된 규범이 글로벌 무역 촉진의 핵심임을 인식한다”며 “우리는 WTO 내에서 오늘날의 무역 현안에 대한 논의를 심화하려는 노력을 환영한다”고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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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주도로 형성됐던 국제질서와 동맹, 자유무역 시스템은 서서히 붕괴했지만 미국의 패권에 대한 의지는 이제 ‘관세’라는 통상 영역을 넘어 글로벌 전 영역으로 확대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관세를 무기화하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을 축출한 데 이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습하기에 이르렀다. 전쟁으로 세계 물류의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의 불확실성은 확대했고 유가가 껑충 뛰어오르며 에너지 공급망을 둘러싼 세계 각국의 혼란은 커졌다.
주미대사를 지냈던 안호영 경남대 석좌교수는 “미국이 더는 규범적 질서를 지키지 않겠다는 걸 분명히 하고 있다”며 “법과 규범이 무너지고 힘의 지배가 횡행하는 국제사회가 됐다. 우리는 80년 만의 대변혁을 겪고 있는 셈이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 정부는 프랑스와 영국이 주도하는 ‘호르무즈 해협 항행의 자유를 위한 국제 다자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있지만 전쟁 당사국들이 없는 이 정상회의가 어느 만큼 실효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패권을 선택한 이후 ‘동맹국’들의 뜻을 이끌만한 리더국가가 사라졌고 개별 국가들은 자국의 손해를 감내하면서까지 적극적인 역할을 하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영국은 공군 타이푼 전투기를 호르무즈 해협 상공 순찰에 투입하자고 제안했고 일부 전투기는 중동 협력국 방공 임무에 투입된 상태지만, 참여국 대다수가 무력을 쓰는 일에 주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합참 관계자 역시 “국제사회의 주요 관심사를 파악하는 차원에서 참석했으며 별도의 입장이나 의견은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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